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칼럼] 법은 누구편인가?③: 미연방 대법관과 한국 대법관, 어떻게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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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칼럼] 법은 누구편인가?③: 미연방 대법관과 한국 대법관, 어떻게 다른가?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20.10.1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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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㉛: 공화제와 사법(3)
미 연방대법관 임명 논란, 우리나라 대법관 지위에 대한 반면교사(反面敎師)
연방대법관의 종신제 임기와 법형성자 역할...시민종교인 헌법과 결합해 강력한 위상 구축
과다한 사건부담과 짧은 임기의 한국 대법관...독립성에 대한 의혹 구조화시켜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임기말의 트럼프 대통령이 긴즈버그 대법관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연방대법관 후보로 바렛(Amy Coney Barrett) 연방항소법원 판사를 지명하여 상원의 인준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임기 4년의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절차를 두고 정치적 공방이 일었다.

민주당 쪽에선 임기말 대통령이 새 대법관을 임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므로 그 지명과 인준을 대선 이후로 미뤄야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민주당의 이런 주장은 최근의 사례에 근거를 둔 것이다. 2016년 스칼리아(Antonin Scalia) 대법관이 급사한 후 당시 야당이면서 대법관 인준권을 가진 상원의 다수당이었던 공화당은 오마바 대통령의 후임 지명을 무시하고 인준절차의 진행을 1년이나 거부하였고 결국 오바마 대통령의 새 대법관 지명은 무산되었다.

여야가 뒤바뀐 상황에서 서로 공수가 바뀐 논쟁이 재연된 셈인데 현실은 법상 권력의 구도에 따라 결정되는 형국이다. 대선결과와 관계없이 여전히 상원의 다수파인 공화당에 의해 바렛 후보가 지명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최근 자신들이 만든 사례를 무시하면서까지 안면몰수하고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이 지명을 강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연방 대법관의 지위는 한국 대법관의 지위와는 다른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법이 누구 편인지에 대한 근본 질문은 대법원과 대법관의 역할인식과 위상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기에 주마간산격이나마 살펴볼 실익이 충분해 보인다.

대법관의 헌법적 위상과 사회적 지위

우선 대법관의 헌법상 위상과 사회적 지위에 사뭇 차이가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연방최고법원으로 연방사법사건의 상고심과 함께 위헌심사권을 같이 행사한다. 우리의 경우 대법원과 헌재가 한 기관에 합쳐져 있는 셈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미국법체계는 판례법국가여서 판례가 곧 법으로서의 지위를 가진다. 일반사건에서 대법원의 판례는 입법과 마찬가지로 법으로서의 지위를 가진다. 위헌심사권을 통해 헌법에 어긋나는 법률이나 행정처분은 효력을 상실하게 되는데 이에 따른 헌법해석이 곧 헌법과 같은 지위를 가지게 되는 셈이다. 단순한 법해석자의 지위를 넘어 법형성자의 역할을 부분적이나마 인정받는 것에서 법관의 사회적 위상이 높게 설정된다.

실제로 미국 연방헌법은 200년이 훌쩍 넘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문헌법이기에 오늘날의 기준에서 보면 판례를 통한 보충이 많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어서 미국 연방대법원의 역사는 곧 미국 헌법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이다. 일례로 미국 사회의 오랜 현안인 낙태죄에 대한 찬반논란의 중심에 연방대법원이 있다. 대법원에서 미국 연방 헌법에 명문으로 규정되지 않은 프라이버시권이라는 헌법상 권리를 헌법상 적법절차 조항에 대한 해석을 통해 도출하여 낙태를 할 자유의 근거로 삼았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은 이민국가의 특성을 가지다 보니 사회통합을 촉진하는 매개가 필요한데 헌법이 그러한 역할을 부여받은 역사적 전통이 있다. 따라서 '시민종교(civil religion)'로서의 기능을 헌법이 수행할 정도로 헌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높다. 그리고 그 헌법의 해석을 통한 헌법의 실질적 형성에 대법관의 역할이 지대하다. 그러니 미국 사회에서 법관의 위상, 특히 대법관의 위상은 매우 높고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대중적 관심의 대상이 된다. 대법관 인준문제가 대선판의 주요 쟁점이 되는 경우를 우리 국민들에겐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우리나라의 대법원은 대법원장과 13명의 대법관등 총 14명으로 구성된다. 핵심적 위헌심사권은 주로 헌법재판소가 관장하고 명령이나 규칙에 대한 위헌심사권등 부분적 헌법재판을 담당한다. 성문법국가여서 판례가 법으로서의 형식적 지위를 보장받지 않지만 사실 성문법의 해석에 의해 판결이 좌우되므로 최고법원의 판례는 미국 못지않게 영향력이 있다. 따라서 대법원의 위상에서 두 나라의 차이가 있는 것은 권한의 차이라기보다는 사회통합에 대한 헌법과 법원의 역할과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헌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상대적으로 낮고 그 형성에 법원의 비중이 높지 않다(혹은 대중은 그런 인상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헌법의 저작권이 국민이나 그 대표자인 법관에게 있다는 인식이 약하다. 법관은 주어진 법을 그냥 기계적으로 적용한다는 이미지가 강하고 더구나 헌법에 관한한 별도의 헌법기관으로 주요한 헌법재판권을 행사하는 헌재의 존재 때문에 그 역할인식이 높지 않다. 대법관의 대중적 활동은 금기시되고 대법관이 일반대중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체감도가 높지 않으니 대법관은 물론 대법원장의 대중적 인지도마저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다.

