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칼럼] 코로나 대란에서 성찰해야 할 '정치적 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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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칼럼] 코로나 대란에서 성찰해야 할 '정치적 자각'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20.03.0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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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⑲: 감염병 재난과 시민적 덕성
'네 탓'하기냐 연대의식이냐...재난 극복 방식이 공화국 운명 가를 시금석
민주공화제 작동 핵심요소는 '시민적 덕성'...능동적 정치참여로 시민적 책임성 발휘 필요
'공공성' 고려없이 재난법제, 보건의료, 교육, 고용 정책 공격하지 않았나 성찰해야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코로나 19가 급속도로 확산되어 재난적 수준에 다다르면서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정부뿐만 아니라 전사회적 노력이 요청되고 있다. 정치공동체인 공화국의 운명은 위기상항에 대한 대처과정에서 쉽게 확인될 수 있다.

시민들이 '네 탓'만을 하며 공동체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느냐 아니면 동료시민과 공동운명체에 대한 연대의식을 발현하여 위기를 훌륭하게 극복하느냐가 공화국의 운명을 가를 시금석인 것이다. 공화국은 우리 모두의 것이며 그 구성원이 직접 나서서 감당하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는 것이다. 평소에도 필수적이지만 감염병 재난에 더욱 빛나는 것이 시민적 덕성이고 재난은 우리의 공동체가 민주공화국임을 확인하게 되는 위기이자 기회인 것이다.

'공화제의 자산'으로서의 시민적 덕성

민주공화제는 헌정제도나 헌정원리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민주공화제를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한 핵심요소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시민적 덕성(civic virtue)'이다. 이 무형적 자산이 없이는 아무리 훌륭한 제도나 원리라도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사실 민주공화제를 뒷받침하는 정치철학인 공화주의(republicanism)가 자유주의와 같은 경쟁관계에 있는 정치철학과 확연히 구별되는 요소가 시민적 덕성이다. 덕 혹은 덕성이란 좋은 것, 즉 선(善)을 실현하기 위해 보여주는 탁월한 능력이나 힘을 뜻한다. 공동체를 화두로 삼는 정치철학의 차원에선 공동체 구성원인 시민의 덕, 즉 시민적 덕성이 문제된다.

시민적 덕성이란 시민이 그 자격에서 공동체가 공유하는 좋은 것-공동선(共同善, the common good)-을 실현하기 위해 보여주는 탁월한 능력이다. 시민적 덕성은 인간이 개인의 지위에서 선을 실현하기 위해 가지는 탁월한 능력과는 구별된다.

모든 공동체에 구성원의 덕성이 필요함은 자명하다. 문제는 어떤 덕성이냐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공동체의 목표에 대한 공공철학 혹은 정치철학의 차이도 무엇을 덕성으로 삼느냐이다.

공화주의의 경우 그 다양한 분파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구성원, 즉 시민으로서의 덕성을 그 가치체계의 핵심요소로 본다. 공화주의의 경우 공동체주의와 마찬가지로 ‘공동체적’ 인간-다른 사람과의 교류와 협력적 관계 속에서만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을 존재론과 인식론의 기초로 삼기 때문에 개인은 공동체의 관계 속에서 상호주관적으로 이해하는 특징을 가진다.

그 결과 공동선에 대한 태도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내포와 외연을 결정하는데 본질적 요소가 되며, 국가권력은 공동선을 보호하는 한편 개인이 예속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자율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고 촉진하기 위해 적극적 공공조정을 하는 것이 그 핵심기능으로 이해된다. 이 가치체계에서는 인간 자체의 본질은 시민으로서의 지위에 의해서만 발현될 수 있으므로 공동체 구성원인 시민에게 요구되는 덕성은 공동체 존립과 번영의 핵심요소이다.

마스크 공급 5부제가 실시되기 전, 지난 주말 서울 시내에 마스크를 구입하려는 시민들이 줄 서있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마스크 공급 5부제가 실시되기 전, 지난 주말 서울 시내에 마스크를 구입하려는 시민들이 줄 서있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시민적 덕성으로서의 정치참여와 시민적 책임성

공화주의 정치철학에서 강조되는 대표적인 시민적 덕성은 정치참여다. 공화주의 정치철학의 다양한 분파들 사이에서 시민적 덕성으로서의 정치참여의 본질과 특성 및 중요도에 있어 차이가 있지만 정치참여를 시민적 덕성으로 본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로 대표되는 고대 그리스의 공화주의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본질 탓에 공적 사안에 대한 정치 참여가 시민적 덕성의 핵심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며 시민은 정치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발현한다. 따라서 정치참여는 권리의 차원이 아니라 의무로 인식되는 시민 본연의 덕성이다.

반면 로마나 중세 이탈리아의 공화주의 전통이나 이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신로마공화주의파는 정치참여의 중요성을 부인하지 않으나 이를 인간 본질의 발현이라고 보기보다 개인이 자율성을 발현하는 하나의 조건이자 수단으로서 본다는 점에서 고대 그리스 공화주의와 차이를 보인다. 그래도 정치참여를 시민적 덕성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특히 정치과정에서 시민의 심의(deliberation)와 권력견제(contestation)를 가능하게 하는 시민의 정치참여가 공화제 성공의 관건임을 강조한다.

