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칼럼] 법은 누구편인가?②: 대법원이 지켜야할 중립성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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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칼럼] 법은 누구편인가?②: 대법원이 지켜야할 중립성은 무엇인가?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20.09.1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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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㉚: 공화제와 사법(2)
대법원의 정치적 편향성 논란...최고법원의 본질에 입각해 평가해야
헌법은 사법권 독립의 전제로 구성상의 민주적 정당성과 책무성 요구해
대법원 판결, 헌법과 시대정신에 대한 대법관 가치관의 일관성에 따라 평가되어야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사회적 파장이 큰 주요한 사건들에서 전향적 법해석·적용이 잇따라 나오는 것에 대해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급기야 김명수 대법원장이 직접 나서 대법원 판결에 대한 무리한 비판이 사법권의 독립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최근의 대법원 판결이 기존의 법질서에 일정한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개인존엄에 기반한 인권과 법질서의 안정과 같은 사회질서 사이의 법익형량에서 무게중심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대법원의 인식 변화가 도드라진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병역법상 병역을 회피하는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지 않던 기존의 판례를 변경한 판결은 양심의 자유와 국가안보를 내세운 공익 사이 법익형량의 중심추를 개인의 인권존중에 한 발짝 더 옮긴 판결이었다.

이승만, 박정희 등 역사적 인물의 친일행적에 대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재한 방송위 결정이 위법하다고 본 판결 또한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보호를 내세운 공익 사이에서 표현의 자유에 좀 더 무게중심을 두는 판결이었다.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의 확대적용을 제한하는 이재명 지사 관련 판결 또한 선거 공정이라는 공익을 내세워 선거과정에서의 모든 공방에 국가가 사법권을 내세워 개입하는 것이 어느 정도까지 허용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산재 사망자 유족에 대한 특별채용을 단체협약의 내용으로 삼는 것을 사회질서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판결이나 해고조합원의 조합원 자격을 유지했다는 이유로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통고한 처분을 위법하다고 본 판결 또한 근로자의 단결권을 존중하고 근로자에게 불리한 국가규제의 한계를 설정하였다는 점에서 근로자의 노동3권을 헌법상 기본적 인권으로 보장한 헌법정신에 한 걸음 다가서고 있다.

대법원 비판의 '올바른 기준 정립' 필요성

전향적 변화를 내보인 판결에 대해 시비가 붙는 것은 민주공화국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무엇보다 헌법 제1조 제2항에서 명확히 선언되었듯이 민주공화국에서 사법권 또한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국가권력의 하나이기에 최고법원의 판결은 주권자 국민의 엄밀한 평가를 받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주권자 국민이 법원의 판결을 평가할 때도 기준이 있어야 한다. 국가기본법인 헌법이 설정한 타당한 기준에 따른 평가일 때라야 그 평가가 제 값을 할 수 있다. 이런 기준을 벗어난 평가는 오히려 올바른 평가를 가로막는 장애에 불과하다.

그동안 괄목할 민주화를 달성한 우리나라에도 여전히 사법부를 평가할 올바른 기준에 대한 이해와 성찰이 부족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한 논란에서도 기본적으로 진영논리에 입각한 공방만이 있을 뿐 헌법에 입각한 본질적 이해가 부족한 듯하다.

대법원 구성상 '민주적 정당성과 책무성의 원칙'

먼저 대법원의 헌법상 위상과 지위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부족하다. 우리 사회에 절대적 가치로 인식되어 온 것은 대법원은 사법기관이므로 정치적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번에 논란이 되는 판결들에 대해서도 대법원 인사가 코드 인사로 이루어져 대법관들의 정치적 편향성 때문에 사법권의 독립이 훼손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우려를 표현한 대목도 이런 류의 비판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김 대법원장 또한 대법원이 사법기관이어서 정치적 고려없이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하였을 뿐인데 이를 정치적 진영논리로 비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는 점에서 비난론자들과 대법원의 위상에 관한 전제에 있어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헌법상 대법원의 지위와 그 구성방법상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 대법원은 국가권력의 한 축을 형성하는 사법권의 정점에 있는 최고사법기관이므로 정치적으로 구성되어야 하고 그에 합당한 정치적 고려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구성에 있어 '민주적 정당성'을 가져야 하고 권한행사에 있어 '민주적 반응성'에 입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공화국에서 법을 만들고 법을 집행하며 법적 분쟁을 해소하는 작용은 모두 주권자의 위임을 받아 주권자를 위해 행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헌법이 대법원장을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고,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은 바로 민주공화국에서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지만 국민대표기관들이 관여하여 사법권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국회와 대통령이 국민의 선거에 의해 선출되므로 이들의 동의와 임명의 과정이 정치적인 것은 불가피하고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왜 코드인사와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비난이 난무하고 또 대법원장은 이런 비난이 사법권의 독립을 위협한다고 걱정하는가?

대법원 판결을 두고 정치적 편향성과 사법권 독립에 대한 입장이 교차하는 것은 대법원의 결정에 대한 근본적 오해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 사회에 불변의 진리로 인식되어 온 대법원의 기계적 중립기관으로서의 이미지, 즉 사법기관인 대법원은 정치적 결과에 대한 고려를 전혀 하지 아니한다는 '허구적' 이미지가 바로 그것이다.

