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칼럼] 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①: 대한민국임시헌장 100주년을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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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칼럼] 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①: 대한민국임시헌장 100주년을 맞아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19.04.1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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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법, 선거법 과도한 정치규제, 국민들을 `주인 아닌 노예`로 전락시켜
임시헌장 취지는 `민주공화제`...국민중심의 정치 진정한 의미 찾아야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우리 헌법 전문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여 대한민국이 수립되었음을 선언하고 있다. 

‘법통(法統)’이란 ‘법적 정통성’을 의미하고, 대한민국은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적 정통성을 승계하였으므로 그 법적 기원은 올해로 100주년을 맞게 되는 셈이다. 특히 4월 11일은 그 전날 소집된 임시의정원에서 제1차 회의를 열어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임시정부의 기본이념과 정부형태의 기본적 사항을 담아 ‘임시헌장’을 의결한 날이다.

민주공화국 최초의 헌법인 임시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제에 기초함을 분명히 하고 제2조는 최고의결기구인 의정원의 결의에 따라 임시정부가 통치함을 선언하고 있다. 이로써 대한국민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를 꾸린 역사상 최초로 봉건적 군주제를 혁파하고 국민주권의 원리에 입각하여 민주공화체제를 지향함을 대내외에 분명히 하였다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런 역사적이고 헌법적인 의미를 기리기 위해 정부와 시민사회에서 임시정부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가 기획되고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민주공화국 100년을 맞는 시점에서도 그 이념과 정신이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지에 대한 걱정이 없지 않다. 이러한 상황은 무엇보다 민주공화국 이념에 대하여 우리 국민들이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광장정치`로 시민혁명 쟁취, `대의정치` 실종 탓 아닌가 

무엇보다 군주제는 혁파되었지만 국민주권에 입각하여 모든 국민들이 정치적 평등을 누리는 가운데 그 어떤 개인, 집단, 정당에게도 정치권력의 독과점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민주공화국의 이상이 얼마나 구현되고 있는가?

3.1운동에 버금가는 4.19, 부마, 5.18, 6월, 그리고 2016년과 2017년의 촛불로 이어지는 자랑스러운 시민혁명의 역사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질 만한 이정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대중적 항쟁의 역사는 역설적으로 ‘광장정치’를 통해서만 민주공화국이 유지될 수 있을 정도로 ‘대의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정치과정이 기득권을 가지는 특정의 정당이나 사회세력에 의해 효과적으로 장악되어 ‘국민의, 국민을 위한 정치’를 추구하는 민주공화제가 일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시민단체 `정치개혁공동행동`이 지난해말 국회 정론관에서 여야 5당 선거구제 합의와 관련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시민단체 `정치개혁공동행동`이 지난해말 국회 정론관에서 여야 5당 선거구제 합의와 관련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무엇이 이러한 민주화 이후의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였는가?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주범으로 지목되어야 할 것은 선거법과 정당법 등 정치관계법제라고 할 수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정치과정을 규율하는 선거법과 정당법은 별로 개혁되지 못하고 지속되고 있다. 정치관계법제가 일반 국민의 정치참여를 과도하게 통제하여 정치적 무관심과 혐오를 조장(탈정치화/반정치화)하는 한편 기성정치인과 정당들의 기득권을 강화하면서 정치신인이나 신생정당의 자유로운 진입을 방해하면서 국민으로부터 유리된 정치인들만의 담합구조가 한국 정치를 장악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선거법은 사전선거운동금지 등 각종 선거규제를 통해 평소의 일상적인 정치활동을 억압하여 국민의 공화국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로 전락시키고 있다. 정당후보자와 비정당후보자를 과도하게 차별하여 정치적 신진대사를 가로막고 있다.

정당보조금 대는 국민, 국가 의제 정하는 정치에 소외돼

최근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지지부진하고 있는 개혁의 대상인 선거제도가 그 정점에 있다. 현행 국회의원선거제도는 엄청난 사표를 양산하여 유권자의 과반수 이상이 대의과정에 효과적으로 기능하는 대표를 가지지 못하도록 하면서 지역주의에 터잡은 거대정당들에게 지지도를 상회하는 의석수를 배분하여 국민과 국민대표 간의 비례성과 대표성을 심각하게 약화시키고 있다.

정당법은 정당의 설립과 활동을 엄격하게 규제하여 정당이 국민의 일상생활 속에서 뿌리내리고 국민의 정치활동을 활성화할 수 있는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 중앙당과 시·도당만을 설립하도록 하고 지역선거구에 대응하는 지구당 조직 등 다양한 정당조직의 설립을 제한하고 있다.

최소한 필요한 조직을 5개 시·도 이상으로 강제하여 지방자치에 대응하는 지역정당의 설립을 금지하고 있으며, 시·도당의 최소인원을 1천명이상으로 제한하여 군소정당의 출현을 억압하고 있다. 정당의 당원을 국회의원 선거권자에 한정하여 청소년의 참정권을 박탈하고 민주시민교육을 위한 정당활동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선거에 참여하지 않거나 일정한 지지를 획득하지 못한 경우 해산되도록 함으로써 단일이슈의 정치화를 목적으로 하는 군소정당의 설립과 존속을 방해하는 등 선거법과 결합하여 일상속의 정치를 억압하고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통한 정치세력의 교체를 구조적으로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당활동을 통해 민주시민이 양성되고 국민들의 정치참여가 강화될 수 있음을 고려할 때 공무원은 물론 사립학교 교원마저도 정당가입을 금지하는 현행 제도는 정치적 무관심과 혐오에 기반한 반정치, 탈정치문화를 심화시키고 결국에는 국민의 정치참여에 기반한 민주공화국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체제이다.

결정적으로는 이처럼 국민과 유리된 정당들이 정당운영의 기본적 경비를 스스로 조달하지 않고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는 국고보조금을 독점하면서 국민에 의존할 필요성이 더욱 줄어드는 한편 신생정당보다 정치자금의 우위에 따른 기득권을 계속 누릴 수 있는 심각한 불평등 구조이다.

"정쟁 몰두 정치권" 비판, 국민주도 정치로 제 방향 찾아야 

많은 국민들이 민생이나 경제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정쟁에만 몰두한다고 정치권을 비판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계적 이분법이 놓치고 있는 것이 바로 올해로 100주년을 맞은 민주공화제의 본질이다.

민주공화제는 모두가 정치적으로 평등한 국민중심의 정치를 핵심가치로 삼는 것이며, 국민중심의 정치는 그 어떤 정치적 기득권도 특정 사회세력에게 몰아주는 것을 금기로 삼는다. 과도한 정치규제는 대의정치과정을 기성정당과 정치인들만의 리그로 만들고 그들과 경제사회적 기득권층의 유착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들만의 리그’가 국민을 생각하는 민생이나 경제를 고민할 리 없고, 국민을 ‘개’와 ‘소’로 전락시킨다. 결국 정치가 곧 민생이고 경제다. 선거개혁, 정당개혁 없이 국민중심 정치를 표방하는 민주공화국은 빛바랜 구호에 불과하다. 100주년을 맞는 민주공화국의 국민들 앞에 놓인 첫 번째 과제는 국민이 자유롭게 참여하고 주도하는 정치의 진정한 의미를 자각하는 것이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현재 한국언론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공법학회·한국헌법학회 부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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