정치참여는 시민적 책임성의 표현이기도 하다. 공적 사안은 누구의 문제도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공화국의 안전과 자유를 위협하는 모든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했듯이 정치참여를 통해 공적 문제를 시민의 문제로 자각하고 그 덕성을 발휘하여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자가 바로 공화국의 진정한 시민인 것이다.

공화주의와 경쟁적 관계에 있는 자유주의 정치철학에서는 시민의 정치참여는 자신의 몫을 관철하기 위한 권리이지 시민의 덕성이 아니라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자유주의에서 국가권력은 오로지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악으로 만들어진 피조물이다. 반면 공화주의에서 국가권력은 시민이 주체가 되어 정치적으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공동생활의 필수조건이다.

민주공화제의 시민이라면 마스크 대란과 의료진·병상부족을 지적하면서도 평소 보건의료는 물론 교육, 고용의 공공성을 공격하지 않았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사진= 연합뉴스
민주공화제의 시민이라면 마스크 대란과 의료진·병상부족을 지적하면서도 평소 보건의료는 물론 교육, 고용의 공공성을 공격하지 않았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사진= 연합뉴스

코로나19 재난과 시민적 덕성

코로나19 재난은 21세기 대한민국의 새로운 분수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공화국의 과제와 미래를 일깨워주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시민적 덕성을 확인하는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우선 주권자인 시민은 방역의 대상이나 방관자가 아니라 방역의 방향과 방법에 대한 실천적 과제를 제시하고 선택하며 실행하는 주체임을 다시 한번 자각해야 한다. 이번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여러 시행착오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이 공화국으로서의 면모를 전세계에 보여주는 많은 긍정적 징표가 확인된 점은 자부심을 가질만하다.

공화국정신을 무색하게 할 정략적 접근으로 공포와 혐오를 남발하는 행태가 없지는 않지만 투명하고 과학적이며 절제와 동료애를 갖춘 대응으로 세계인의 평가를 받고 있다.

투명하고 과학적인 대응은 모든 정보의 공개원칙을 통해 공적 현안을 시민적 선택의 과정으로 만드는 핵심적 요소다. 절제된 대응은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을 기본으로 삼는 천박한 자유주의국가모델의 재난대응이 무분별한 ‘배제’와 ‘봉쇄’라는 일차원적 수준에 매몰되는 한계를 보여 주었다. 이는 자유주의 국가모델이 시민적 덕성의 중요성을 소홀히하여 너와 나를 따로 보고, 권력과 시민을 분리하고, 시장과 시민사회를 혼동하는 가치체계를 가진 근원적 한계에 기인한다. 

동료애에 투철한 응원과 격려, 희생과 봉사, 공공영역과 민간영역의 협업은 대한민국이 말 그대로 우리 모두의 공화국임을 확인시켰다. 투명·과학·절제·동료애에 기초해 감염병 재난에 대처하는 대한민국이 시민적 덕성이 발현되고 발현될 수 있는 기본조건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시민적 덕성의 진가는 단순히 당면한 재난사태의 구체적 현실에만 한정된 일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평소 감염병 재난의 가능성을 인지하고 방역관련 법제를 정비하는 한편 이를 합리적으로 운용할 공직자를 선출할 수 있는 정치적 자각이 필요하다. 시민이 직접 정치를 만들어가지 못하고 정치과정에서 소외될수록 재난시스템은 비현실적이고 무기력한 허울로 전락하게 된다. 정치참여에서의 탁월함을 의미하는 시민적 덕성은 긴급상황 뿐 아니라 평소 입법과정 및 행정과정을 비롯한 정치과정에서 경험을 통해 형성되고 발현되어야 한다.

공화국은 직업화된 정치인과 공무원에게만 맡겨두어야 할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공화국 시민이 끊임없이 합리적으로 선택해갈 우리 삶의 터전이다. 재난법제를 비롯한 공적 사안에 대해 심의하는 공론과정에 참여하는 한편 권력적 결정에 대해 사익이 아닌 공공의 관점에서, 정략이 아닌 공동선의 관점에서 견제하고 비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번 감염병 재난에 대처하는 공동의 경험을 통해 확인된 투명·과학·절제·동료애가 평소에도 공화국의 시민적 덕성인 정치참여를 통해 교육되고 연마되며 공유되어야 할 것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이 공화국을 지탱하는 공적 사안인가에 대한 인식전환도 요청된다. 예컨대 의료와 보건은 비용절감과 효율성만으로 구성되는 사용재가 아니라 공공자원임이 확인되었다. 가난과 질병과 같이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은 공화국의 제1차적 과제이다. 보건과 의료는 공화국 시민 모두가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자신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기본조건을 갖추는 필수요소이다.

돈의 많고 적음으로 혜택을 더 받고 덜 받아야 할 영역이 아니다. 누가 평소 비용절감과 효율을 내세워 공공의료시스템을 붕괴시켜 왔는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현재까지도 불투명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공화국의 이상과 시민으로서 갖추어야할 정치적 자각을 가다듬는 소중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감염병 재난에 대처하는 최일선 의료진의 희생과 또 다른 생존의 위협에 내몰리는 환경 속에서도 동료애로 서로 격려하고 돕는 시민들의 경험이 개인적 고난이 아닌 사회적 재난의 기억으로,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을 '남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으로 이해하는 소중한 경험으로 축적되기를 소망한다.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현재 한국언론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공법학회·한국헌법학회 부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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