[김종철 칼럼] ‘정치한류(韓流)’의 가능성과 정당개혁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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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칼럼] ‘정치한류(韓流)’의 가능성과 정당개혁의 과제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20.04.2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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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㉓: 공화제와 선거(3)
의회권력 반복적 교체에 기초한 ‘정치한류(韓流)’의 가능성...패자에게도 승리의 전망 담아
정치 한류, 정당재편성의 성공여부가 그 조건
정당재편성으로 탈지역주의, 시스템정당, 탈이념적 정치 실용주의 추구해야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칼럼(4·15 총선과 ‘정치 한류(韓流)’의 가능성)에서 이번 4.15총선의 과정과 결과를 ‘정치 한류’의 가능성이라는 다분히 희망적인 수사로 정리했더니 미처 생각지 못했던 촌평이 들어왔다. 선거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는데 선거결과를 두고 정치 한류와 같이 자긍심 가득 찬 평가를 한다면 패자 측에서는 불쾌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문화현상과는 달리 ‘적’과 ‘동지’의 구별이 뚜렷한 정치현상을 두고 한류를 언급하다보니 미처 감정적 효과를 생각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돌이켜보아도 4.15총선을 정치한류의 가능성으로 본다는 것이 승자를 치켜세우고 패자를 폄훼하는 것일 수는 없다. 모두에게 자긍심이 될, 수준 높은 민주공화체제의 구축은 당장은 상처받았을지 모르는 패자도 내일의 승자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공화체제의 중요한 요소인 정치권력의 교체를 통한 독재의 방지라는 관점에서 보면 정치한류의 가능성을 의회권력 교체의 주기화 즉 반복적 교체에서 찾는 것이 특정정당들에 대한 선호적 평가일 수는 없지 않은가.

정치한류의 조건인 정당재편성

이번 총선의 패자가 주권자 국민의 의지에 부합하는 혁신을 한다면 언젠가 다시 승자가 되고 정치한류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핵심은 그처럼 국민을 심판자로 두고 경쟁하는 관계가 반복될 때 정략이 아니라 국가이익, 국민 전체의 이익에 복무하는 민주공화적 정치가 가능하다는 게 정치한류라는 전망인 것이다.

정치한류에서 특정총선의 승자와 패자의 구별은 자기만족이나 성찰의 계기가 될 뿐이다. 궁극적으로 총선은 경쟁자인 정당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공화국과 그 주권자인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4.15총선은 ‘한국형 민주공화국’ 모델의 핵심요소인 정당의 재편성과 안정화라는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번 선거가 의회권력 교체의 징검다리를 놓음으로서 ‘결정적 선거’(critical election)의 ‘징후’를 보였지만 그 시작은 아직 ‘미약’하다. 생산적인 정치체제의 관건인 안정적 정당체제의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국민의 정치지형을 제대로 반영한 정당재편성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불완전한 상태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이 ‘창대’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따라서 이번 총선에서 참패를 한 제1야당 미래통합당(통합당)은 물론 압승을 한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또한 정치한류의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당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다가올 대선과 지방선거 그리고 다음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경쟁하는 체제를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정당재편성의 최우선과제인 탈지역주의

정당재편성에서 최우선의 과제는 탈지역주의이다. 아직도 제대로 극복되지 못하고 민주공화체제의 진화를 가로막고 있는 지역주의의 관점에서 탈지역주의의 정당정체성과 이를 관철할 수 있는 선거제도와 정당제도 개혁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실천이 필요하다.

이번 총선에서 호남지역주의에 기반한 민생당 또한 참패하고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호남지역의 정치적 기반을 회복했다. 이로써 자칫 분열될 수 있었던 포스트 김대중-노무현의 정당일체감을 가까스로 회복할 수 있었지만 다가오는 포스트 문재인 시대를 통해 통합된 전국정당의 기반을 더욱 확고히 다져야 할 과제를 민주당이 안게 되었다. 아쉽게도 여전한 영남지역의 열세가 채워야할 마지막 퍼즐이다.

