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칼럼] 4·15 총선과 ‘정치 한류(韓流)’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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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칼럼] 4·15 총선과 ‘정치 한류(韓流)’의 가능성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20.04.20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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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㉒: 공화제와 선거(2)
코로나19 대란 속의 총선...민주공화국에 대한 대한국민의 의지 보여줘
4.15총선의 과정과 결과...‘문화한류’에 뒤이은 ‘정치한류’의 부상 가능성 열어
정부교체의 주기화에 이은 의회권력교체의 주기화...한국 민주주의 발전적 진화
한국형 민주공화국 모델...국민의 정치참여 제도화에 그 성패 달려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987년 민주화이후 전례가 드물게 진보 축에 있는 슈퍼여당의 탄생을 낳은 4·15총선 결과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지고 있다.

한국 정치의 주류가 보수에서 진보로 교체되었다거나 ‘중도부동층’이 뉴노멀이 되었다는 구조적 평가도 있고, 코로나19 사태를 여당압승의 주요원인으로 보는 현상적 평가도 있다. 총선을 대선전초전처럼 상정하고 오로지 대통령과 여당 발목잡기로 일관하다 ‘보수’야당이 자폭했다거나, 86세대가 50대의 정치지형을 변화시켰다는 정치공학적 분석도 없지 않다.

나름 일리 있는 평가들이지만 필자는 한국형 민주공화국 모델의 진화과정이라는 시각에서 이번 총선의 의의를 바라볼 필요성을 제기하고자 한다.

코로나19대란 속 총선의 성과

이번 총선은 전지구적 재난이 된 코로나19 대유행 와중에 치러졌다. 50여 국가에서 감염병을 이유로 선거가 연기되었거나 연기가 검토 중인 상황에서 한국은 민주공화국의 가장 중요한 정치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방역 측면에서 아직 최종적인 평가가 내려진 것은 아니지만 전쟁과 같은 대혼란기임에도 불구하고 예정된 전국적 정치행사를 안정적으로 마무리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성공적 대처를 통해 한국형 방역모델과 의료체계는 물론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산업체계와 ICT기반에 더하여 '투명하고 과학적이며 절제와 동료애를 갖춘' 대한국민의 시민적 덕성이 전세계인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총선의 성공적 개최와 전례없는 결과는 대한국민들이 안정적이면서도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통해 민주공화체제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세계만방에 다시 한 번 실증한 셈이 됐다.

한국형 민주공화국 모델의 등장과 ‘정치한류’의 가능성

무엇보다 이번 총선을 통해 새로운 조명을 받아야 할 것은 '한국형 민주공화국' 모델의 진면목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이른바 '선진국'들의 정치모델을 기준으로 무엇이 부족한지를 갑론을박하는 '후발국'의 패러다임에 지배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이 이번 코로나19사태를 맞아 속절없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새삼 한국의 사회경제 체제는 물론 정치 체제의 단점이 장점으로 전환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경험적으로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사실 서구 민주주의의 정치위기는 이미 20세기말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이나 영국의 브렉시트, 그리고 이번 코로나19 위기는 서구형 민주주의 모델의 위기를 보여주는 상징물들이다. 따라가야 할 모델이 흔들리니 이제 우리 스스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할 시점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형 모델이라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그 요소는 무엇이며, 어떤 조건에서 장점과 단점이 발현되는지 점검하고 개혁하고 실천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87년이후 엄청난 질적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 발전의 질과 양을 효과적으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경제·사회·문화영역에서 한국은 이제 독자적 발전모델을 형성할 수준에 이르고 있다.

경제는 세계 10대 무역교역국이자 30-50클럽(인구 5천만명에 1인당 GNP 3만불을 달성한 국가들)에 입성해 누구도 쉽게 무시하지 못하는 수준임이 인정되어 왔다. 최근에는 BTS등 K-pop이 ‘문화한류’를 형성하더니 구세대들에겐 꿈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베를린이나 칸느 영화제의 작품상이나 감독상, 주연상에 뒤이어 오스카 작품상과 감독상을 배출하는 문화모범 국가가 되었다.

드디어 정치영역에서도 최근의 촛불혁명은 홍콩 등 전세계 민주화운동에 ‘정치한류’(政治韓流)의 전범이 되고 있다.

특히 ‘정치한류’는 촛불혁명의 진원지였던 ‘광장정치’의 모범사례에 국한되지 않는다. 87년 헌법체제의 대표적 성공사례인 헌법재판소는 촛불혁명의 '화룡점정'인 대통령 탄핵 사건을 통해 한국 민주공화체제의 중요한 동력으로 간주되면서 외국 학자들과 법률가들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4·15 총선은 정부 교체에 한정됐던 권력교체가 의회권력에도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새 전기로 평가된다. 사진= 연합뉴스
4·15 총선은 정부 교체에 한정됐던 권력교체가 의회권력에도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새 전기로 평가된다. 사진= 연합뉴스

결정적 선거’의 징후인 의회권력 교체의 주기화 가능성

이번 4·15 총선은 정치한류를 형성할 한국형 민주공화국 모델의 권력구조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시켜 준다. 우선 정부교체에 한정되어왔던 권력교체가 의회권력의 경우에도 안정화될 수 있는 길을 열게 된 점이 주목할 만하다.

