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칼럼] 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⑤:평등의 내용인 개인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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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칼럼] 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⑤:평등의 내용인 개인의 자유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19.06.09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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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한민국 최초 헌법 ‘대한민국임시헌장’에서 한민족 정치공동체 역사상 처음 채택한 민주공화제가 추구하는 '자유'의 목록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만민평등의 원칙을 선언한 제3조에 뒤이어 제4조에서 “인민은 신교·언론·저작·출판·결사·집회·신서·주소·이전·신체 및 소유의 자유를 향유함”을 선언하고 있다. 이 자유의 목록을 통해 민주공화제가 추구하는 자유의 본질과 성격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인간 내심의 자유로운 형성의 상징인 신교의 자유

신교의 자유란 신앙을 자유로이 선택하고 발현할 수 있는 자유로 현행 헌법상 종교의 자유에 대응한다. 민주공화제에서 보장하는 자유 목록의 첫머리에 신교의 자유가 제시된 것은 신앙으로 상징되는 인간 내심의 독립된 형성이 자유로운 인격의 기초를 이루기 때문이다.

인류사에서 근대사회를 전근대사회와 구분 짓는 핵심 기준의 하나는 개인의 해방이다.

중세적 지배체제의 붕괴는 사회적 신분이나 계급은 물론,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신앙마저도 강제되는 굴레가 제거되고 삶의 주체로서 독립된 지위를 개인이 획득하는 것으로 발현됐다. 특히 개인의 인격적 자율성은 초월적 절대자와의 관계에서도 타인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신앙의 자유를 상징으로 한다. 절대자에 대한 신앙의 자유는 신앙 이외의 다른 삶의 조건에서도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에 대한 내심의 결정을 자유로이 할 양심의 자유를 전제하는 것이다.

1948년 제헌헌법이 신앙의 자유와 함께 양심의 자유를 같이 규정한 것은 이런 사정을 배경으로 한다. 인간 내심의 결정에 대한 자유는 인민의 자율성에 기초한 공동체를 추구하는 민주공화제의 기초를 이루는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시절 역사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삽입하려는 시도에 대해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보수와 진보측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토론했다. 사진=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시절 역사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삽입하려는 시도에 대해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보수와 진보측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토론했다. 사진= 연합뉴스

개성의 발현이자 민주정치를 위한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

신교의 자유에 의해 내면적으로 형성된 자아는 언론·저작·출판·결사·집회의 자유에 의해 동료 인민들에게 표현되고 공유된다.
임시헌장은 이른바 표현의 자유를 세분화하여 서술하고 있고 이 정신은 제21조에서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현행 헌법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언론은 오늘날 언론매체로 혼동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말로 개인의 생각을 발표하는 것(speech)을 의미한다. 저작이나 출판은 인쇄된 형태로 표현하는 것(press)을 말하며, 결사와 집회는 단체나 집단을 만들어 의사의 집약이 가지는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의사를 표출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이렇듯 다양한 방식으로 향유되는 표현의 자유는 두 가지 차원에서 민주공화제의 근간을 이룬다.

우선 인민이 스스로의 인격을 동료 인민들과 공유하는 방식의 자유라는 점에서 개인의 개성을 발현하고 소통하는 필수조건이 된다. 표현의 자유는 개인과 사회적 차원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민주공화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만드는 기반이기도 하다. 공동체의 현안이 제안되고, 여론이 형성되며, 구체적으로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은 표현을 통한 소통이 없다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표현의 자유는 의견을 표명하는 자유뿐만 아니라 어떤 의견들이 존재하고 소통되는 지에 대해 ‘듣고 알 수 있는 자유’를 포함한다. 임시헌장이 표현의 자유를 세세한 행위영역별로 보장하고 있는 취지는 바로 이런 공론과정의 보장이 민주공화제의 기초를 이룬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자유 실현의 전제로서의 인신의 자유

신서·주소·이전·신체의 자유는 인신의 자유에 기초한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개인의 해방은 정신적 자유 외에도 신체의 자유로운 활동에 의해 구현된다는 점에서 부가적인 설명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인간의 자연적 권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봉건적 압제는 이처럼 기본적인 인신의 자유를 형벌이라는 수단을 통해 억압하는데 그 야만성의 본질이 있으므로 개인 해방의 기초가 인신의 자유에 기초하고 결국에는 민주공화제의 핵심전제가 되는데 별다른 의문이 없다.

문재인 정부들이 높은자, 가진자의 '갑질'행위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많아졌다. '맘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닌 '누구든 평등한 가운데 누릴' 자유가 올바르다는 사회적 공감이 커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진=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들이 높은자, 가진자의 '갑질'행위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많아졌다. '맘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닌 '누구든 평등한 가운데 누릴' 자유가 올바르다는 사회적 공감이 커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진= 연합뉴스

자유 실현의 물질적 기반이자 이념논쟁의 원인이 되는 소유의 자유

마지막으로 소유의 자유이다. 개인이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경제적 가치에 대한 지배권은 생존의 기초이기도 하면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행 헌법의 재산권에 대응하는 소유의 자유는 앞서 열거된 자유들과 더불어 근대 시민혁명과 인권선언의 직접적인 동기를 제공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소유의 자유는 인민이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주요한 기회를 제공하는 물질적 요소라는 특성 때문에 모든 인민들에게 그런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소유의 과도한 집중은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질서를 독과점에 의한 경제력의 남용으로 인해 공동체 경제의 불균형과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근대를 넘어 현대 사회로 전환되면서 가장 많은 논쟁과 부침을 겪게 되는 게 소유의 자유이다.

다른 자유가 대체로 최소한의 법적 규제를 통해 비교적 쉽게 최대한의 보장이 이루어지는 근본적 자유라면 소유의 자유는 법적 규제에 의한 조정에 의해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의 범위와 정도가 크게 변할 수 있는 성질을 가진다. 더구나 누군가가 더 많이 향유하게 되면 누군가는 생존을 위협받을 정도의 위험에 처하게 되는 특성이 있다.

이념적으로 좌와 우를 가르는 국가관을 낳게 되는 이유를 제공하는 자유인 것이다. 지난 호에서 자유의 전제가 평등일 수밖에 없음을 민주공화제적 관점에서 이해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러한 소유의 자유의 논쟁적 성격 때문이다.

민주공화제의 기초인 개인의 자율성과 균형적 인권관

소유의 자유가 제기하는 이념적 고민을 민주공화제의 관점에서 더 논의하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이번 호에서는 임시헌장에서 보장하는 자유의 목록을 통해 우선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은 민주공화제가 이들 기본적 자유를 보장하여 달성하고자 하는 궁극적 목적이 개인의 자율성 확보에 있다는 점이다. 자유의 전제가 평등이라고 강조하는 것이 자율적 존재로서의 개인의 지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평등은 그 자체가 실질적 행위를 보장하는 가치나 원칙이 아니다. 인민의 삶의 실체를 제공하는 것이 자유이며, 평등은 그 무엇의 평등일 수밖에 없고, 그 무엇의 중심에 자유가 있다.

즉, 평등은 자유의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유를 빌미로 동료 인민을 온갖 자연적 사회적 위험상태로 내몰 수 없듯이, 평등을 빌미로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주공화제가 추구하는 인권론은 자유의 전제가 평등이듯, 평등의 내용이 곧 자유임을 이해하는 균형적 인권관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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