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뉴스=권상희 문화평론가] 얼마 전 친구들과 모임이 있었다. 5명이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에 나온 친구들은 모두 4명.
오지 못한 친구에게 다들 돌아가며 한 번씩 카톡과 전화를 했지만 답이 없는 상황. 모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아파서 못갔어”라는 예상 가능한 대답이 단톡방에 올라왔다.
다들 어이상실. 맘 좋은 친구들 얼굴에 웃음기가 가셨다. 약속 당일에도 톡방에 모임과 관련된 공지 글을 올렸건만 못나온다는 얘긴 없었다.
벌써 3번째 ‘노쇼(No-show)’인 친구의 뒤늦은 변명을 이해해 주는 건 불필요한 일이었다. 결국 우린 다음 만남부터 양치기 소년에게 레드카드를 주기로 결정했다. 퇴출!
◆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얼마 전 청담동에 있는 모 레스토랑에 ‘노쇼’ 논란을 불러일으킨 세계적인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 불과 예약시간 30분 전에 12명이나 되는 예약을 무더기로 취소한 비매너로 본인 이름값을 스스로 추락시킨 주인공이 됐다.
그보다 먼저 지난 여름 ‘노쇼의 아이콘’이 되어 우리 국민들을 기만한 ‘호날두’. 최근 그가 속한 축구 팀 유벤투스의 안드레아 아그넬리 회장이 보내온 공문에는 한국의 교통체증과 호날두의 컨디션을 이유로 노쇼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유벤투스에 항의공문을 보낸 프로축구연맹에 돌아온 것은 최소한의 해명도 아닌 법적 대응을 시사하는 뻔뻔함과 거만함의 극치를 보였을 뿐, 사과는 어느 누구도 하지 않았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기막힐 노릇이다. 이래도 과연 그들이 ‘축구명가’인가.
베컴이나 호날두 두 사람 모두 ‘세계적인 스타’라는 수식어가 갖는 무게감을 자기 멋대로 해도 되는 양 무례함으로 뭉개 버렸다. 이미 등 돌린 한국 팬들에게 ‘유벤투스’라는 고유명사는 ‘무개념 팀’으로 낙인찍힌 지 오래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 maketh man)”. 영화 ‘킹스맨’의 명대사다. 매너를 상실한 자들은 다시 말해 인격을 상실한 자들이다. 보다 더 적확하게 표현하자면 ‘사람답지 않은 사람’이다.
◆ ‘매너 소비 권하는 사회’로의 이행
올해 트렌드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매너소비자’이다. ‘매너 있는 소비자’, 너무도 당연한 것을 트렌드로 규정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불편한 현실이다. 외식업이나 미용업, 의료업 등 예약 서비스가 일반적인 업종에서 자주 발생하는 약속 어기기 행태인 ‘노쇼’.
2017년 한 경제연구원 조사에 의하면 '노쇼'에 따른 주요 업종의 손해비용은 무려 4조 50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약속파기’라는 반사회적 행태가 이렇게 천문학적인 손해를 발생시킨다는 사실이 실로 놀랍다.
대부분 스마트폰을 이용해 쉽게 예약하다 보니 '노쇼' 역시 쉽게 발생한다는 해석이 가능한데 이는 편리함이 불러온 책임감 결여다. 보증금 제도가 있긴 하지만 손님이 줄어들 것을 우려해 전 업종에서 이를 실행하기란 쉽지 않은 현실이다.
‘손님은 왕이다’라는 오래전부터 계속되어온 상투적인 문구가 ‘노쇼’에 대한 무감각증을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손님은 ‘갑’이고, 노동자는 ‘을’이라는 권력관계를 내포하고 있기에 ‘약속파기’의 행태는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소비자의 ‘갑질’인 셈이다. 시대가 변했고 그에 맞는 소비사회의 권력관계 재정립이 필요하다.
손님이 왕이라고 생각하는 낡은 사고방식부터 버리자. ‘손님은 그저 손님’이다. 영원한 손님도, 영원한 노동자도 없지 않은가.
누군가 약속은 깨기 위해 존재한다고 했던가. 약속이 깨지는 동시에 신뢰감 상실을 맛보는 ‘충격비용’을 지불할 자신이 있는가.
‘소비 권하는 사회’에서 이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매너 소비 권하는 사회’로의 이행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저작권자 © 오피니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