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칼럼] 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⑩: 앙가주망의 공화제적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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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칼럼] 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⑩: 앙가주망의 공화제적 의의
  • 김종철
  • 승인 2019.08.3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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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장관 후보자 지명 '앙가주망' 논란 재연
공화제 기본원칙은 정치참여 기회균등...누구든 공무 참여 보장해야
교수만 '휴직후 공직 참여 가능'...특권계급처럼 비쳐진 건 반정치적 제도 탓
교사·공무원, 민간인 참여제한, 반공화적 발상...정치기득권의 '독과점' 막아야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두 차례의 글에서 ‘대한민국임시헌장’에서 채택한 민주공화제가 제대로 완성되기 위해서 보통민주화가 필요하고 그 필수요소로 선거연령과 피선거권 연령을 낮추어야 할 필요성과 당위성이 있음을 짚어보았다.

이번에는 조국 전 민정수석의 법무장관 지명을 계기로 요즘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앙가주망’ 혹은 ‘폴리페서’ 논쟁을 중심으로 공무담임권이 보통민주화를 내용으로 하는 공화제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살펴보자.

프랑스 앙가주망의 이상과 사례

앙가주망의 대표적 사례로 언급되는 에밀 졸라의 경우를 보자. 반유대주의의 광풍이 휩쓸고 있던 1898년, 분연히 공화국 대통령에게 공개 편지를 보내 애국국민이지만 오로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무고한 죄를 뒤집어쓴 드레퓌스의 결백을 주장하고 마녀사냥의 배후에 선 프랑스군의 무모함을 중대한 범죄행위로 고발했다.

결국 그 건으로 인해 망명생활까지 강요당했던 졸라의 양심있는 행동이 있었기에 시대착오적인 인종주의적 마녀사냥에 나섰던 프랑스군과 프랑스 사회가 훗날 과거의 과오를 번복할 수 있었다. 이 앙가주망의 에피소드는 다수대중의 소수자에 대한 맹목적 폭력을 고발하는 지식인의 숙명을 보여준다.

한국에서의 폴리페서 혹은 폴리널리스트의 경우

한편 우리나라에서 '폴리페서(polifessor)'란 조어는 정치참여에 적극적인 교수를 일컫는데 보통 ‘권력바라기’라는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비슷한 조어로 언론인의 정치참여를 비판하는 뜻으로 '폴리널리스트(polinalist)'도 있다.

민주화 과정에서 우리나라에서도 교수나 언론인들의 앙가주망은 존중받는 경향이 없지는 않았다. 주요 국면마다 교수들의 시국선언이나 언론인들의 언론자유를 향한 저항이 독재권력의 종말에 일정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교수들과 언론인들이 독재권력에 기생하는 행태도 적지 않았고, 따라서 앙가주망과 “어용”논란이 병행됐다. 

우리나라의 폴리페서 논란은 사실 앙가주망의 차원보다는 어용논란을 계승한 측면이 강하다. 즉, 자신의 이해관계를 아랑곳하지 않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신장이나 민주주의를 위한 개혁 등 사회발전에 기여하기 보다는 지식을 팔아 개인의 입신양명을 추구하는 권력바라기의 속성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의 담론수준을 보면 아예 전후 배경을 따지지 않고 교수나 언론인의 정치참여를 금지시켜야 한다는 1차원적 차원에 머무르고 있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려면 교수직은 휴직이 아니라 사직해야만 가능하도록 국회법이 못 박는 소위 '폴리페서 방지법안'이 개혁의 미명을 달고 2014년 도입되기도 했다(국회법 제29조 제2항 제3호).

지식인의 무분별한 정치참여가 가져온 폐해가 너무 커서 국가와 사회의 공화제적 운용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다면 이런 경향에 토를 달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폐해가 있었는지 혹은 예상되는지, 그 폐해가 공화국 공민의 공무담임권을 박탈할 정도로 중한 것인지 진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만약 특정 전문직역에 대한 부정적 조어나 담론이 구성원인 공민들의 평등하고 자유로운 정치참여에 터잡은 민주공화국의 기본원칙과 가치를 훼손하는 무모한 선동에 불과하다면 하루빨리 진지한 성찰을 거쳐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폴리페서와 폴리널리스트로 오염된 앙가주망을 공화제의 본질과 정신에 입각해서 원론적으로 성찰해 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지명을 계기로 '폴리페서' 논란이 재연됐다. 정치참여를 극히 제한하고 있는 우리나라 국회법, 선거법의 반공화국적 제한이 문제다. 사진= 연합뉴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지명을 계기로 '폴리페서' 논란이 재연됐다. 지식계층이나 민간인의 직무와 공무 겸직을 제한하고 있는 반공화제적 법제와 문화가 근본문제다. 사진= 연합뉴스

민주공화제의 기초인 자유롭고 평등한 공무담임권

대한민국임시헌장 제5조는 선거권 및 피선거권만을 공민자격이 있는 인민에게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국민대표의 역할을 맡는 경우를 대표적인 공무담임의 사례로 확인한 것이고 민주공화제에서 공동체의 현안을 다루는 공직은 기본적으로 공동체 구성원인 공민에게 열려있는 것이 마땅하다.