지난 10월 19일 로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이 타계하자, 미 워싱턴DC 연방대법원 청사 주변에서 시민들이 추모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뉴스
지난 10월 19일 로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이 타계하자, 미 워싱턴DC 연방대법원 청사 주변에서 시민들이 추모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뉴스

종신제와 6년임기의 차이

다음으로 미국 연방 대법관 인준이 그토록 비중있는 현안이 되는 이유가 그 높은 위상에 못지 않게 그 임기 때문이다. 대법관을 포함하여 미국 연방의 법관은 종신직이다. 한마디로 스스로 사임하거나 탄핵되지 않는다면 죽을 때까지 봉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에 공석이 된 대법관직도 1933년생으로 87세였던 긴즈버그 대법관이 27년간 봉직하다 지병으로 별세하여 생긴 자리이다. 한 번 임명되면 적어도 이십년 넘게 재임하기 때문에 임기가 제한되어 있는 대통령이 임명권을 가지고 있더라도 간접적이나마 영향력을 가질 여지가 적고 또 실제로 임명할 수 있는 대법관의 수가 얼마되지 않는다.

이번에 바렛 대법관의 인준에 성공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4년 만에 벌써 3명의 대법관을 임명한 행운아가 된다. 만일 재선에 성공한다면 초대 대법관의 경우를 제외하고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대법관을 임명한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사실은 많은 대법관을 임명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그 대법관들이 종신으로 오랫동안 재임하게 됨으로써 그 임명의 영향력이 매우 오래 지속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현직 중 가장 선임인 토마스(Clarence Thomas) 대법관은 머지않아 취임 30년을 맞는다. 2년 임기의 하원의원, 4년 임기의 대통령, 6년 임기의 상원의원을 고려하면 정치인들의 재임가능성을 염두에 두더라도 대법관 임기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해석을 통해 헌법과 법을 만드는 자리에 오를 때 그 사회적 영향력은 웬만한 정치인은 범접하지 못할 정도인 것이다.

대법관이 법률에 대한 해석으로 판례를 형성한 것은 의회에서 성문법을 만들어 폐기할 수 있다. 그 영향력이 헌법에 대한 해석보다 크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그 성문법 자체를 헌법의 해석을 통해 무효로 만들 수 있는 권한이 역시 대법관들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 그것도 종신으로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 위력적인 것이다. 최근에는 미국에서도 이러한 과도한 비중 때문에 대법관의 임기를 단축할 필요성이 제기되어 있기도 하다(종신제가 대법관 임명을 너무 정치적으로 극단화시킨다는 우려 때문이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공화제적 절제가 상실된 미국 정치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종신제 혹은 장기임기의 중요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리 대법관의 임기는 6년에 불과하다. 정년제도 있어 70세를 넘길 수 없다. 대법원장을 제외하고 한 차례 더 연임할 수 있으나 근래에 연임하는 경우는 사례가 없다.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고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행정기관도 아니고 합의제 사법기관에서 대법원장이 최고법원 동료 구성원의 제청권을 행사하는 구조는 대법관의 위상을 저하시키기에 충분하다. 대통령의 임기가 5년이니 대개 상당수의 대법관을 개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대법원 구성의 변화주기가 짧다. 대법관의 짧은 임기는 대통령등 정치인과 비교하여 독자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구조이다.

상고심구조와 심리사건의 함수

대법관의 위상을 좌우하는 또 다른 요소는 사건수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상고허가제를 택하고 있기 때문에 대법원에서 사건을 골라 심판한다. 매년 7천~8천 건의 새로운 사건이 신청되지만 전원합의체에서 구두변론을 거쳐 결정되는 사건은 100건이 채 안된다.

너무 적은 사건을 심사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연간 5만건 가까이 상고사건이 접수되고 대법관 1인당 4천건을 매년 처리해야 하는 우리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이 한 사건에 주어지는 시간이 많은 셈이다. 심리불속행이라는 제도로 판결이유도 없이 기각되는 사건이 70%를 넘나드는 현실을 고려해도 상고심에서 제대로 심리가 이루어지는지 합리적인 의심이 제기되는 사건수라고 할 수 있다. 엄중한 심사숙고가 필요한 미묘한 난제들을 벼락치기로 시험치루듯 처리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국민의 신뢰를 받는 정연하면서도 법과 시대의 정신을 온전히 반영하는 판결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판결의 무게도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후진국의 단순 도식으로 다른 나라의 제도를 마냥 우러러만 볼 수준이 아니다. 다만 미국 연방대법원의 경우를 '반면교사'로 삼아 사건폭증으로 신음하는 대법원의 헌법적 기능을 민주공화제의 기본가치를 중심으로 분명히 정립하면서 대법관 임명방법과 임기제 등을 손 볼 필요성을 검토할 여지는 충분해 보인다.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현재 한국언론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공법학회·한국헌법학회 부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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