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칼럼] 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④: 자유의 전제인 차별금지와 사회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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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칼럼] 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④: 자유의 전제인 차별금지와 사회보장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19.05.25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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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헌장, 자유권 조항 앞서 '일체 평등' 조항 강조
빈부 차별 심회되고 무감각해진 사회, '자유 진정한 가치' 조건 안돼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 ‘대한민국임시헌장’은 모두 10개 조문의 단출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민주공화제의 초석으로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 대한국민의 정치공동체가 인민의 평등·자유·참정의 권리에 기초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민의 기본적 권리의 보장의 차원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제4조에서 인신의 자유, 표현 및 종교 및 재산소유의 자유, 즉 자유권 보장의 원칙을 선언하기 전에 남녀·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임을 제3조에서 먼저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시헌장, '만인평등'을 자유권보다 앞세운 의미 깨달아야

이 같은 조문 배치는 현행 헌법이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제2장을 구성하는 데에서도 계승되고 있다. 현행 헌법은 모든 기본적 인권의 기초인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제2장 첫머리인 제10조에 규정한 후 곧 바로 제11조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함을 선언하고 있다. 제11조는 만인평등의 원칙을 보충하기 위하여 예시적으로 누구든지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사회적 특수계급의 창설을 부인하는 것으로 다시 한 번 명문화하고 있다.

제12조에서 제23조까지 신체의 자유에서 재산권에 이르는 자유권을 비교적 상세하게 규정하기 전에 평등원칙을 선언한 조문순서 만으로 절대적 가치를 부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순서가 가지는 의미를 단순히 편의적인 것으로 소홀히 할 수도 없다.

민주공화제 헌법의 한 축인 권력구조의 구성에 있어 입법권에서 시작해 행정권, 사법권으로 편재하는 방식과 대통령을 필두로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를 배치하는 방식에는 민주공화제를 실현함에 있어 무게중심을 어떻게 두고 구상하였는지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경제적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학벌이 낮다는 이유로 한국 사회 곳곳에서 차별이 일어나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만으로는 '만인 평등'의 임시헌정 가치를 실현하기엔 부족해 보인다. 사진= 연합뉴스
경제적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학벌이 낮다는 이유로 한국 사회 곳곳에서 차별이 일어나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만으로 '만인 평등'의 임시헌정 가치를 실현하기는 역부족이다. 사진= 연합뉴스

 

인간의 존엄에서 자유와 평등은 '동전의 양면'처럼 상호보완적인 것

인민의 권리 보장에 대한 체계와 분류에서도 이러한 구상이 권력구조만큼 뚜렷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일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특히 평등과 자유의 올바른 관계에 대한 민주공화적 이해를 위해서는 이러한 차이가 가지는 의미를 유의해서 곱씹을 필요가 있다.

사실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기초는 평등과 자유라는 점에서 이 두 가지 가치가 어느 것이 더 먼저랄 것이 없이 동전의 양면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자율적 인격의 보장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굳이 두 가치를 애써 구별지우면서 평등 보다는 자유가 더 우선하는 가치라는 점을 강변하는 경향이 널리 퍼져있다.

특히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이념을 민주공화제의 핵심원리로 위치시키면서 평등에 우월한 가치로서의 자유의 중심에 있는 권리로 재산권이나 경제적 자유권을 내세우는 경향이 있다. 민주공화제를 표방한 임시헌장이나 현행 헌법에서 평등과 자유의 관계를 배치순서는 물론 그 내용의 차원에서 정돈할 필요성이 있는 현실적 이유이다.

권위주의의 유산 가운데 하루 빨리 뿌리 뽑아야 할 적폐는 헌법이 어떤 가치체계에 따른 약속에 따라 성립되어 우리의 정치생활과 사회생활을 규율하는 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정치사회이념이나 현실적 이해관계의 차원에서 헌법을 왜곡하는 경향이다.

특히 자유를 평등보다 우월한 가치로 단정하고 어떤 경우에도 평등의 가치를 이유로 자유가 위축되어서는 안된다는 사고가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다. 사립학교법의 규제를 둘러싼 위헌논쟁에 사유재산권이나 계약의 자유 침해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평등이 먼저인가, 자유가 더 우월한 가치인가 하는 논쟁은 보수와 진보가 권력을 잡을 때마다 일어나는 논쟁거리다. 대한민국 임시헌장과 그 정신을 계승한 현행 헌법의 기본원칙을 확인할 때다. 사진= 연합뉴스
평등이 먼저인가, 자유가 더 우월한 가치인가 하는 논쟁은 보수와 진보가 권력을 잡을 때마다 일어나는 논쟁거리다. 대한민국 임시헌장과 그 정신을 계승한 현행 헌법의 기본원칙을 확인할 때다. 사진= 연합뉴스

"자유가 평등보다 우월한 가치" 주장, 헌법 가치와 기본원칙에 반해

무상급식논쟁이나 파견근로자 의무고용제에서부터 요즘 소득주도성장론의 희생양처럼 되어버린 최저임금제나 주 52시간 노동제 등 사회보장과 경제발전의 병행을 추구하는 논의에서 어김없이 색깔론이 덧씌워진 위헌론이 등장한다.

이와 같이 과도한 이념편향적 주장에는 민주공화제에서의 자유가 만인평등·차별금지의 조건이 성립될 때에만 헌법적 보장을 받는다는 기본원칙은 무시된다. 이들에게는 사람 중심 사회인 근대의 시작을 알린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이 제1조에서 인간은 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모든 사회적 차별은 오로지 공익에 근거할 때에만 정당하다고 선언하고 있는 의미가 제대로 이해될 수 없다.

프랑스 인권선언의 평등과 자유의 동시성을 다시 한 번 보편적 원칙으로 확인한 1948년 유엔인권선언도 제1조에서 인간은 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며, 이성과 양심을 타고난 모든 인간은 동료애(brotherhood)로 서로를 대해야 함을 선언한 숭고한 뜻도 소홀히 된다.

민주공화제, 평등하고 차별 없는 조건에서만 자유 가치 보장돼  

한국 사회의 경제양극화와 사회양극화에 따른 사회병리현상이 날로 악화되고 있다. 요즘도 또 한 가족이 경제적 이유로 비극적 선택을 한 사건이 보도되고 있다. 한 젊은 예술가가 반지하방에서 굶어 죽은 비극도 있었다. 자살율, 노인빈곤율의 압도적 세계1위와 저출산율 세계1위의 부끄러운 기록의 근원에 자리잡은 궁핍, 질병과 불안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조건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동료시민이 궁핍으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 누구의 존엄도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 '피부가 검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이 아닌 물건으로 취급하면서도 경제적 자유가 인간의 자연적 권리임을 실천했던 미국헌법제정자들의 '위선'이 지금까지도 미국 사회 갈등의 진원이 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대한민국 임시헌장이 확인했듯 민주공화제는 사람을 남녀·귀천 및 빈부의 계급으로 차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대우하는 조건에서만 자유의 진정한 가치가 보장되는 체제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현재 한국언론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공법학회·한국헌법학회 부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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