공화국 인민들의 평등하고 자유로운 관계 속에서 스스로가 국가적 결정의 주체로 관여하는 자치를 강조하는 공화제의 관점에서 볼 때 공공의 대변자인 국가의 공무에 참여할 기회가 모든 공민에게 보장되는 것이 기본이다. 이런 정신을 이어받아 1948년 제헌헌법은 제25조에서 공무원을 선거할 권리를, 제26조에서 공무를 담임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임시헌장의 정신을 거듭 확인했고, 현행 헌법은 제24조와 제25조에서 각각 선거권과 공무담임권을 보장하고 있다.

민주공화제의 기본이상은 자치이다. 자치의 요소인 정치참여는 공화국 공민의 의무이다. 다만 그 의무를 어느 수준에서 어떤 방법으로 실현할 지에 대한 자율적 재량의 여지가 분명히 있다.

고도로 산업화하고 전문화된 현대사회에서 유급 국회의원처럼 정치에 대한 적극적 참여를 직업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직업과 정치의 분리는 공화국의 존립근거를 훼손하지 아니하는 범위와 수준에서 정해져야 한다. 즉 직업과 정치의 분리가 원칙이 아니라 정치참여 즉 공무담임 기회균등이 공화제의 원칙이다.

각자의 선택에 따른 생업에 종사하면서 정치적 공무를 자유로이 맡을 수 있는 조건은 민주공화제의 필수적 조건인 것이다.

공민권 제한 담론의 반공화제적 본질

모든 공민에게 보장된 기본권인 공무담임권이 교수나 언론인 등 특정지식계층에게는 제한될 필요가 있는가?

직업윤리 차원에서 주어진 직무에 전념하는 것을 요구하는 차원으로 정치적 논란거리가 된다면 이해될 수 있지만 교수의 정치참여를 봉쇄하는 수단논리로 이용된다면 이는 엄연히 민주공화제의 근본문제를 건드리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폴리페서론이 안타까운 것은 유독 교수들만 부당하게 양수겸장의 특권을 누리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 오도된 전제 때문이다. 우리 법제는 직업공무원이나 국공립은 물론 사립학교의 교사의 정치참여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일반 국민의 경우에도 직장을 휴직하고 공직에 취임하는 것은 법에 의해 규제될 뿐만 아니라 사실상으로도 불가능하다.

정치나 공직은 공화국 공민의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것”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반공화적 환경에서 휴직하고 공직에 취임하는데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보이는 교수라는 직업이 얼마나 특권계급처럼 비춰질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민주공화제의 정신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우리법제와 문화의 문제에서 초래된 것임을 유의해야 한다. 누구나 정치나 공직에 참여하다 생업에 복귀할 수 있는 조건이 공화제의 원칙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교수에게만 공무담임권을 특혜로 보장하는 반공화적 법제나 문화가 근본문제임을 알 수 있다.

교수는 물론 교사나 직업공무원, 나아가 민간영역의 전문가들이 정치과정에 참여해 공공의 사안을 해결하는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참여를 이해관계에 매몰된 권력적 욕망의 실현이나 기본적 권리의 실현이라는 차원에서만 인식하는 한계를 넘어 공화국의 구성원인 공민으로서 자신의 재능과 자질을 사익이 아닌 공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공화제의 기본요소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런 공화제의 기본이 제대로 구현된다면 폴리페서나 폴리널리스트라는 부정적 조어는 불필요하거나 순수히 직업윤리 차원의 미시적 타당성 논란에 국한해 쟁점이 될 수 있을 뿐이다.

정치혐오·탈정치·반정치 그리고 새정치 신드롬의 반공화적 성격

특히 정치참여의 진입장벽을 쌓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조어들이 난무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치혐오의 또 다른 단면이라면 더욱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민주화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새정치”신드롬의 배후에 드리운 탈정치, 반정치 정서의 대표적 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일상에서 정치를 제거하는 위험한 경향이 정치혐오, 탈정치, 반정치의 경향이다.

끊임없이 무결점의 백마 탄 기사를 정치지도자로 수혈하도록 요구하는 ‘새정치’ 신드롬은 공직을 공화국 공민의 기본의무로 삼고 일상생활과 정치를 지속적으로 연계하는 공화제의 기본이상에 걸맞지 않는 신기루일 공산이 크다.

정치혐오를 반기는 것은 그런 진입장벽을 통해 정치과정을 독과점하는 정치사회적 기득권이지 공화국의 주인에게는 오히려 해악이 될 뿐이다. 직업을 이유로 정치진입을 막는 담론은 민주공화국의 자원을 고갈시키고 정치적 독과점을 심화시킬 뿐이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현재 한국언론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공법학회·한국헌법학회 부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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