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영화 ‘82년생 김지영’과 젠더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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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영화 ‘82년생 김지영’과 젠더갈등 
  • 권상희 문화평론가
  • 승인 2019.10.03 19: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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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뉴스=권상희 문화평론가]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개봉 전부터 화제다.

특이한 것은 작품성에 대한 논란이 아닌 젠더갈등이 격화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

이 영화를 극도로 싫어하는 남성들과 온 마음으로 격하게 반기는 여성들이 온라인에서 싸우고 있는 중이다.

작품을 보고 난 후 평가해도 늦지 않을 텐데 이 얼마나 소모적인 논쟁인가. 

영화의 원작이 된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자신의 SNS에 인증샷을 남긴 서지혜는 악플 세례에 시달렸고, 레드벨벳의 아이린, 소녀시대 수영은 책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가 남성 팬들의 비난이 이어졌다.

이유인 즉 ‘남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왜 페미(니스트) 흉내를 내냐는 것’이다. 반면에 국민MC로 불리는 유재석, 방탄소년단의 RM 역시 이 소설을 읽었지만 그들을 비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야말로 독특한 현상이다. 

◆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당하는 ‘사이버 불링’

소설 속 ‘김지영’은 우리 사회에서 차별과 불평등을 겪고 있는 피해자다. 그런 탓에 페미니즘을 디스 하는 입장에서 가능한 해석은 이 책을 읽은 여자 연예인들을 주인공 김지영 캐릭터와 동일시하는 모양이다.

이들을 향하는 다수의 악플에는 ‘네가 무슨 피해자라고!’ 라는 함의(含意)를 담고 있다. 반면 남자 연예인의 경우 그저 베스트셀러를 읽은 독자일 뿐이다. 

비난하는 사람들의 댓글을 보면 이들 여자 연예인들의 취향이나 성향은 알 필요조차 없어 보인다. 이미 ‘82년생 김지영’을 택했다는 것, 그 자체가 공격받아야 할 이유가 돼 버린 것이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포스터.

이는 영화의 주인공인 정유미와 공유 역시 마찬가지다. 연기력에 대한 평가가 아닌, 왜 하필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작품을 택했냐는 것, 그것이 문제일 뿐이다.

이런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사이버 불링(cyberbullying: 특정인을 사이버상에서 집단적으로 따돌리거나 집요하게 괴롭히는 행위)’을 당해야만 하는 입장이니 기막힐 노릇일 게다. 

격화되는 젠더갈등은 이성을 마비시키며 존중받아야 할 타인의 취향을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저격한다. 이 얼마나 편협하고 위험한 사고인가. 

◆ 싸움 대신 구체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젠더갈등

주로 2030세대에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이기에 젠더갈등의 심각성을 우리 사회는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묻지마 범죄'의 공포가 ‘남혐’을 불러일으킨다. 취업난과 병역의무에 불안한 남성들은 가부장제 하에서 많은 혜택을 누렸던 기존 세대들과는 전혀 다른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아직도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이 사회의 기득권층으로 바라보는 여성들을 혐오한다. 이른바 ‘여혐’이 그것이다.

젠더갈등이 위험한 것은 그것이 상대의 성을 무조건 혐오와 증오의 대상으로 본다는 데 있다. 모두가 극단적인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여자는 여자다워야 해, 애교가 많아야 해’, ‘남자가 여자를 보호해 줘야 해’ 등 기존의 관습적인 연애 스타일에 저항하는 20대 초중반 여성들의 ‘탈연애’와 이들과 같은 시대, 같은 세대임에도 그것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남성들의 시각차는 냉탕과 열탕의 온도 차만큼이나 크다.

연애를 단지 ‘사랑’이란 감정의 문제로 봤던 건 옛날, 그것도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긴가 보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기성세대는 거의 없다. 20대 청년들과 대화를 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해결책 없는 쇼맨십에 가까워 보이고, 성차별 개선과 관계된 ‘성인지 예산’은 녹지조성, 양봉체험, 주차장 운영 등 원래의 의미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 사용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가 부르짖고 있는 ‘성평등’이란 대의명제는 실천 없는 메아리에 가깝다. 

정작 대면하는 곳에서는 표면화 시키지 못하다가 온라인에서 감정이 극단으로 치닫는 탓에 젠더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쯤 되면 그들만의 싸움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가 어른으로서 공론화 시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젠더갈등,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가장 중요한 건 이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은 어느 한쪽 성(性)만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상대 성(性)을 향한 혐오의 감정이 얼마나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인가. 

 

●권상희는 영화와 트렌드, 미디어 등 문화 전반의 흐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글을 통해 특유의 통찰력을 발휘하며 세상과 소통하길 바라는 문화평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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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운 2019-10-04 08:26:38
레드벨벳 아이린은 82년생 김지영 책을 읽었다고만했고 소감을 밝힌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82년생 김지영을 비판하거나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남성들은 여성을 혐오하는게 아니라 성적 갈등을 부추기는 극단적 페미니즘을 까는겁니다 일반여성은 혐오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