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추억 소환한 BIFF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 상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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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추억 소환한 BIFF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 상영회’
  • 권상희 문화평론가
  • 승인 2019.10.1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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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뉴스=권상희 문화평론가]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어느덧 종반을 향하고 있다.

글로벌 스타 티모시 샬라메와 라이징 스타 정해인의 방문으로 영화제의 열기가 한껏 고조된 듯하다. 수많은 관객들이 들썩거리는 모습에서 흥 넘치는 축제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사실 부산으로 향하기 전, 태풍 '미탁'으로 인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특히 필자가 진행을 맡은 섹션이 개막일 당일부터 부산시민공원 잔디광장에서 펼쳐지는 상영회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찬란한 가을이 내려앉으며 인간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걱정거리가 기우(杞憂)에 불과함을 다시금 깨달았다. 

◆ 영화 따라 소환된 옛 추억의 풍경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 상영회’는 올해로 우리 영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BIFF가 ‘찾아가는 영화관’이라는 테마로 처음 기획한 섹션이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 등 우리 영화사에 빛나는 대표작들을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김기영 감독 '하녀'(1960). 사진제공=BIFF

시작 전부터 과연 옛 영화에 관객들이 얼마나 호응할 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잔디가 젖어있는 탓에 3일간은 부산시민공원 내 백산홀에서 상영회가 진행됐는데, 기대하지 못했던 광경에 이따금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미처 좌석을 찾지 못한 관객들은 돗자리까지 가져와 강당 바닥에 자리하고 있었다. 백산홀을 넘치도록 가득 메운 관객들의 대다수가 장년층 이상이었는데, 부모님을 모시고 온 젊은 관객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어떤 어르신께서 “나 어렸을 때 동네에서 제일 큰 강당에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영화 보던 기억이 나네” 라는 말씀을 하셨다. 언젠가 엄마한테서 들은 적이 있었던 이야기와 그대로 오버랩 되는 순간이었다.

최고급 시설의 멀티플렉스관이 넘쳐나는 시대에 난생 처음 본 광경은 2019년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그래서 왠지 더 따뜻한 정겨움이 넘쳐나는 느낌이었다. 디지털 시대에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아날로그 정서와 관객들이 연출하는 풍경이 마치 흑백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 소외 되는 세대 없는 영화제가 되기를

영화 상영 전에 출연 배우, 감독과 함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나이드신 분들에겐 옛 추억을 함께 공유하는 친근감으로, 또 젊은 세대에게는 옛 영화에 대한 낯설음을 상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상영회의 첫 작품인 1960년 작 김기영 감독의 ‘하녀’에 출연했던 7살 아역배우 안성기씨의 모습을 본 관객들이 이틀 뒤 상영된 1980년 작 ‘바람 불어 좋은 날’로 극장을 찾은 그를 직접 마주 하고는 탄성을 질렀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역배우에서 청춘스타 그리고 국민배우로, 영화라는 장르를 통해 히스토리가 완성된 대배우의 외길 인생을 마주하는 것 또한 색다른 감동이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화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임권택 감독님은 관객과 기꺼이 소통하기를 원하셨고, 이런 거장의 모습은 꽤 깊은 울림을 남겼다. 

매 순간 관객은 즐겁게 화답했고, 옛 영화들은 그들을 젊은 시절로 회귀시켜주며 추억과 조우하는 계기가 돼 주었다. 

모든 문화의 중심은 구매력이 강한 젊은 세대를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천만 관객 영화라 할지라도 이는 별반 다르지 않다. 영화제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제를 찾는 대부분이 젊은 세대이다 보니 기획된 프로그램들 다수가 그들에게 맞춰져 있다. 이는 100세 시대,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현실을 간과한 것이다. 장년층 이상의 관객들이 영화제를 찾지 않는 것은 그들이 향유할 만한 프로그램이 그만큼 부재하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 상영회’는 영화제에서 소외된 세대를 끌어안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프로그램이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세월의 흐름 속에 봉인 돼 버린 명작을 세상 밖으로 꺼내 선보인 것도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명작은 그 자체로 계속해서 관객들에게 소비되어야 할 대상이다. 

영화를 보며 즐거워하시는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건 부산국제영화제가 세대를 아우르는 축제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라 하겠다. 내년에는 이런 프로그램들이 보다 더 많이 기획되어서 모든 세대가 즐길 수 있는 ‘영화의 바다’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권상희는 영화와 트렌드, 미디어 등 문화 전반의 흐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글을 통해 특유의 통찰력을 발휘하며 세상과 소통하길 바라는 문화평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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