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칼럼] 광복절 소환된 ‘헌법 제10조 시대’의 조건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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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칼럼] 광복절 소환된 ‘헌법 제10조 시대’의 조건과 전망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20.08.17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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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㉘: 공화제와 시민사회(3)
대통령 경축사, 개인존엄과 행복 실현을 최고가치로 하는 국가상 제시
광복은 식민통치 청산과 민주공화체제 구축의 이원적 계기
국가의 기본적 인권 존중·보호·실현의무는 정치적 수사가 아닌 실질적 실현과제여야
‘헌법 제10조의 시대’는 안전·자유·행복의 확보를 위해 욕망의 절제와 시민적 각성을 요구해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 헌법의 핵심조항인 제10조가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소환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말 그대로 ‘빛의 회복’을 기념하는 국경일인 광복절에 문재인 대통령은 헌법을 소환하여 광복의 의미를 되살리려 노력했다.

문대통령은 75주년을 맞은 광복절이 과연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진정한 ‘빛의 회복’으로 실현되었는지 환기시키면서, 국민 모두에게 의미있는 빛이란 개인의 존엄이 존중되는 나라라는 점을 역설했다. 이제 한반도에 터 잡은 대한민국은 “개인이 나라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나라”임을 확인하면서 ‘헌법 제10조의 시대’를 선언했다. 촛불혁명을 전후하여 이제 우리 모두에게 익숙해진 헌법 제1조뿐만 아니라 헌법 제10조의 의미를 환기한 점을 되새겨볼 대목이다.

헌법 제10조의 구조와 의의

앞서 인용되었듯이 헌법 제10조는 두 문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단은 모든 국민이 가지는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있다. 바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이다.

헌법학계에서는 이 권리를 기본적 인권의 기본이념 혹은 원형으로 이해한다. 즉, 우리 헌법의 기원인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4조가 신교·언론·저작·출판·결사·집회·신서·주소·이전·신체·소유로 열거했던 시민적 자유(civil liberties)를 계승해 헌법 제11조부터 제23조까지 개별적으로 확인하고 있지만ㅡ 이 규정들이 아니더라도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만으로도 시민적 자유의 보장이 우리 헌법에 근거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본다.

더구나 헌법은 제37조 제1항에서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이 경시되지 아니함을 거듭 확인하고 있어 우리 헌법은 기본적 인권의 보장에 관한한 매우 적극적 태도를 표명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후단은 전단의 일반선언에 더하여 국가의 존립목적과 국민과의 관계를 명확히 확인하고 있다. 특히 두 가지 점을 주목해야 한다.

첫째, 기본적 인권의 주체가 개인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의 단위는 자연적 독립존재인 개인이다. 근대시민혁명이 르네상스, 종교개혁, 산업혁명이라는 사회·문화·경제혁명의 계기를 거쳐 봉건적 억압으로부터 개인의 해방을 정치적으로 확인한 계기였음을 거듭 확인하는 의미이다.

둘째, 국가의 존립목적이 개인이 가지는 기본적 인권의 보장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 기본원칙이야말로 헌법 제1조 제1항에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선언한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민주공화국이란 개인 존엄의 보장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그 존엄이 온전히, 실질적으로, 아무런 억압이나 예속도 없이, 실현될 수 있도록 시민 모두를 위한 정치공동체를 꾸리는 것이다. 민주공화국의 핵심요소인 시민의 자율성과 자치의 기초가 개인의 존엄과 가치에 기초한 것임을 확인하는 것이 헌법 제10조인 것이다.

지난 15일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독립유공자 고 최사진 씨의 배우자 박명순 씨에게 대통령 표창을 수여한 후 인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15일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독립유공자 고 최사진 씨의 배우자 박명순 씨에게 대통령 표창을 수여한 후 인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헌법 제10조와 광복

개인존엄 중심주의의 확인은 특히 광복과 관련해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대한국민에게 광복의 의미는 이중적이다. 식민통치로부터의 해방임과 동시에 1919년 3.1운동으로 확인된 민주공화체제에의 열망을 현실화하는 계기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광복의 의미는 우리 현대사의 질곡 속에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다. 특히 개인존엄에 입각한 식민지배의 청산은 현재진행형이다. 경축사에서 확인했듯이 현안이 되어 있는 일본징용기업의 손해배상문제가 대표적이다. 이미 대법원은 국가권력 사이의 일방적 합의만으로 개인존엄을 박탈한 강제노역이나 성적 수탈의 책임이 면제되지 않는다는 국제법상 보편원칙을 재확인한 바 있다.

