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칼럼] 막장 공천파동과 정당민주주의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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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칼럼] 막장 공천파동과 정당민주주의의 위기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20.03.2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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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⑳: 공화제와 정당(3)
만성화된 막장 공천파동...원시적 정당제도 '부산물'
중앙당과 당권파 중심 엘리트 정당제도...국민 괴리된채 정치권력 독과점하는 이율배반
주권자를 노예로 만드는 정당법·선거법이 근본원인...국민중심 민주공화적 정치개혁 절실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코로나19 재난에도 불구하고 제21대 국회의원 총선 시계는 종착점을 향하고 있다. 주요 정당의 공천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황당한 일들이 연속이다.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이 선거법의 맹점을 이용해서 미래한국당이란 위성정당을 급조하더니 이 정당의 독자적 공천절차를 모두 취소하고 지도부마저 교체해 버렸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마저도 정치공학적 현실론을 내세워 선거용 신생정당 창당에 관여하면서 사표완화와 소수당 배려를 위한 비례대표제는 거대정당들의 난장판이 되었다. 군소정당들도 고립적인 정치적 올바름만 내세우다 선거에 필수적인 유권자의 충분한 지지를 얻어내기 위한 현실적 대응에 실패하고 있다.

87년 이후 한 세대를 훌쩍 넘겼는데도 정당제도조차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공천절차가 이토록 혼란스러운 것이 민주공화국의 미래를 걱정하게 만든다. 오로지 눈에 보이는 정략적 손익계산만 분주하고 민주공화국의 이상과 원칙에 대한 고민은 소홀히 된 결과다. 이 참에 다시 한 번 호흡을 가다듬고 기본부터 차근하게 성찰해서 필요한 정치개혁 과제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정당민주주의의 딜레마: 공천 민주화의 양면성  

헌법 제8조 제2항은 정당의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성원칙은 같은 조 제3항에서 정당에게 국고보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전제조건이다. 헌법상 민주성 조건을 구체화하여 공직선거법 제47조 제2항은 “당헌 또는 당규로 정한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공천해야 할 의무를 정당에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성 원칙이 헌법과 법률의 핵심공천 원칙임은 분명하지만 어떤 절차와 기준이 민주적인가에 대해서는 특별한 준거가 없다. 여성후보 배당과 비례대표의 경우 선거인단의 투표절차를 강제하는 법정요건이 있을 뿐이다. 이 선거인단마저도 어떻게 구성할지는 오롯이 정당의 자율에 맡겨져 있고, 결국 선거인단 선거는 요식행위로 전락해버렸다.

민주성이라는 매우 추상적인 원칙을 법적 기준으로 삼다보니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것이 정당민주주의의 딜레마다. 정당은 결사여서 구성원인 당원의 의사를 반영하는 것이 가장 민주적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정당은 당원만으로는 그 설립목적인 정치권력의 획득을 달성할 수 없다. 당의 이념적 정체성을 중요시하는 대중정당(mass party)에서 사회의 다원성을 반영하는 포괄정당(catch-all party)으로 정당의 이념형이 발전해온 배경이다. 그 결과 정당의 의사결정에 정당원이 아닌 일반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것 또한 필수조건이 되었다. 결국 공천에 일반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것 또한 민주적인 방법으로 일반화되고 있다. 조직체로서의 당심에 중심을 두는 것과 선거 공천이라는 특성에 따라 민심에 중심을 두는 것이 모두 민주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당심과 민심이 괴리될 때 정당민주주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원론적 수준의 정당민주주의 딜레마를 현실적 질곡으로 이끄는 것은 정당조직 내부의 분권화와 집권화의 충돌이다. 현행 선거제도처럼 지역단위를 기반으로 한 소선거구제의 경우 선거구 단위 정당조직의 주도권을 인정하는 것이 당내민주주의와 지역구 선거제도의 본질에 부합한다. 지역단위의 공천이 지역이기주의나 유력당원의 지배적 영향력 때문에 효과적인 자격검증이나 민심의 반영이 효과적이지 못할 경우 중앙당이 전국당의 정체성과 통일성을 확보하기 위해 2차적으로 관여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지점, 선거구단위의 분권적 결정원칙과 중앙당의 보충적 관여원칙이 충돌하는 경우 정당민주주의는 또 다른 차원의 딜레마-분권화와 집권화의 갈등-에 직면하게 된다.

