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칼럼] 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⑭: 국회의원 정수 증원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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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칼럼] 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⑭: 국회의원 정수 증원이 필요한 이유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19.11.02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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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 다양한 의견 수렴위해 대표의 다양성 반영할 규모돼야
미 연방의원 숫자와 국내 의원수 비교 '악의적 왜곡'...50개 주의원과 연방의원 합쳐서 봐야
국회의원 300인 정족수 족쇄 유지할 명분 없어....의원정수 증대를 위한 공론 부족이 문제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민주공화제에서 국가권력구조 형성의 제1원리가 주권재민의 원리이며, 이 원리를 실현하는 현실적 방안으로 의회주의에 입각한 대의민주제가 발전해 왔음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그런데 대의민주제의 민주공화제적 기초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많이 부족한 형편이다. 무엇보다 주권재민과 대의민주제의 관계는 전문가도 쉽게 이해하기 힘든 난제이고 헌법학이나 정치학의 근본과제이기도 하다.

대의민주제의 본질에 관한 두 가지 입장

크게 대의제의 두 가지 문제를 민주공화제의 관점에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대의민주제의 본질이 무엇이냐의 문제이다.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대의제에서 주권자와 대표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주권자는 대표자에게 민주적 정당성을 제공해 주는 것으로 족하고 대표에게 자유위임에 따라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해 주는 것을 대의민주제의 본질로 보는 입장이 있다. 이 입장에 따르면 주권자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라기보다 이념적 통일체인 공동체 전체 구성원을 정치체(body politic)로 보고 현실적 권력은 대표자가 자율적으로 실행하는 대의제를 추구한다.

반면 주권자가 대표에 대한 민주적 정당성의 제공자적 지위를 넘어 지속적으로 대표의 자율권을 제약하여 주권자의 정치적 결정권을 반영하도록 요구하는 것을 대의민주제의 본질로 보는 입장이 있다. 이 입장에 따르면 주권자의 정치체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유권자의 총합이 되며, 대표자는 이 현실적 정치체의 의사에 종속되는 대의제를 추구한다.

현대의 민주공화국은 대체로 전자의 입장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현실적으로 이 두 가지 입장의 차이는 대의제의 중심에 있는 의회제와 관련하여 의회의 민주공화제에서의 위상과 역할이 무엇인가의 문제로 전환되고 결국에는 대의기관의 구성 특히 규모에 대한 정책적 고려에 영향을 미친다.

대표의 자유위임을 중시하는 주류적 입장에 따르면 대의기관의 규모, 특히 의회의 규모가 굳이 커야할 필연적 이유는 없다. 어차피 능력있는 대표들이 이념적 통일체의 추정적 의사를 효과적으로 대변하는데 대의민주제의 초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표의 기속위임을 중심하는 비주류적 견해는 의회의 규모에 대해 상대적으로 예민하다. 효과적으로 현실적 유권자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반영하기 위해서는 대표의 다양성을 반영할 수 있는 규모는 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주류적 견해가 인민을 ‘위한’(for) 정치에 방점을 찍는다면 비주류적 견해는 인민에 ‘의한’(by) 정치에 방점이 있는 셈이다.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지난달 30일 열린 ‘이제는 국회개혁 연동형 비례제 도입하라’ 기자회견. 참여연대 정강자 공동대표(앞줄 왼쪽 세번째)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지난달 30일 열린 ‘이제는 국회개혁 연동형 비례제 도입하라’ 기자회견. 참여연대 정강자 공동대표(앞줄 왼쪽 세번째)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공화적 대의기관 구성에 관한 두 가지 입장

대의민주제의 두 번째 문제는 대표기관, 특히 의회를 어떻게 구성하는 것이 민주공화적인가의 문제이다. 오늘날 일반적인 대표선임방식인 선거제도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선거가 정당성을 가지는 대표기관을 구성하기에 적정한가가 주요한 기준이 된다.

대의민주제의 본질에 대한 논의에서 주류적 견해는 선거를 중심으로 대표기관을 구성하는 것에 친숙하다. 반면 비주류적 견해는 선거 보다는 추첨이나 순번제 등을 선호한다. 선거가 능력주의를 기준으로 삼아 인민을 위한 정치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훌륭한 품성을 가진 선민을 이상형으로 삼는다면 추첨이나 순번제는 현실체인 주권자의 의사를 충실히 전달하는데 초점을 두기 때문에 대표자의 품성이나 능력보다 가급적 대표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최대한 공평하게 배분되는 것이 중요하다.

