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칼럼] 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⑦: 공평하고도 실질적인 과세의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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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칼럼] 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⑦: 공평하고도 실질적인 과세의 의의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19.07.0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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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유지에 필요한 공적 경비 조달로서 '납세의 의무'
현행헌법 59조, 과세법률주의 명문화...평등·실질과세 지향
미국 부유세 도입 움직임, 민주공화제 본질 실천하려는 노력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호에서 전개했던, '대한민국임시헌장’에서 채택한 민주공화제가 민주복지국가를 지향한다는 해석은 사실 민주공화제에서 인민이 누리는 권리가 공동체를 구성하는 시민의 의무와 결합되어 있다는 근본명제를 전제로 한다.

대한민국임시헌장 제6조는 교육·납세 및 병역의 의무가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그 중 교육의 의무와 결합한 공교육 강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소개한 바 있다(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③: 공교육 강화가 필요한 이유).

이번에는 근대국가가 전제하고 있는 납세의 의무의 민주공화제적 의미를 되새겨보자. 특히 민주공화제가 민주복지국가를 포섭한다면 그 재정적 기반은 납세의 의무를 통해 원칙적으로 실현된다는 점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1215년 영국 존 국왕은 윈저성 앞 평원에서 인신의 자유와 소유권 등 권리를 자의적으로 침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마그나 카르타를 공포했다. 사진= 게티이미지
1215년 영국 존 국왕은 윈저성 앞 평원에서 인신의 자유와 소유권 등 권리를 자의적으로 침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마그나 카르타를 공포했다. 사진= 게티이미지

민주공화제 유지를 위한 기본의무인 납세의 의무

오늘날 공동체를 창설하고 유지하면서 인민의 평등·자유·참정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공동체의 물리적 안전, 즉 안보와 함께 공동체의 유지에 필요한 공적 경비, 즉 재정을 안정적으로 조달하는 것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 안보도 결국 충실한 재정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납세의 의무의 중요성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국가의 재정조달 방식은 크게 국가가 직접 경제주체가 되어 경비를 조달하는 방식과 소유의 자유를 가지는 인민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의 결과 형성된 재산에 대해 과세 방식으로 조달하는 방식이 있다. 개인의 자율성을 소유의 자유에 기초해 확보하는 민주공화제에서 국가와 시장의 구별을 무색하게 하는 전자의 방식이 중심이 되기는 힘들다. 결국 납세의 의무를 요소로 재정을 조달하는 방식이 채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근대적 납세와 근대적 납세의 본질적 차이

사실 소유의 자유를 일반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도 납세는 사회적 신분에 얽매여 있던 인민에게 일방적으로 부과되어 왔다. 그러나 이런 전근대사회의 납세 강제는 공동체 구성 주체이자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자유의 주체로서의 인민의 지위와 결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근대국가의 납세와 근본이 다르다. 납세의무의 민주공화제적 의의를 살펴보아야 할 이유다.

근대적 납세의무의 시초인 마그나 카르타

근대국가의 납세의 의무와 관련해 지배자와 납세자의 관계를 법적으로 정돈하려는 시도를 상징하는 계기로는 보통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대헌장[大憲章])를 든다. 계속되는 봉건전쟁의 실패로 엄청난 재정 압박에 맞닥친 존(John) 국왕은 봉건계약을 자의적으로 파기해 봉건적 과세를 남발하거나 당시 재정수입에 중요했던 삼림(森林)등 봉건귀족과 자유민의 소유권을 회수하려 했다.

무분별한 군사적 동원의 적폐는 물론 경제적 수탈에 직면한 봉건귀족들과 자치권의 상실을 우려한 런던 등의 자유민들은 국왕을 압박했고, 존 국왕은 결국 1215년 윈저성 앞 템즈강변의 러니미드 평원에서 인신의 자유와 소유권 등 권리를 자의적으로 침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마그나 카르타를 공포하지 않을 수 없었다.(존 국왕은 곧바로 이 헌장의 무효를 주장하며 동분서주하다 이듬해 급사하고 만다.)