영남지역주의의 한계를 변함없이 드러낸 통합당은 시대착오적인 지역주의의 망령을 극복하고 전국정당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한 전향적 자세가 각별히 요청된다. 한국정치의 ‘주류’를 자처해온 정당이 이번 총선에서는 호남지역에 후보조차 제대로 내지 못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영남고립’에 분노할 것이 아니라 ‘호남고립’의 질곡에 너무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지역을 넘어 세대, 계층 등 다양하고 복잡한 이해관계를 공동선의 관점에서 수렴하고 포용하는 다양한 민주공화적 삶의 양식에 대하여 성찰할 필요가 있다.

영남지역주의를 넘어 전국정당의 확고한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는 이제 혁신과 정치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그 주체로 나서기 위한 전향적 각성과 진정어린 실천이 요청된다.

탈지역주의 정당재편성의 조건인 시스템정당의 구축

탈지역주의 정당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정당중심의 정치개혁을 추진하려면 필수조건이 있다. 바로 시스템정당의 구축이다. 일찍이 한국 정치의 고질병으로 원시적인 엘리트중심 정당제도의 현실을 지적한 바 있다(막장 공천파동과 정당민주주의의 위기). 개인으로서의 국민 및 시민사회와 국가권력을 연계하는 매개체인 정당은 정치체계의 필수인프라로서 안정성을 유지해야 한다.

정당을 중심으로 정치적 신진대사가 이루어지고 정당 간의 경쟁으로 대의민주적 정치체계가 안정성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선거 등 정치공학적 유불리에 따라 너무 자주 정당이 간판을 바꾸고 정당간 이합집산이 다반사이기 때문에 정치적 비효율이 심화될 수밖에 없는 정치문화가 있다.

전근대적인 인물중심의 지배유형인 카리스마적 지배에 대한 향수가 강한 문화적 전통도 안정적인 시스템정당의 구축을 방해하는 요인이다. 1987년 이전에 확고히 구축되었던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국가권력은 곧 지도자로 인식되는 ‘권력의 의인화’(personification of power) 현상이 문화적 유산이 되었다.

87년 민주화 이후에도 ‘1노(盧)3김(金) 정치’가 지속되면서 인물중심 정당의 강한 경로의존성이 한국 정치를 규정하였다. 87년 헌정체계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민주공화적 대통령제’ 혹은 ‘분권형 대통령제’로 환골탈태시켰지만 대통령을 중심으로 제왕적 주술을 외치는 잘못된 유산은 질기게 지속되고 있다.

정당이 유력정치인들이 쉽게 만들고 해체하는 하루살이가 아니라 소명을 가진 정치인이라면 유력 정당의 지지를 획득하여 국민의 선택과 심판을 받아야만 하는 안정적 정당체제가 구축되어야 한다. 우선 혁신한답시고 당명 바꾸기는 제발 그만해야 한다. 87년 이후, 아니 최근 몇 년간 도대체 주요 정당 당명이 얼마나 자주 바뀌었는가! 하루빨리 인물이 아닌 정당정체성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정당을 통해 정당정치의 신뢰와 효율성을 회복해야만 한국형 민주공화체제를 안정화시킬 수 있다.

중앙당중심주의 또한 시스템정당을 가로막는 적폐다(이전 칼럼: 막장 공천파동과 정당민주주의의 위기). 공천은 물론 국회운영 등 대의제도 자체를 중앙당지도부 중심으로 하는 집권적 정당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니 수시로 당권을 둘러싼 이합집산이 빈발하고 비상대책위 체제가 일상화되는 역설이 한국 정당정치를 지배하는 것이다. 선거만 끝나면 비대위가 등장한다. 정당이 파당정치를 넘어 공화국의 공적 과제를 매개하는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당조직과 운영을 분권화·다원화하여 지역당조직을 활성화하거나 국민과 소통하는 플랫폼을 강화하고 원내정당의 민주성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 정당법은 지구당을 금지시켜 놓고 있고 정당보조금을 중앙당 중심으로 배분하니 제왕적 중앙당의 폐해가 민주공화적 정당체계를 잠식하고 적폐가 제도화되어 있는 셈이다.  

