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칼럼] 제헌절 72주년...제헌의 의미와 법률가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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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칼럼] 제헌절 72주년...제헌의 의미와 법률가의 과제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20.07.17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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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㉗: 공화제와 시민사회(2)
제헌 72주년...입헌민주공화체제의 성공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줘
제헌의 이중적 계기... 형식적 헌법보다 실질적 헌법의 중요성 이해해야
법률가의 과제... 충실한 헌법합치적 법률해석으로 ‘살아있는’ 헌법 만들기의 역사 이어가야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7월17일 제72주년 제헌절이다. 제헌 72년을 맞으면서 대한민국은 어느덧 세계가 예의주시하는 나라가 되었다. 무엇보다 헌법에 의해 기본적 인권의 보장과 민주공화적인 정치 제도가 작동하는 입헌민주공화체제를 성공적으로 발전시켜 왔다. 누구의 치적이라고 굳이 내세울 것도 없이 그 역사를 이루어온 대한국민의 피와 땀이 어린 성취이다.

시민혁명적 계기에 의한 헌정변화의 역사

1919년 3.1독립운동을 계기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을 이국땅 상해에서 열고 민주공화제를 천명하는 헌법인 임시헌장을 선포하면서 그 마지막 조항인 제10조에 “임시정부는 국토회복 후 만 1개년 내에 국회를 소집함”이라고 다짐하였다. 광복 후 합의제 국민대표기관인 국회를 통해 명실상부한 민주공화정부를 구성할 것을 선언한 것이다.

일제 패망 후 미군정기 3년을 거쳐 1948년 5월 총선거에 따라 먼저 국회를 구성하고 국가 기본법부터 제정한 것이 바로 제헌헌법이며, 이로써 한반도에서 민주공화국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역사적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 후,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에 버금가는 4.19, 부마, 5.18, 6.10을 거쳐 2016~2017촛불혁명이라는 시민혁명적 계기를 배경으로 평화적 정부교체는 물론 의회교체를 주기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정치적 변혁을 이루어내고 있다.

국민이 주체가 되어 정치변혁을 주도하여 왔다는 것은 그 의미가 사뭇 중대하다. 민주공화체제의 핵심은 국민의 자치이다. 주권자가 직접 정치변혁을 주도하여 온 역사만큼 민주공화체제의 진면목을 확인시켜 줄 확고한 증거도 드물다. 특히 최근의 대통령 탄핵의 예처럼 국민의 정치적 역동성이 무분별하게 표출되지 아니하고 헌법체제의 틀 속에서 안정적이고 평화적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것은 세계사적으로도 그 의미를 되새길만한 일이다.

시대착오적인 국정농단을 맞아 연인원 1천7백만명의 지속적인 평화시위가 국민대표기관의 소추와 헌법재판기관의 엄정한 숙의를 거쳐 확정된 것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었다.

국정농단 자체나 ‘광장정치’가 정치변혁의 추동력이 되어온 역사는 아직도 불안정한 민주공화체제의 한계를 보여주는 측면도 있지만, 입헌적 절차를 통해 주권자가 주도하고 대표기관이 조응하여 입헌민주공화체제를 수호한 경험은 100여년 전 망명정부에서 민주공화제를 선포하고 이를 계승하여 72년 전 제헌헌법을 탄생시킨 대한국민의 의지가 면면히 지속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제72주년 제헌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박병석 국회의장이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제72주년 제헌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제헌의 이중적 계기: 형식적 헌법과 실질적 헌법

주권자 국민의 의지가 집결된 집단지성을 주도로 한 헌정의 변혁이나 수호는 국가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주권자의 의지로 끊임없이 헌법이 살아 움직이며 우리의 정치생활과 사회생활을 규율한다는 실천적 의미를 가진다.

72년 전의 제헌, 즉 헌법 만들기의 의미는 법전을 구성하는 형식적 문서의 제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문서를 끊임없이 현실적 사회변동에 조응하여 창조적으로 해석하고 발전시키는 한편 그 정수인 민주공화정신과 원리를 훼손하는 반민주공화적 헌법훼손에 대해 저항하고 헌법을 수호하는 헌법적 실천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형식적 헌법은 민주공화정신과 원리를 표현하는 핵심적 수단이다. 이 헌법을 문리적 해석에서 출발하여 역사적 해석과 체계적 해석, 그리고 최후의 경우에는 목적론적 해석까지 포함하여 ‘살아있는 헌법’(living constitution)으로서 끊임없이 현실적 규범력을 발휘하도록 만드는 것 역시 헌법 만들기의 또 다른 방식인 것이다.

한편 헌법은 형식적 헌법만으로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는 점도 새겨두어야 할 명제이다. 헌법(constitution)은 형식적 헌법(constitutional law)과 함께 국가권력의 구성과 작용 및 기본적 인권의 구체적 내용과 한계를 정하는 헌법하위의 실질적 헌법인 각종 입법이나 제도 및 문화(constitutional morality and conventions)의 종합적 유기체이다. 헌법 만들기는 형식적 헌법인 헌법전의 제정만으로 완결되지 아니하며 시대적 조건 속에서 이를 구체화하는 각종 권력의 구성법(국회법, 정부조직법, 법원조직법 등)과 이들 권력의 구성 및 작용과 관련한 하위제도(선거제도, 정당제도, 공무원제도 등)의 결합체를 끊임없이 발전시키는 것이다.