원래 마그나 카르타는 법률조문의 형식을 갖추지 않았으나 이후 수차례의 법률화 과정을 거치면서 법조문과 같이 일련번호가 붙여졌다. 1215년 마그나 카르타의 12번째 법문은 군역대납금(軍役貸納金, scutage) 등 조세는 오로지 공동체의 동의가 있어야만 부과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후속 마그나 카르타에서 지속적으로 계승되지는 못했지만 과세에 납세자의 동의를 조건으로 하는 이 원칙은 오늘날 납세의 의무의 전제가 되는 조건인 민주적 동의나 정치적 참여의 기원이 되었다.

아무런 정치적 참정권을 보장받지 못하던 식민지 미국에 모국 영국이 세금을 과다에게 징수한 보스턴 차(茶)사건에서 촉발된 미국독립전쟁이나 소유권의 신성불가침성과 공공필요에 의한 법률적 근거에 의해서만 제한될 수 있음을 선언한 프랑스 인권선언 이후, 근대국가의 상징적 명제가 된 "대표없는 과세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는 근대적 국가운영원칙, 즉 과세법률주의라는 특별한 법치의 전범이 마그나 카르타였던 것이다.

미국의 78번째, 세계 233번째 부자인 엘리 브로드(85). 그는 지난달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을 통해 자신에게 세금을 더 많이 부과해 보건, 공교육 등 계층사다리를 회복하는 정책에 사용해달라고 주장했다. 사진= EPA연합뉴스
미국의 78번째, 세계 233번째 부자인 엘리 브로드(85). 그는 지난달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을 통해 자신에게 세금을 더 많이 부과해 보건, 공교육 등 계층사다리를 회복하는 정책에 사용해달라고 주장했다. 사진= EPA연합뉴스

과세법률주의와 민주공화적 납세의무의 관계

과세법률주의는 근대적 납세의 의무의 전제조건이며, 납세의 의무가 아무런 제약없이 구현되는 의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과세는 오로지 납세자인 인민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법의 형식으로 결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확인하는 것이다. 민주공화제의 기본원리인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의해 납세의 범위와 조건을 형성하는 국가의 권력은 제한을 받는다.

민주적이고 법치의 정신에 부합하는 과세법률주의는 대한민국임시헌장에서는 명문화되지 않고, 납세의 의무라는 형태로만 구현되었지만 1948년 제헌헌법이후 명문화돼 현행헌법 제59조에 이르고 있다.

이 과세법률주의의 핵심원칙은 평등과세원칙과 실질과세원칙이다. 납세는 공평하게 국민의 실질적 조건에 맞춰 공평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소유의 자유에 의해 실현된 개인의 재력에 비례해 부과되어야 한다(능력에 따른 납세원칙).

예컨대, 부양가족이 있는 경우에는 그 필요경비가 삭감되어 부과되어야 부양가족이 없는 경우와 동일한 조건이 되는 것과 같이 동일한 소득은 동일한 조건을 전제로 과세되어야 한다(수평적 조세정의).

또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최소한 소득에는 납세를 면제하고 소득이 많고 재산이 많은 경우 더 많은 세금부담을 하는 것이 공화적 정의관념에 부합한다(수직적 조세정의).

미국에서의 부유세 도입론과 민주공화적 납세의무

최근 가장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에 따라 사회경제질서를 구축한 것으로 잘 알려진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자산가들이 부유세 도입을 주장해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미국 민주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엘리자베스 상원의원이나 샌더스 상원의원은 부유세 도입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생존이나 개인적 자유와 권리의 실현에 필요한 수준을 뛰어넘는 부는 동료시민과 인류의 기회를 박탈하고 생존의 기반마저 위협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과도한 부의 집중은 자유로운 시장질서를 교란시키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결국 각자가 처한 실질적 조건에 따라 납세의 의무의 실질적 내용이 달라질 수 있고 민주적 대의절차를 거쳐 법률로 그 내용이 결정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한다.

자유시장경제의 대명사인 미국에서도 선각적 정치인과 기업인들은 민주공화제의 본질이 지향해야 할 바를 실질적으로 균등한 납세의무로부터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납세의무가 민주복지국가를 포섭하는 민주공화제의 본질임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소중한 증거다. 민주공화국 100년을 맞는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현재 한국언론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공법학회·한국헌법학회 부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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