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괴식(怪食)트렌드’ 말고 ‘힐링푸드’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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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괴식(怪食)트렌드’ 말고 ‘힐링푸드’가 필요해
  • 권상희 문화평론가
  • 승인 2019.09.12 22: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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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뉴스=권상희 문화평론가] 

“장 봐났으니까 집에 일찍 와라”

엄마가 보낸 메시지에 한숨부터 나온다. 명절이면 반복되는 일이니 이제 그러려니 할 만도 한데 여전히 적응 안 된 사람처럼 시선은 온통 TV로 향한다.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 공항을 가득 메운 사람들과 연휴를 온전히 가사노동에 헌신(?)해야 하는 모습이 오버랩 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런 날 만이라도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맛있는 음식 해 먹는 것이 가장 큰 의미라는 엄마의 뜻은 변함이 없거늘.

'피하고 싶고 즐길 수 없는' 과정이지만 간만에 먹는 집밥, 것도 푸짐한 명절 음식은 나 같은 자취인들에겐 분명 축복이리라. 이렇게 긍정마인드를 한껏 주입시켜 본다. 

◆ 1020세대가 ‘괴식(怪食)’을 탐하는 이유

집밥의 고차원 버전인 명절음식은 확실히 ‘슬로우 푸드’다. 그리고 온갖 고통(?)의 시간이 버무려져야 완성되는 ‘소울 푸드’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 이를 거부하는 음식 트렌드가 1020세대에게서 인기다. 바로 ‘괴식트렌드’. 괴상한 음식 또는 괴상한 방법으로 조리해 먹는 음식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자면 인도네시아에서 인기를 끌어 우리나라에까지 소환된 닭껍질 튀김이라든지, 마카롱의 빅 사이즈 버전인 뚱카롱, 대만 흑당 버블티 등이 최근 핫한 괴식 리스트다.

사진=KFC
특이한 음식은 1020세대에게 특별한 음식으로 자리매김하기도 한다. 사진=KFC

젊은 층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 얼마 전에 이것들을 먹어봤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두 번 다시 못 먹을 맛이었다. 스스로 실험대상이 되어 극단의 느끼함과 짠맛, 단맛을 체험 했다고 해야할까. 

그렇다면 이들은 ‘돈 아까운 맛’에 지나지 않는 괴식을 왜 탐하는 것일까.

거기에는 1020세대의 인증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SNS에 괴식 경험을 사진으로 남기고 ‘좋아요’를 기대한다. 해시태그에 달린 글들을 보면 #다시못먹을맛 #유행이라서먹었다 등으로 음식하면 으레 기대하는 맛있다는 평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결국 미각을 포기한 괴식놀이 유행에 서로 동참하며 ‘좋아요’를 품앗이하는 셈이다.

‘음식=맛있다’의 공식을 깬 특이함이 이들 세대에겐 특별함이 된다. 이는 오랫동안 계속 돼 왔던 ‘웰빙 트렌드’의 거부라고 볼 수 있다. 일종의 보편타당함 파괴현상을 통해 특이함에 만족하는 것이다. 

그런 탓에 괴식 리스트의 유행주기는 짧다. ‘극단의 맛’은 달리 말하면 ‘자극적인 맛’이다. 경험한 자극은 또 다른 자극으로 치환된다. 이런 심리를 이용해 기업들의 ‘괴식 마케팅’ 역시 기간 한정으로 짧은 시간 치고 빠지는 식이다. 

◆ 지친 일상을 달래줄 ‘힐링 푸드’가 필요한 시점

괴식 트렌드로 인해 가장 걱정이 되는 건 이들의 건강이다. 사실 우리의 먹거리는 육체적인 건강 뿐 아니라 심리적인 것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정크푸드를 자주 먹게 될 경우 조급증이 생기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SNS에서 주목받겠다는 생각으로 괴식을 탐하게 되는 것 역시 일종의 심리적인 불안 증세를 동반하기 십상이다. 주목받았을 때 타인의 이목을 더욱 끌기 위한 과잉자극 괴식 찾기나 주목받지 못했을 때의 상실감은 동전의 양면 같다.

한때 번지고 말 유행이라면 이쯤에서 그치는 게 어떨까. 꼰대스러운 잔소리가 아닌 관심에 찬 충고라고 받아주면 좋겠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일상에 지쳤던 혜원(김태리)은 고향집으로 돌아와 직접 키운 작물들로 음식을 해먹고 오랜 벗들과 정서적으로 유대감을 갖으며 다시금 삶의 방식을 발견해간다.

정성 가득한 ‘집밥’은 치유를 가능케 해주는 ‘소울 푸드’다. 먹거리는 심리적인 안정을 가져오는 기제 중 하나로 작용한다. 

1020세대에게 학업과 입시, 취업 등 어른이 되기 위한 거대한 성장통이 스트레스라는 이름으로 놓여있다.

어쩌면 괴식트렌드는 SNS에서 이목끌기보다 이전과 다른 방식의 스트레스 해소법 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런 일시적인 해소법보다는 이들을 위로해줄 제대로 된 ‘힐링 푸드’가 필요한 게 아닐까.

바쁘다는 핑계로 어쩔 수 없이 이따금씩 먹었던 정크 푸드에 혹사당한 몸을 위해, 만드는 과정은 힘들지라도 ‘힐링 푸드’가 되어줄 집밥, 명절음식을 만끽하러 이제 부모님 댁으로 향한다.

 

●권상희는 영화와 트렌드, 미디어 등 문화 전반의 흐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글을 통해 특유의 통찰력을 발휘하며 세상과 소통하길 바라는 문화평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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