제헌절이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현행 헌법의 개정론이다. 민주공화체제의 주춧돌을 놓은 헌법의 생일에 그 헌법의 혁신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오히려 문제점은 고치되 그 업적을 충분히 승인하고 계승하는 균형적 접근이 필요하다. 제헌헌법을 시민혁명적 계기로 변혁시킨 현행 87년 헌법을 통해 한국형 민주공화체제를 진화시켜 온 성취를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헌법개정론의 허와 실: 더 시급한 실질적 헌법 만들기

87년 헌법은 6.10항쟁의 자랑스러운 결과물이지만 빠른 시기에 민주화를 제도화하기 위한 시간적 한계 때문에 시대정신을 온전히 반영하는데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제 정부형태를 채택하면서도 1노3김으로 상징되는 인물중심 정치가 작동하는 현실적 한계 때문에 대통령의 임기를 5년으로 하면서 국회의원 임기 4년,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의 임기를 6년으로 하는 등 권력구조에서 견제와 균형에 입각한 공화적 임기배분에 실패하고 있다.

더구나 대통령과 정부의 비대한 권한을 완전히 분산시키지 못하고 의회는 단원제로 구성하는 한편 지방분권에는 소홀함으로써 중앙집권적이고 정부중심적인 권력구조를 낳아 국민중심의 민주공화체제 구성에 미흡한 면이 없지 않다. 또 정당중심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정부형태를 불문하고 정부와 의회의 융화현상이 빈발하는 현대적 추세 속에서 중요한 정치견제권력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사법권의 구성과 운영을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로 유지하는 유신헌법의 유산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헌법재판제도를 도입하여 정치권력에 대한 사법적 통제의 전통을 확산시켰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 탄핵까지 성사시킬 정도로 지속적으로 대통령-정부중심 권력구조의 폐해를 완화시켜 왔다. 7차례의 정부교체를 안정적으로 달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4.15 총선으로 의회권력의 주기적 교체를 달성할 수 있는 중간다리를 놓았다. 진보든 보수든, 좌든 우든, 장기집권이 아니라 주권자 국민에 의한 주기적 교체를 통해 민주공화체제의 반독재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최근의 코로나19로 인한 전세계적 재난에 대해서는 모범이 될 만한 국가와 사회적 대응체제를 보여줌으로써 국민중심 국가와 사회의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방역체계와 의료보건체계의 수월성이 확인되는 한편 이를 가능하게 할 IT등 산업인프라와 시민정신 또한 탁월한 것으로 증명되었다.

종합하자면 가장 부족한 것은 권력구조와 같은 형식적 헌법상의 것이라기보다는 주권자 국민이 광장정치에 의존하지 않고 일상적 대의정치를 통해 좀 더 헌정질서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실질적 헌법의 보완이라고 할 수 있다.

시민혁명적 광장정치가 반복되는 것은 무엇보다 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제대로 개혁되지 않고 있는 선거법과 정당법 등 정치관계법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관계법제가 정당활동이나 선거 등 일반 국민의 정치참여를 과도하게 통제하여 정치적 무관심과 혐오를 조장하고 탈정치·반정치의 정치문화를 낳는 한편 그 공백을 통해 기성정치세력의 기득권구조는 고착화되고 정치적 신진대사가 왜곡됨으로써 대의제도가 국민대표성과 반응성을 효과적으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한국형 민주공화체제는 형식적 헌법의 문제보다 그 하위입법이나 정치제도 및 문화의 문제가 더 심각한 것이고, 우리에게 필요한 헌법 만들기는 제헌헌법과 이후의 민주화과정에서 발전되어온 민주공화정신을 계승하면서 입법과 의식개혁을 통한 넓은 의미의 헌법 만들기라고 할 수 있다.

지나치게 자만할 일도 아니지만 선진국들을 전범삼아 앞만 보고 달려온 그동안의 과정을 되돌아보면 이제는 나름의 자긍심을 가지고 새로운 입헌민주공화체제의 전범을 구축하기 위해 발상의 전환을 위한 노력을 기울일 때도 되었다.

법률가는 헌법합치적 법률해석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이러한 제헌의 의미를 배경으로 되새겨볼 법률가의 과제는 무엇인가? 입헌민주공화체제의 법률가에게는 두 가지 차원의 헌법실천의 과제가 주어져 있다.

우선 법률전문가 이전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의 과제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 개인이자 국가와 사회의 주체로서의 정치적 자아를 형성하고 능동적으로 정치에 참여하여야 한다. 선거권의 행사만으로 정치적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자족해서는 안된다. 일상생활 속에서 공동선인 헌법정신에 따라 시시비비를 가리고 시민으로서의 덕성을 발휘하는데 소홀해서는 안된다.

두 번째는 법률전문가로서의 과제이다. 법률전문가로서 각자 맡은 전문직을 수행함에 있어 입헌민주공화체제의 기본정신에 충실할 과제이다. 특히 헌법에 합치되도록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자명해 의문의 여지가 없는 이 헌법합치적 법률해석·적용의 원칙이 사법과정에서 얼마나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지 제헌의 의미를 되새기며 자문해볼 일이다.

법률가가 전문가로서 헌법합치적 법률해석·적용의 의무를 효과를 실천하는 것은 형식적 헌법을 살아있는 헌법으로 작용하게 하는 헌법 만들기의 실천이다. 제헌의 의미가 법률가에게 남달라야 할 이유다.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현재 한국언론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공법학회·한국헌법학회 부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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