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칼럼] 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⑰: 민주공화제와 정당(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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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칼럼] 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⑰: 민주공화제와 정당(2)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20.01.2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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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은 '정당의 민주성' 강조...'정치적 의사형성에 필요한 조직' 요구
현행 정당법, 정당을 선거 위한 조직으로 전제...헌법정신 위반소지
위성정당 논란, 민주적 정당 성립 요소 '자율성 혹은 독립성' 결여
거대정당, 선거제도 취지 훼손하며 위성정당 공공연히 추진...'퇴행적' 지적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앞서 이익정치를 대변하는 정당의 본질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헌정의 한 축으로 승인할 수밖에 없는 인간사회의 조건은 정당의 지배구조와 활동에 대한 법적·정치적 통제체제를 구축하는 과제를 공화제에 부과함을 확인했다(민주공화제를 다시 생각함⑯: 민주공화제와 정당(1) 참조).

이번에는 이 과제의 구체적 해결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국의 정당법은 이러한 과제에 너무나 좋은 사례를 제공해 주고 있다. 최근의 선거제도 개혁이나 이를 둘러싼 주요정당, 특히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대응은 민주공화제에서 용납될 수 있는 정당조직과 활동의 한계사례를 제공해 주고 있기도 하다.

민주공화적 정당의 조건: 당내민주주의(민주적 정당조직과 활동)

민주공화제에서 정당을 헌법화하는 제1의 조건은 당내민주주의다. 민주주의 원칙의 지배를 받지 아니하는 정당에게 헌법적 보호와 특권을 부여할 수 없다. 특정인, 특정계급, 특정단체, 특히 특정정당의 우월적 지배를 거부하고 오로지 공동체를 구성하는 시민의 자율성과 공공선을 정치질서의 근본으로 삼는 공화제가 정치질서를 이익경쟁의 장으로 변질시킬 수 있는 정당제도와 공존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 정당 자체의 민주적 조직과 활동인 것이다.

현행 헌법 제8조 제2항에서 “정당은 그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도 바로 민주공화적 정당의 조건이 당내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민주적 정당조직의 헌법적 요청인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조직”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이다. 우선 이 정치적 결사의 조직에 민주성을 요청하게 되는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헌법은 이 목적을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며, 정당은 어떤 과정에 관여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선거과정과 정책결정과정으로 대별될 것이다. 정치과정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실효적인 의사형성과정은 대표선출과정, 즉 선거과정이다. 따라서 정당은 선거에의 참여에 필요한 조직을 가지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대표선출과정만이 정치적 의사형성과정이 완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정치적 의제에 대한 최종적 결정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정책과제에 어떤 결론을 도출할 것인가가 사실은 실제적 정치과정의 본령이다. 결국 여론의 수렴과 형성에 의한 정책결정이 중요하고 정당은 이러한 기능에 필요한 조직을 갖추어야 한다.

선거중심 정당개념과 공화제적 한계

현행 정당법은 정당을 오로지 선거를 위한 조직으로 전제하고 있어 헌법정신을 위반할 소지를 안고 있다.

정당법 제44조는 등록 취소 제도를 두어 정당법이 설정한 정당설립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나 “최근 4년간 임기만료에 의한 국회의원선거 또는 임기만료에 의한 지방자치단체의 장선거나 시ㆍ도의회의원선거에 참여하지 아니한 때”(법 제44조 제1항 제2호) 그 정당의 등록을 취소하도록 하고 있다. 이 조항 외에 “임기만료에 의한 국회의원선거에 참여하여 의석을 얻지 못하고 유효투표총수의 100분의 2 이상을 득표하지 못한 때”(법 제44조 제1항 제3호)에도 정당등록이 취소되도록 했으나 이 조항은 2014년 헌재에 의하여 위헌선언 됐다.

