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칼럼] 형벌만능주의:사법불신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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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칼럼] 형벌만능주의:사법불신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19.03.31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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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임횡령, 직권남용 `민사책임`전환, 구속만능주의 반드시 고쳐야
▲ 김종철 연세대 법전원 교수

우리 생활의 행동기준이 되는 법의 목적은 곧잘 정의(正義)라고 단정된다. ‘올바른 뜻 혹은 올바른 도리’로 이해되는 정의는 영어 Justice의 번역이다. Justice는 정의 뿐 아니라 재판 혹은 사법(司法)으로 번역된다. 또한 최고위법관의 명칭, 즉 우리의 경우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를 구성하는 판관을 Justice라고 부른다. 결국 정의, 재판, 사법, 재판관은 서양의 역사에서는 같은 단어로 표현되는 다양한 측면인 것이다.

Justice의 어원은 로마의 신화에서 정의를 상징하는 여신 유스티치아(Justitia 혹은 Iustitia)에 있다. 우리가 흔히 ‘정의의 여신’(Lady Justice)으로 알고 있는 디케(Dike)는 인간사에서 정의를 세우는 역할을 했던 그리스 신화의 여신이고, 역시 신의 세상에서 정의의 사도였던 어머니 여신 테미스(Themis)와 더불어 로마신화의 유스티치아에 비견된다.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혹은 디케나 테미스)의 이미지는 저울(scales), 칼(sword), 그리고 눈가리개(blindfold)로 구성되어 있다. 여신이 들고 있는 저울은 당사자의 주장을 입증하는 증거의 가치를 측정하는 도구를 상징한다. 증거가 신빙성이 있다면 그 증거에 기초한 주장은 판결의 향방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칼은 결정의 공적인 권위를 상징한다. 또한 악(Evil)으로부터 선(Good)을 수호해서 정의를 실현하는 무기이기도 하다. 눈가리개는 편견이나 사심이 없는 공평무사(公平無私), 즉 공정성(impartiality)을 상징한다. 그러나 정의의 여신은 원래 밝은 눈을 가진 판단력이 생명인데 굳이 눈을 가려야만 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고, 눈을 가리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의 대법원에도 정의의 여신상을 두고 있는데 눈가리개가 없다. 아울러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고 한복을 입은 것이 특징이다.

어떤 방식으로 정의의 여신을 표상하건 역시 중요한 것은 저울의 이미지일 것이다. 우리 대법원이 서양의 전통을 한국화하면서 칼과 눈가리개를 없앴지만 저울만은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저울없는 정의의 여신은 더 이상 정의의 여신으로 불릴 수 없었을 것이다.

서양의 신화까지 소환해서 법, 정의 그리고 사법의 이미지를 되새겨보는 것은 법원의 판결을 둘러싼 논란이 그 어느 때보다 양극화되어가는 세태 때문이다. 국정농단의 한 기둥을 이룬 것으로 의심받는 양승태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에 대한 재판이 개시되었으나 그 정당성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고 이와 관련된 현직 법관들에 대한 탄핵논의가 잠복해 있다.

정권실세라는 현직 도지사에 대한 법정구속을 둘러싸고 정파 간 상반된 대응이 전개된 것 또한 사법불신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는 새 정부 초대 환경부장관의 블랙리스트 직권남용 의혹에 대한 검찰의 영장청구를 기각한 법원결정을 두고 세간의 평가가 너무 극단으로 엇갈리고 있다. 분쟁의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재판, 특히 사회질서의 기초를 이루는 형사사법이 불신을 받게 되면 사회갈등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증폭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사법불신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따지자면 한정이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판을 사법행정의 도구로 사용하고 정치적 거래마저도 거리끼지 않았다는 의혹을 초래할 정도로 심화된 관료화와 중앙집권화에 찌든 사법행정체계가 문제일 것이다.

▲ 유해 성분이 포함된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 인명피해를 낸 혐의를 받는 안용찬(60) 전 애경산업 대표. 법원은 "다툼의 여지가 있고, 구속해야 할 사유, 필요성과 상당성이 있는지 인정하기 어렵다"며 안 전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사진= 연합뉴스

그러나 우리가 놓치고 있는 더 근본적인 문제는 모든 일에 형사적 책임을 부과하고 단죄하려는 처벌만능주의, 형사사법만능주의의 사회문화일 수도 있다. 검찰이 정치와 사회의 중심처럼 군림하는 검찰공화국이라는 부끄러운 사회현상이 지속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기, 배임과 횡령, 명예훼손과 같이 민사책임과 사회적 책임으로 해결되어야 할 사안들이 형사사법의 주요대상이 되어 사법과잉의 사회를 만들었다. 이제 ‘직권남용’이 대부분의 공직자를 교도소 담장 위를 걷게 만드는 죄목으로 등재될 전망이다.

사회질서와 국가질서를 훼손하는 이들 죄명이 형법전에서 사라져야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 적용범위나 요건은 최대한 엄격하게 해서 누가 보더라도 명백하게 악의적이고 죄책이 무거운 경우에 엄중하게 처벌하지만 다른 공익과의 조화가 필요하거나 보는 시각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경우까지 형사범죄로 처벌하는 것은 형사사법체제의 안정성을 해치고 사법불신을 초래하는 해악이 오히려 더 크다는 논지이다.

그런 사안들은 민사책임과 징계 혹은 사회퇴출만으로도 충분한 제재가 가능하도록 형사사법체제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더더구나 ‘무죄추정’의 헌법적 원칙을 무색하게 만드는 구속만능주의는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무엇보다 사법 중에서도 형사사법의 결론을 두고 극단적 찬양과 불복이 교차하는 것은 국가질서의 근본을 위협할 수 있는 문제라는 공감대가 필요하다.

결국 사법불신을 극복하는 첫걸음은 신통력을 가진 정의의 여신마저도 증거가 스스로 웅변하는 무게에 의존하여 판단하도록 상징하는 저울의 본질적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선과 악의 이분법적 저울질만으로는 쉽게 결론내리기 어려운 정치적, 사회적 현안을 형사사법의 잣대에 너무나 많이 맡기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형벌만능주의 혹은 ‘정치와 사회의 과잉형사사법화’는 사법과정을 끊임없는 정치적, 사회적 편가르기의 대상으로 몰아갈 위험이 크다.

모두 한 발짝씩 물러서서 문제된 사법적 결정에 대해 저울로 달만한 일인지, 사용된 저울은 어떤 종류의 것인지 따져보는 안목을 기를 필요가 있다. 막연한 기대나 정치적, 사회경제적 선호, 심지어는 법이나 판관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현재 한국언론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공법학회·한국헌법학회 부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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