또한 광복은 식민통치의 청산을 넘어 새로이 정립된 국가의 기본적 인권 보장 의무가 단순한 정치적 수사에 그치지 않을 때 완성된다. 헌법 전문에서 헌법제정의 목적으로 제시되었듯, 국가는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는 것이 그 존립의 근거이다. 개인존엄에 기반한 안전·자유·행복은 현세대만의 것이 아니라 미래세대까지 영원히 보장되어야 할 지상가치이다. 자연재난과 감염병재난은 물론 궁핍과 질병과 같은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해방되어 스스로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공동체가 진정한 민주공화국이다.

민주공화국을 자임하는 국가는 스스로 기본적 인권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존중의무) 사회적 기득권에 의한 훼손으로부터 인권을 보호하고(보호의무) 그 존중과 보호의 실질적 수준이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구현될 수 있도록 노력할 의무(실현의무)를 진다.

‘존중의무’에 따라 국가는 네 가지 요건을 갖춘 경우에 한하여 기본적 인권을 제한할 수 있다. 헌법 제37조 제2항이 정하고 있는 요건이다. 첫째, 오로지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라는 공익적 목적만을 위해서 인권을 제한할 수 있다(공익성). 둘째, 이러한 목적을 가지더라도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만 제한할 수 있지 필요한 범위를 벗어나서 제멋대로 규율할 수 없다(과잉금지 혹은 비례원칙). 셋째,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근거해서만 제한할 수 있다(법률주의). 넷째, 제한하는 경우에도 기본적 인권의 본질적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본질적 한계).

또한 ‘보호의무’에 따라 국가는 기득권을 가진 개인이나 단체가 권리를 오남용하지 못하도록 규제와 조정을 적극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동료시민을 합리적 이유없이 차별하거나 경제적·사회적 우월성을 이용하여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는 근로규칙을 제정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 특히 경제영역과 관련하여 헌법 제119조 제2항이 확인하고 있듯이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함으로써 개인과 기업의 자율과 창의가 온전히 구현될 수 있는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구축해야 한다. 생산수단의 독과점이나 과다한 임대료나 지대에 의해 생존이나 생산성의 향상과 연계되지 아니하는 불로소득의 무분별한 추구에 의해 시장경제질서가 위협받는 경우를 예방해야 한다.

한편 ‘실현의무’는 국가에게 기본적 인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명령한다. 사실 시민적 자유를 아무리 보장한들 궁핍이나 질병으로 생존이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는 그 의미가 상실되기 마련이다. 특히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사회양극화의 상황에서는 경제사회적 이유로 개인존엄이 훼손되지 않도록 공동체 전체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리 헌법은 제31조에서 제36조까지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 개인존엄을 존중하는 근로의 권리, 근로관계에서 사회적 교섭력을 대등하게 행사하기 위한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사회보장과 사회복지정책에 따라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 등을 시민적 자유와 더불어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로 확인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 있다. 

‘헌법 제10조 시대’의 필요조건

개인존엄에 기초한 안전·자유·행복의 보장을 국가의 존립목적으로 하는 ‘헌법 제10조의 시대’가 성공적으로 구현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이 시대가 국가의 기본적 인권 보장 의무를 확인하는 것만으로 자동적으로 실현되지 않는 것은 자명하다. 사실 국가는 시민들이 공무를 담당하고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관념적 틀에 불과하다. 그 실질은 시민들의 인식과 행동에 달려있는 것이다. 공무를 맡은 시민이 기본적 인권의 존중·보호·실현의무를 자각하고 솔선하여 실천하지 않으면 국가의 소임이 충실히 이루어지지 않을 위험성이 높다. 국민의 안전과 행복은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을 사유화했던 국정농단의 뼈아픈 기억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경계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현대 민주사회에서 개인존엄의 최대 위협은 양극화에 따른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나온다.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국가에 의한 인권 침해보다는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른 인권 침해의 위험이 더 커지는 것이다.

개인존엄의 지엄함이 무절제한 욕망의 실현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개인존엄은 공동체의 질서와 복리와 더불어 할 때라야 제대로 보장될 수 있다. 주거안정성보다 임대수익의 보장이 우선되고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는 자조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사회적 신분이 되고 모두를 평등하게 대우하자는 차별금지법 하나 만들지 못하는 환경에서, 자살율과 저출산율이 세계최고를 다투는 조건에서, 산업재해로 애꿎은 생명이 줄줄이 죽어나가는 여건에서, 헌법 제10조는 죽은 조항이 된다.

'헌법 제10조의 시대'는 곧 '헌법 제1조의 시대'와 일체를 이룬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선언은 국가의 기본적 인권 보장 의무와 한 몸을 이룬다. 오로지 국민의 안전·자유·행복을 최고도로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존재하며 그 국가는 국민이 만드는 것이다. 개인의 존엄으로 스스로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민주공화국의 버팀목이며 헌법 제10조의 시대를 여는 필요조건이다.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현재 한국언론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공법학회·한국헌법학회 부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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