중앙당 중심 공천관리제도의 비민주성

위성정당 사태나 한국 정치에서 끊이지 않는 공천혼란은 사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그 깊은 뿌리에는 정당민주주의의 딜레마가 자리하고 있다. 그 딜레마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지금은 일반시민들이 모두 당연시하고 있는 중앙당중심 공천관리제도다.

지역선거구의 정당조직이 아니라 중앙당에서 전적으로 공천권을 행사하는 체제다. 중앙당의 공천관리위원회와 최고위원회가 전략공천, 물갈이의 명분하에 칼날을 휘두른다. 경선과 단수추천의 결정도 여기서 이뤄지고 그마저도 지역선거구에서의 결정권은 중앙당이 미리 다 정해놓은 범위 내에서만 이루어진다. 경선이라지만 당원들의 결정이라기 민망할 정도로 여론조사 등으로 정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리고 이 공천관리위와 최고위원회의 배후는 당대표 혹은 당권파인 것이다. 친문, 친이, 친박, 친황 등 ‘친’자돌림의 학살이니 독식 논란이나 공관위와 당권파사이의 공천번복 핑퐁게임이 선거때마다 반복되는 이유다. 

사실상 민주공화국의 가장 최고권력인 의회의 구성원인 국민대표를 결정하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공천관리위는 정작 헌법과 법률이 요구하는 민주성의 원칙을 충실히 반영하여 구성되고 있는가? 왜 선거구의 당원 혹은 유권자나 당내 대의조직기구는 수동적 거수기로 전락하고 뿌리를 알 수도 없는 몇몇 위원들이 정당단위의 비례대표후보는 물론 전국 253개 지역선거구의 후보자 추천권을 행사하는 것을 무엇으로 정당화할 것인가?

한편으론 당대표나 최고위원회가 공천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대표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인지도 숙고대상이다. 고질적 지역주의 때문에 특정 지역에선 공천이 곧 당선을 의미할 수도 있을 정도로 공천의 영향력이 워낙 큰 우리의 정치문화를 고려하면 유권자인 국민이 국민대표를 선거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이, 아니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할 뿐인 공천관리위 혹은 그 배후의 당대표나 당권파가 권력을 재생산하는 구조가 아닌가?

이런 정당제도와 이에 기반한 공천제도가 좌우하는 선거제도가 국민주권주의를 표방하는 민주공화국의 정치제도라고 할 수 있을까?

공관위와 당권파 사이의 공천번복 핑퐁게임이 이번 총선을 앞두고도 반복됐다. 사진= 연합뉴스
공관위와 당권파 사이의 공천번복 핑퐁게임이 이번 총선을 앞두고도 반복됐다. 사진= 연합뉴스

엘리트정당의 지속과 원시적 정당제도

굳이 공천관리제도의 비민주성을 언급하는 이유는 좀 더 근본적이다. 우리가 이런 비민주적 공천제도를 당연한 것으로 이해할 정도로, 위성정당의 출현과 막장공천파동의 황망함에도 무기력할 수밖에 없을 지경으로 한국의 정당제도가 원시적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포괄정당의 외피를 갖추고 있지만 실상은 인물중심의 엘리트정당의 원시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정작 정치과정은 정당의 권력독과점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국가권력의 시작과 끝이 정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행사하는 권력은 막강한데 정당은 그 존재이유이자 근본인 국민과 괴리되어 있다. 국민의 당비나 후원이 정당의 존속에 필수조건이 아니라 보조재에 불과하며 오히려 국고보조금 의존성이 높다. 국민의 세금으로 정당들의 권력독과점을 도와주는 셈인데 정작 국민들의 의지는 효과적으로 반영되지 않는 불통구조이다.

