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칼럼] 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⑯: 민주공화제와 정당(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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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칼럼] 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⑯: 민주공화제와 정당(1)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20.01.13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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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당중심적 민주주의' 표방...헌법화
'인민의 지배' 대신 '정당의 지배'...패러다임의 전환
정당의 부작용, 공화제 위협요소...정당내 민주주의· 법적 통제 요구돼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현대 민주공화제에서 정당의 위상과 기능은 어떠한가? 최근 통과된 공직선거법이 소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자매정당이라 명명한 이른바 ‘비례자유한국당’ 창당을 공식화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다.

사실 정당은 민주공화제의 발전에서 불가결하면서도 민주공화제의 본질에 끊임없이 긴장을 유발하는 근본문제여서 이 질문이 꼭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당의 본질이나 민주공화제와의 관계에 대해 정확한 인식이 없다보니 선거제 개혁이나 정당관련 현안들을 논의하는데 많은 혼선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정당중심적 민주공화제를 구조화한 한국 헌법

누구도 현대 민주공화제에서 시민의 자발적 정치결사인 정당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 현대국가에서 정당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는 게 정설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제도인 선거는 정당조직을 통한 지지세력의 효율적 동원을 필수요소로 한다. 민주공화제의 기본요소인 의회를 비롯한 국정의 효율적 운영 또한 정당이라는 교섭단체 혹은 중간집단의 매개활동을 필요로 한다.

대한민국 임시헌장도 결사의 자유를 가장 기본적인 인권으로 확인한 바 있으며, 결사의 중심에 정치적 결사인 정당의 자유가 있음은 자명하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 대한민국의 헌정구조차원에서 정당의 헌법상 위상은 시민적 자유인 결사의 자유의 일종으로 정당의 자유를 인식하는 단계를 훌쩍 넘어서 있다. 1962년 제5차 개정헌법에서 정당의 공천을 받은 경우에만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도록 강제하여 강력한 ‘정당국가’를 표방한 이래 그동안 일정부분 완화되기는 하였지만 현행 헌법에서도 정당을 국가정치제도의 한 축으로 헌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헌법 제1장 총강에 편재된 제8조는 정당의 자유와 복수정당제도의 보장을 선언하면서 정당조직의 민주성 요건,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의 허용, 정당해산에 대한 특별절차를 도입하고 있다. 정당을 헌정제도의 핵심요소로 인정하고 그 존속과 운영에 관한 국가관여의 근거와 한계를 헌법이 직접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정당을 일반 결사와 같이 취급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는 4월15일 21대 국회의원선거가 치르진다. 이번 총선은 문재인 정부의 중간평가 성격과 함께 2022년 대통령선거의 전초전 성격을 띨 전망이다.  사진= 연합뉴스
오는 4월15일 21대 국회의원선거가 치르진다. 이번 총선은 문재인 정부의 중간평가 성격과 함께 2022년 대통령선거의 전초전 성격을 띨 전망이다. 사진= 연합뉴스

정당헌법화의 본질적 의미①: 일원적 국가에서 다원적 국가로

단순히 시민적 결사의 단계를 넘어 헌법제도로서 정당이 기능하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헌법상 정치활동의 단위 혹은 자격을 자연인인 개인을 넘어 단체에게 확장하는 의미를 가진다. 단체에게 정치활동의 독립적 주체로서의 지위를 부여한다는 것은 단체의 자율성을 승인하는 것이다.