사실 87년 민주화 이후 정부수반인 대통령을 통한 여야간 정권교체는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함께 처음으로 온전한 '순환(cycle)'체계를 이룬바 있다는 점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치의 주류로 군림해온 보수정당의 집권체제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연이은 당선으로 흔들리더니 다시 이명박-박근혜 보수집권으로 회귀하였다가 촛불혁명에 뒤이은 대선에서 또다시 진보의 집권을 이루었다.

후발민주국 특히 아시아 국가 가운데 이 순환을 달성한 것은 대만 정도다. 일본은 전후 사실상 일당독재 체제나 다름이 없다. 민주적 선거제의 외피를 가졌다는 점에서 체제자체가 일당독재를 추구하는 중국과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인도네시아가 한국과 대만의 뒤를 잇기 위해 한국형 모델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번 총선을 통해 한국은 의회권력의 주기적 교체를 위한 시금석을 마련한 점에서 ‘결정적 선거’(critical election)의 징후를 보여주었다. 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정부의 교체에 불과하였던 정권교체가 의회권력의 주기적 교체까지도 가능한 체제를 마련하였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동안 민주공화국의 제1권력인 의회권력의 교체는 민주화이후에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거나 불완전했었다. 2004년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의 후폭풍으로 당시 급조된 여당인 열린민주당이 152석을 획득해 의회권력을 교체한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그 과반체제는 선거범죄를 이유로 한 당선무효 사례가 생기면서 얼마가지 않아 무너졌다.

이후 2016년 총선이 진보진영중심의 여소야대를 구성하기는 했다. 그러나 정치성향 차원에서만 보면 최종적으로 ‘4+1’로 귀결되었던 제20대 국회의 다수파가 과연 안정적으로 진보정파연합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4.15 총선을 앞두고 이 진영의 일부가 보수본류를 자처하는 미래통합당에 흡수되었던 사실만 보아도 그런 의문은 충분히 설득력을 가진다. 따라서 명실상부하게 의회권력의 명확한 세력교체가 이루어진 것은 이번 총선이 처음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반면 보수정파는 87년 민주화 이전부터 의회권력의 주류로 군림해 왔고 민주화 이후에도 일반적으로 안정적 다수파를 의회에서 구성해 왔다. 그런데 이번 4.15 총선에서 진보 축에 있는 슈퍼여당이 탄생한 것은 정부교체에 이어 의회교체가 실질적으로 발생한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선거제도가 어떻게 개혁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역구 선거제도 자체가 없어지지 않는 한 한국형 보수와 진보 정치 진영 사이에 권력의 교체가 주기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정치지형이 형성될 가능성이 보이게 된 것이다.

한국형 민주공화국 모델의 과제

의회권력 교체의 주기화에 따른 한국형 민주공화국 모델은 아직 미완성이다. 무엇보다 의회권력 차원에서의 권력교체가 정부교체에서처럼 '기성 보수지배의회-진보지배의회 출현-보수지배의회 복귀-진보지배의회 재출현'으로의 온전한 순환체계를 이루려면 일단 보수 축에 있는 슈퍼여당의 복귀를 기다려야하기 때문이다.

그 때가 언제일지 쉽게 예측하기 힘들다. 그러나 원시적 엘리트정당의 수준에서 쉽게 환골탈태하지 못하고 있는 주요 정당들이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의지를 얼마나 잘 인식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그 시기가 결정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민주화이후에도 잔존하고 있는 억압적 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이후 민주공화체제의 위기마다 집단지성을 발휘해온 대한국민의 시민적 덕성이 ‘정치한류’의 가능성을 가진 한국형 민주공화국 모델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향후 이 모델이 가능성을 넘어 현실이 될지, 아니면 자화자찬의 빛좋은 개살구로 전락할 지는 이번 결정적 선거로 출범하는 21대 국회가 공화국 국민들의 정치적 참여를 얼마나, 어떻게 제도화하느냐에 그 성패가 달려있다. 무엇보다 ‘결정적 선거’로서의 이번 4·15총선의 의미를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언론개혁과 정치개혁이 필요하다.

언론개혁의 환경을 조성해 비효율적 ‘광장정치’와 ‘정보무질서(가짜뉴스, information disorder)’로 인한 주권자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 또한 선거개혁과 정당개혁을 통해 선거제도의 자유화와 민주화를 심화시켜 정부와 의회권력에 대한 주권자의 구성권을 강화하는 한편, 의회개혁과 행정개혁을 통해 주권자의 국정 심의권과 권력 견제권을 확대해야 한다. 자족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너무나 멀다.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현재 한국언론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공법학회·한국헌법학회 부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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