공론장을 통해 정치적 경쟁을 촉진해야할 언론마저 오히려 유사정당화되고 정당의 권력독과점 체제에 공범으로 전락하면서 이 구조를 혁파할 길이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이 구조가 조장하는 정치혐오는 갈수록 깊어지고 뜬금없이 백마를 탄 구원자가 하늘에서 떨어지기를 바라는 현상마저 만연한다.

결국 전형적으로 비민주적이며 자생성이 약하지만 권력은 독과점하는 원시적 정당제도가 정치과정의 비민주적 악순환을 조장하고 있다. 현대 사회의 다양한 직능과 이해관계를 반영하기보다 지역주의에 과도하게 우선권을 둔 지역구 선거제도 또한 정당이 민주공화정당으로 발전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처럼 비민주적 선거제도에 기생하는 원시적 정당에게 총리추천권까지 부여하여 입법권과 국정감독권을 넘어 행정권까지 장악하려는 이원정부제 개헌시도가 여야의 경계를 넘어 잠복하고 있는 것이 한국 정치의 현주소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제2의 민주화를 위한 근본적 정치개혁이 필요하다

막장 공천파동과 한국 민주주의의 불안정성은 정당제도의 원시성에서 파생되는 부산물일 뿐이다. 그리고 그 원시성이 민주화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게 만드는 정치문화적 환경은 국민중심정치의 실종에 있다.

곧잘 유권자인 국민이 그런 정치를 만드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곤 한다. 그러나 이런 국민책임론은 적반하장이거나 착시에 불과하다. 국민이 선거제도와 정당제도를 바꿀 수 있는 현실적 수단이 묶여 있는 근본적 한계를 외면한 탓이다. 주권자인 유권자 국민이 선거를 비롯한 정치과정에서 기껏 할 수 있는 것이란 모순투성이인 선거제도에서 각자의 한 표를 던질 뿐이다. 막장공천에도 불구하고, 최선이 아닌 차선, 심지어는 차선마저 포기하고 차악을 선택해서 최악이나마 면해보고자 발버둥칠 수 있을 뿐이다.

무엇이 이렇게 국민을 무기력하게 만드는지를 먼저 따져 물어야 한다.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민주화 이후에도 변함없이 유지되는 정당법과 선거법의 족쇄 때문이다. 평상시의 정치활동이나 정당가입은 물론 후보자 추천, 선거운동, 선거자금배분 모든 정치과정에서 국민은 주체가 아니라 관람자나 명분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루소가 수백년 전에 고발했듯이, 유권자 국민이 선거기간에만 주인인 듯 보이나 결국은 지배엘리트의 노예로 전락하고 마는 유사공화국의 슬픈 자화상이 정당법, 선거법, 정치자금법 등 정치관계법제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감염병 재난 속에 자행되는 막장 공천파동으로 촛불혁명의 과제가 다시 한 번 확인되고 있다. 정치독과점을 해소하고 공화국 주권자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한 전면적인 정치관계법의 자유화, 민주화, 분권화로 제2의 민주화 깃발을 들어야 한다.

막장정치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한 유권자 방역대책에 나서야 한다. 이 목표를 위해 이번 선거에서 필요한 유권자 행동지침은 단연코 이 운동을 누가 잘 해낼 수 있을 것인지 혹은 이 운동의 최대 걸림돌은 누구인지 검증하는 것이다. 최악을 면하기 위해 다시금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하는 아이러니를 감수하고 마음속에 작은 촛불 하나씩을 다시 들어야 할 때다.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현재 한국언론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공법학회·한국헌법학회 부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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