흔히들 법과 정치, 입법과 사법, 행정과 사법을 엄격히 구별하면서 사법권과 관련하여 독립의 가치만 주장되고 그 책무성은 소홀히 되었던 탓에 이러한 허구적 이미지가 구축되어 법원에 대한 온당한 평가에 혼선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사법권의 독립도 중요하지만 그 독립은 외딴 섬에 고립된 절대 성인들의 고독한 결단이 아니라 동료시민의 삶을 체감하며 모두가 공존공영할 수 있도록 사회와 유기적으로 소통하는 책무성에 바탕한 독립이다.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의 대법원. 사진=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의 대법원. 사진= 연합뉴스

최고법원의 정치적 고려, 법익교량의 결과와 그 일관성이 평가기준이어야

미국의 저명한 법경제학자이자 연방항소법원 판사인 리처드 포스너는 ‘판사는 어떻게 사고하는가’(How Judges Think)라는 제목을 가진 그의 책 열 번째 장 제목을 '연방대법원은 정치적 법원이다(The Supreme Court Is a Political Court)'로 잡고 있다. 핵심 논지는 연방대법관은 전통적으로 실용주의자들(pragmatists)이며, 연방대법원이 헌법을 해석하고 적용할 때 판결이 초래하는 '정치적 결과(political consequences)'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포스너 판사의 법원관을 보편적인 것으로 단정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우리나라에 만연한 사법의 '중립성(neutrality)'에 대한 편견의 문제점을 환기하는 단서는 될 수 있을 것이다.

헌법상 법관에게 기대되는 중립성은 직업상의 양심에 따른 것이다. 당사자와의 사적인 이해관계나 정파적 관점에 따라 법해석상의 재량을 오남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때 우리가 구별해야 할 개념으로 정파적(partisan)인 것과 정치적인(political) 것의 차이가 있다.

정파적인 것은 파당적 이해관계에 따라 법해석을 자의적으로 하는 것이다. 정치적인 것은 사안이 가진 정치적 결과와 의미를 고려한다는 것이다. 법이 정치과정의 산물이라면 당연히 그 정치적 결과도 법해석에 고려될 수밖에 없다. 다만 그 정치적 결과에 대한 고려가 특정 정파나 사회집단의 유불리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적 결과에 대한 고려란 어떤 것인가? 법관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에 따라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인가? 당연히 그럴 수 없다.

정치적 결과에 대한 고려는 주어진 법을 해석해야하는 구조적 한계 때문에 오로지 문리적 해석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한계가 있다. 법률을 만드는 입법과 사법이 다른 근본적 한계이다. 그러나 법을 제정할 때와 마찬가지로 법을 해석하는 경우에도 법해석의 결과가 미칠 법질서에의 효과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이것을 사법에서의 정치적 고려라고 하는 것이다.

예컨대, 판결에 필요한 법익형량을 할 때 표현의 자유 중심의 법해석을 할 것인가 아니면 국가안보나 사회질서 유지에 중점을 둘 것인지, 개인의 사적 자치나 재산권을 중시할지 근로자의 단결권과 인간존엄에 입각한 근로조건에 관한 공공복리를 중시할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권한배분에서 기본적 우선권을 어디에 둘 것인지에 따라 법해석과 적용의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이 점에서 논란이 된 대법원 판결에서 숫자의 차이가 있지만 만장일치가 아니고 다수의견과 소수이견이 갈린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수의견이라고 절대적 진리이고 그것만이 법의 유일한 해석일 수 없다. 사실 이번 판결들에서 다수의견은 이전의 판례에서는 소수의견에 불과했었던 것이다. 대법원 판결도 국민의 평가 속에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이 교차하는 동태적인 것이다. 다만 법익교량에서 쉽게 결론이 명확하게 나지 않는 난제(hard cases)의 경우 헌법상 보호되는 가치들 사이에 직업적 양심에 기초한 가치관에 따라 입장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기존 판결에 대한 향수야말로 또 다른 정치적 고려의 산물이다. 기존 판례도 이러한 가치판단에서 이번 판례보다 개인의 존엄이나 인권 보다는 국가안보나 사회질서에 더 가중치를 두었던 결정일 것이기 때문이다. 기성 판결을 금과옥조처럼 절대적 가치를 가지는 법으로 추앙할 이유가 없다. 그런 태도는 정치적 진영논리로 사법을 재단하는 독단에 불과하다.

따라서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려거든 그 구성의 정치적 편향성을 문제삼을 일이 아니다. 그 비판 또한 또 다른 편향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직시하고 비판의 대상을 직업적 양심에 따라 정치적으로 고려하는 과정이 얼마나 합리적인가에 두어져야 한다.

직업적 양심에 입각한 일관된 가치관없이 판결의 정치적 결과에 대한 고려가 냉탕과 온탕을 오가거나 자의적인지, 또한 법의 내용과 시대정신에 비추어 볼 때 법관의 가치판단이 얼마나 타당한지를 평가해야 한다. 인권에 무게중심을 둘 것인지 사회질서에 둘 것인지, 그리고 인권 사이에서도 어떤 가치판단을 할 것인지, 그러한 형량과 가치판단에 무엇이 문제가 있고 얼마나 일관되게 관철되는지를 따져야 하는 것이다.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현재 한국언론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공법학회·한국헌법학회 부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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