이로써 민주공화국은 이제 단순히 시민 차원의 정치활동에 의해서만 작동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러한 변화는 인민의 지배가 아닌 정당의 지배가 가능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는 것이라는 점에서 가히 혁명적 변화이다. 개인단위의 의사결정 패러다임에서 집단단위의 의사결정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시민의 결사이기는 하나 이미 집단 자체의 법적 근거를 국가최고법인 헌법에 의하여 승인받은 정당은 그 스스로의 존립법칙에 의해 자율성을 보장받는다. 정당의 자율성은 역설적이게도 소속 정당원의 정치적 권리를 제약하거나 주권자인 전체 시민의 정치적 역할마저도 제약할 수 있는 현실을 낳는다. 특히 국회의원과 같은 국민대표 하나하나의 의견보다 교섭단체로 불리는 정당의 집단적 의견이 국정의 중심으로 자리하게 된다. 절대왕정에서 군주가 가지던 공동체 전체의 대표성이 시민혁명을 통한 민주화과정에서 의회로 이전되었으나 그 의회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실체가 바로 정당이 된 것이다.

군주와 의회가 일원화된 국가권력을 대표하는 단일화된 주체라면 정당은 시민의 자발적 결사이다 보니 복수로 존재하는 다원적 정치질서가 구축된 것이 특징이다. 결국 현대 민주주의는 정당중심적 민주주의로 변환되고 정당간의 경쟁이 헌정질서의 민주성을 대체하게 된다(반면 중국공산당이나 북한의 조선노동당과 같이 계급정당 혹은 이념정당에게 우월적인 영도적 지위를 부여하고 국가권력을 초월하도록 허용함으로써 특정정당이 인민의 단일주체성을 대체하도록 하는 국가사회주의체제가 정당독재로 귀결되는 것은 전근대적인 일원론적 국가론의 현대적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정당헌법화의 본질적 의미②: 금지의 대상에서 헌정의 중심축으로

근대시민혁명이후 정당이 당연히 법적 승인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절대왕정기에 정당은 국가주권을 가진 군주의 의사와 다른 의사를 가진 파당으로 간주되어 금기시되었다. 절대왕정을 타도한 근대시민혁명이 낳은 개인주의에 기초한 자유주의 법체제의 초기단계에서도 정당은 법적으로 금지의 대상이었다. 앞서 보았듯 정당이라는 집단을 정치활동의 자율적 단위로 승인하는 집단(단체)주의의 수용이 초래하는 억압적 부작용이나 역설적 비민주성 때문이었다. 특히 정치적으로 평등한 시민들의 정치적 자치를 중시하는 민주공화제에서 실존하는 정치적 단체의 발호는 경계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특정계층이나 계급 혹은 집단이 추구하는 부분이익을 위해 전체공동체의 공공선을 희생할 수 있는 욕망의 정치가 번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합중국을 공화제를 기초로 한 정치체제로 만든 미합중국헌법의 기초자인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이 그의 유명한 ‘연방주의자 교서’(Federalist Papers) 열 번째 에세이에서 정당의 본질을 공공선을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종속시키는 ‘파당’으로 간주하고 그 발호를 공화제의 위협요소로 지목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부분적 부작용이나 비민주성이 실존적 필요성을 압도할 수 없다는 것이 정당의 헌법화를 통해 인류역사의 발전과정에서 입증되었다. 그 결과가 정당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는 정설이 구축되고, 우리 헌법처럼 정당을 헌법으로 승인하고 보호하는 한편, 그에 기반하여 의회선거제도도 인물중심에서 정당중심으로 변형되어 다수대표제보다 비례대표제가 대세가 되고 있는 것이 현대 민주국가의 현실이다.

결국 시민의 정치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공화제의 기본이념과 파당적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정당중심의 정치현실을 어떻게 조화할 것인지는 민주공화국의 기본과제가 되고 있다. 정당의 운영이 구성원인 정당원은 물론 유권자인 일반시민의 정치적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과두제(寡頭制,oligarchy)로 전락하기 쉬운 정당의 지배구조를 법적 혹은 정치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정당의 본질과 공화제의 가치원리에 기반하여 국가형태, 정부형태, 선거제도, 의회제도, 공무원제도 등 헌정질서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안목이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들에게 요청된다.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현재 한국언론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공법학회·한국헌법학회 부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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