정당이 '정치 한류'의 중심이 되려면 비대위 구성의 일상화, 중앙당 중심체제 등 다양한 개혁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진= 연합뉴스
정당이 '정치 한류'의 중심이 되려면 비대위 구성의 일상화, 중앙당 중심체제 등 다양한 개혁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진= 연합뉴스

   제도개혁과 병행되어야 할 탈이념적 정치 실용주의

정치한류의 가능성을 좌우할 정당재편성에서 제도개혁은 필수조건일 뿐이다. 충분조건은 정치적 실용주의이다. 지역주의는 사실 ‘대결정치’를 구성하는 한 가지 요소에 불과하다. 남북분단체제로부터 태생된 비뚤어진 ‘이념정치’에 기반한 정치적 극단주의가 원시적 정당체제를 낳는 또 다른 원인이다.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나 지역주의와 더불어 체제대결을 빌미로 국민의 안보불안을 조장하여 정작 우리 사회의 현안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정책대안에 ‘사회주의’나 ‘종북’과 같은 낙인을 오용하는 이념정치가 만연해 있다. 이에 대항하여 저항담론의 형태로 일정한 생명력을 확보한 ‘친일’, ‘숭미’, ‘수구’의 낙인 또한 남발되고 있다.

이러한 대결적 이념정치에서는 모두가 공존하는 헌법적 가치에 기반한 실용적 정치담론이 설자리가 없고 결국 ‘공감정치’나 ‘합의정치’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되고 만다. 이런 지형에선 의회권력의 교체가 있어도 승자와 패자가 서로의 장점을 계승하고 단점을 교정하는 정치의 선순환 구조가 이루어질 수 없다. 반대로 일단 선거에서 이기고 나면 무조건 이전 권력의 입법이나 정책을 폐기하는 비효율 정치의 악순환에 빠지고 만다.

모든 정치이념은 정치사회적 현실과의 상호작용을 거쳐 동태적으로 진화한다. 좌파나 우파, 보수와 진보가 고정불변할 수 없고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역사과정에서 서로 수렴하고 갈등하는 것이다. 이념은 세계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하나의 도구이자 관점에 불과하고 현안에 대한 구체적 정책대안은 다양한 이념들을 종합하여 현실적실성을 가질 때 효과를 발휘한다.

흰고양이든 검은고양이든 쥐를 잡는데 효과적이면 선택할 수 있다는 자세가 '정치적 실용주의'다. 실용주의는 원칙을 바로 세우되 현실을 고려하여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기회주의와 구별된다. 기회주의는 아무런 기준없이 근시안적 이해관계에 입각하여 좌고우면하는 것이다.

실용주의의 항구적 기준은 헌법에 반영된 공동선이며, 민주공화국에서 공적 현안의 논의기준은 국민 전체 혹은 국가공동체의 이익이어야 한다. 수단으로서의 좌우, 진보-보수의 이념은 종속변수여야 하고 국익 앞에 실용적 취사선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개인적 자유주의를 신봉하더라도 코로나19와 같은 긴급사태를 맞아 개인의 사생활이 평소보다 더 제한될 수 있음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고, 재난상태로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국가의 긴급개입과 조정이 필요하다. 긴급상황이 아니더라도 민생의 기초인 의식주, 보건의료, 교육, 일자리에 관한한 시장이든 국가든 기본적 생활조건의 안정적인 보장에 유용한 방식을 구체적 상황과 조건에 맞게 융통성 있게 취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재난 극복의 상징이 될 4.15총선으로 출범하는 제21대 국회가 탈지역주의, 정치 실용주의로 장착한 시스템정당을 향한 정당개혁으로 대한국민이 희망하는 정치한류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젖힐 수 있기를 고대한다.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현재 한국언론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공법학회·한국헌법학회 부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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