고대 그리스에서 선거는 다양한 정치형태 가운데 귀족정 혹은 과두정에 적합한 제도이고 추첨이나 순번제가 민주정에 적합한 제도로 인식되었던 것도 이러한 논리적 추론이자 현실적 경험의 산물이다. 오늘날 선거가 민주적 정치형태의 필수요소로 인식되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현대 대의민주제의 모순: 보통민주화의 원리와 제한민주론적 수단의 공존

현대 민주공화제의 주류적 입장은 원래 귀족정의 요소였던 선거를 중심으로 주권자를 대표의 민주적 정당성을 제공하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위상을 가지는 것으로 이해하는 제한민주론을 기저에 깔고 있다.

그러나 현대적 민주화의 과정에서 제한민주제가 보통민주제로 전환되었지만 그 본질은 선거권의 보통화를 중심으로 하다보니 정작 선거가 구조적으로 과두정으로 전락하는 문제를 고질화하게 되었다. 즉 선거가 정치적 카르텔 내에서의 인물 교체에 불과하고 정치세력의 전면적인 교체는 매우 힘들어지는 민주적 결핍현상이 일상화 되었다. 

이론적으로 소규모의 대표기관을 유지하고자하는 태도는 이와 같이 보통민주화가 실질적으로는 과두정을 구조화하는 선거라는 방식을 중심으로 대의민주제를 구성하는 아이러니와 내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국회의원 의원정수 확대의 필요성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정치개혁의 공방에서 의원정수를 둘러싼 논변은 근본적으로 현대 민주공화제가 구조화한 선거라는 과두정적 수단을 통해 보통민주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대의기관을 효과적으로 기득권의 통제아래 묶어두려는 음모라는 의심을 떨쳐버리기 힘들다.

의회제에서 의회가 수행하는 핵심기능은 입법기능과 국정통제기능이다. 국가과제를 법률의 형식으로 결정하는 것은 법치주의의 핵심요청이므로 사회의 다양한 입법수요는 의회를 통해 충분히 수렴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의원수가 너무 적은 것은 의회를 입법의 중심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집행권인 정부에 입법의 중심을 양보하도록 강요하는 조건이 된다.

국정통제기능은 어떠한가? 인민의 대표가 법률로 국가권력 발동의 근거로 삼는 것만으로는 독재를 거부하는 민주공화제를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없고 그 집행을 헌법과 법률의 취지에 맞도록 감독하고 통제해야 한다. OECD 평균 의원 1명당 10만명 대표에 한참 뒤지는 1명당 17만명당 대표라는 단순비교만으로도 의원정수의 부족은 직관적으로 간파가능하다.

연방국가인 미국의 연방의회 의원의 숫자만으로 의원대표의 과소화를 정당화하는 것은 악의적인 자료왜곡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견줄 수 있는 국가가 사실상 50개가 있고 그 모두를 아우르는 연방정부가 추가로 하나 더 있는 셈이니 국가적 정치수요를 감안하면 모든 주의회 의원 수를 연방의회 의원수와 모두 합쳐야 기본적인 비교가 가능할 것이다.

의회의 기능을 고려해도 적정규모의 요구는 모자람이 없다. 지역민원처리를 넘어서 지역에서 발원한 국가정책적 수요를 반영한 입법권을 행사하려면 현재의 지역구를 유지하면서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의 다양한 국가수요에 대한 기능적 대표성을 더 효과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비례대표의석을 더 많이 늘릴 필요가 있다.

500조원을 넘어선 국가예산을 고려할 때 이 예산에 대한 재정통제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도 보다 많은 의원이 필요하다. 5천만 인구의 공동체에서 국가기능의 확대로 비대해진 집행권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300명 의원정수로 충분하다고 단언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국민대표성에 역행하는 현행 상대다수대표제 선거제도를 보다 국민대표성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개혁하기 위한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의원정수 300인의 족쇄를 고집할 명분이 약하다.

이 모든 논리와 실증적 논거에도 불구하고 왜 의원정수 증대는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가? 무엇보다 공론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민주공화국의 주권자가 자각을 가지고 진지하게 대의 민주제의 본질을 꼽씹으며 의원정수 문제를 고민할 시점이다.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현재 한국언론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공법학회·한국헌법학회 부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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