선거참여를 강제하는 정당법조항도 헌재의 위헌결정의 취지에 따라 폐지되거나 개정될 필요가 있다. 예컨대 “4년”은 정당의 활동존속을 강제하기에 충분하지 아니한 기간이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에 10년정도로 연장하거나 삭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선거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의제에 대한 정치적 견해를 수렴하고 소통시킴으로써 민주공화국의 헌정질서에 기여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로지 선거에만 결부시켜 정당의 성립 자체를 무력화하는 등록취소제도는 소수파의 정치적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다수지배의 논리로 원천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비례자유한국당이란 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고 불허결정을 내렸다. 민주적 정당의 요소인 자율성, 독립성에 맞지 않다는 게 학계의 지적이었다. 사진= 연합뉴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비례자유한국당이란 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고 불허결정을 내렸다. 민주적 정당의 요소인 자율성, 독립성에 맞지 않다는 게 학계의 지적이었다. 사진= 연합뉴스

위성정당발상과 공화제적 한계

공화제의 원론적 관점에서 볼 때 선거법의 기본정신을 우회하기 위한 위성정당의 창당 또한 민주공화제와 조화되기 어렵다. 위성정당은 외형상 시민의 자발적 결사라는 기본적 요건을 인위적으로 충족할 수 있을지 몰라도 민주적 정당성립의 핵심요소인 자율성 혹은 독립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강이나 정책을 같이하는 정당이라면 한 정당으로 조직되어야지, 정당을 단위로 하는 선거제도(예컨대 정당명부제)를 오용하기 위해 두 개의 조직으로 나누어 선거에 참여할 수는 없다(정당 자체가 다양한 시민들로 구성된 결사라는 점에서 인물단위의 선거제도, 즉 지역구선거에서 공직후보자를 복수로 추천하는 것이 허용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따라서 최근 자유한국당이 새로 개정된 공직선거법상 정당명부에 의한 비례선거제에 대응하기 위해 자매정당이라는 명분으로 추진하고 있는 위성정당은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정당단위의 선거제도를 도입한 선거제도에 역행하는 것이다. 지난 1월 13일 중앙선관위가 비례자유한국당이란 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고 결정한 것은 이와 같은 전제위에 서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당의 설립을 법적으로 통제할 방법은 현실적으로 찾기 어렵다. 위성정당이란 것은 정치적 해석이나 주장일 뿐 형식적 외관을 제대로 갖추는 한 이러한 정당의 등록을 거부하거나 취소하는 것은 법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 만일 그러한 실질적 정당요건 심사권을 중앙선관위가 행사하게 되면 정당 자율성의 본질적 요소가 위협받게 되기 때문이다. 오로지 유권자가 그러한 반헌법적 행태에 대해 정치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중앙선관위에서 비례자유한국당이라는 명칭사용을 금지했지만 다른 명칭으로 정당등록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도 이런 법적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일각에서 위성정당에 대한 강제해산이 가능한 것처럼 암시하고 있는데 이론적으로 전혀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비현실적이다. 헌법상 정당해산제도의 청구권은 정부만 가지므로 야당탄압의 오명을 각오하고 해산청구를 할 여지가 거의 없다.

법리적으로도 외견상 정당의 형식적 요건을 갖춘 경우 위성정당의 의혹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엄격히 해석되고 적용되어야할 해산요건인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활동이 있는 것으로 단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요건을 느슨하게 해석하는 순간 정당의 존속은 국가의 관할아래 놓이게 되고 정당해산청원이 봇물을 이루게 될 것이다. 

법적으로 규제방안이 마땅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정당을 매개로 의회중심의 정부형태를 추구하는 개헌을 선거공약으로 검토하고 있는 거대정당이 선거제도의 기본취지를 훼손하는 위성정당을 공공연히 추진하는 것은 분명 퇴행적이다. 민주공화제를 표방하면서도 정당을 헌법화한 헌법정신을 되새겨봐야 할 필요가 있다.

●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 대학원에서 법학박사를 받았다. 현재 한국언론법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공법학회·한국헌법학회 부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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