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흑역사30년]①첫 불공정거래 철퇴 ‘광덕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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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흑역사30년]①첫 불공정거래 철퇴 ‘광덕물산’
  • 문주용 기자, 김솔이 기자
  • 승인 2019.03.10 1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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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이사 내부자거래 적발...'저승사자' 증감원 조사국 본격화 계기
▲ 주식거래 시장의 산실인 한국증권거래소의 1982년 건물 전경 /사진=국가기록원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 그해 4월 증권감독원(금융감독원의 전신)은 최초로 상장기업의 내부자거래를 적발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다. 금융감독원이 얼마 전 펴낸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조사'는 자본시장 30년의 역사를 담았다. 금융감독원의 도움과 다방면의 취재를 통해 30년간 적발된 불공정거래 주요사건을 정리한다. 이 연재 시리즈의 목적은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과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일조한다는 데 있다. [편집자 주] 
▲ 1988년 5월 11일 <경향신문>에 게재된 광덕물산 관련 기사 /사진=금융감독원

"나폴레옹이 죽었다! 연합군이 드디어 파리를 점령했다!"

1812년 4월 영국의 한 병사 복장 차림의 사기꾼은 이렇게 외쳐 대며 윈체스터시의 거리를 뛰어다녔다. 이 소문은 순식간에 온 도시로, 영국 전체로 퍼져 나갔다. 전쟁에 신음하던 영국인들은 `굿 뉴스`에 열광했고 주가는 급등했다.

진상 파악에 나선 영국 정부는 드 베렝거(De Berenger)와 그 일당이 벌인 짓임을 확인했고 범죄로 결론을 내렸다. 이들은 거짓 소문을 퍼뜨린 뒤 주가가 오르자 주식을 모두 내다팔아 막대한 이득을 취했고 루머에 농락당한 선의의 투자자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이 사건이 역사상 최초의 주가조작행위로 기록되어 있는 `베렝거 사건`의 전모다.

자본시장에서 주가조작행위를 포함하는 불공정행위는 ▲거래 당사자간 정보의 비대칭성 ▲거래의 비대면성 ▲거래의 대형화 등의 배경 때문에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태생적인 여건을 갖고 있다. 물론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의 탐욕이지만.

이런 불공정행위를 시장 차원에서 보자면 효율적 자원분배를 왜곡하고, 시장의 건전성과 효율성을 저해할 뿐 아니라 정직한 투자자에게 부당한 손실을 끼치는 심각한 범죄행위다. 

불공정거래 유형은 ▲시세조종 ▲미공개정보이용 ▲부정거래 ▲시장질서 교란행위 ▲소유주식 및 대량보유 보고의무위반 ▲공시의무위반 ▲단기매매차익취득 등 크게 7가지로 나뉜다.

◆韓증시 사상 첫 불공정거래 적발 `광덕물산` 사건 

한국 최초의 불공정거래 조사 사건인 ‘광덕물산 내부자거래’는 암암리에 행해지던 상장법인의 불공정거래가 처음으로 만천하에 알려진 사건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불공정거래 조사기반과 단속활동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사건으로 볼 수 있다.

크게 봤을 때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조사의 시작은 국내 증시의 대세 상승기와 맞물려 있다. 1980년대 한국 경제는 3저(저금리·저환율·저유가) 현상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국민들은 국민주 보급, 우리사주조합 결성, 공모주 열기 등에 휩싸이면서 본격적으로 주식투자에 뛰어들었다. 1980년 1월 100포인트로 출발한 코스피지수는 1989년 12월 26일 909.71까지 올랐다.

특히 증시 활황기가 시작된 1980년대 후반부터는 특정 업종·주가가 특별한 이유 없이 급등하는 현상이 자주 발생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상장법인의 내부자거래 등 불공정거래 행태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이전까지의 구 증권거래법은 불공정거래 형태를 제한하고 있었을 뿐, 법적 처벌 조항이 없었고 이를 조사할 조직도 변변찮았다.  

증권감독원이 1988년 4월 ‘광덕물산 사건’을 적발, 불공정거래 행위를 자행한다는 소문을 사실로 밝혀 내고 처벌하면서 자본시장 조사업무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다.

당시 증감원은 1987년 3월 특별검사 전담부서인 검사3국을 신설, 불공정거래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관련 행위를 집중 단속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같은 해 7월 실시된 한일증권 영업부 특별검사에서 광덕물산의 내부자거래에 대한 정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대표이사, 가명으로 대량 주식거래하다 `내부자거래 덜미`

범죄의 흔적은 우연찮게 발견됐다. 광덕물산은 1962년 4월 설립돼 1984년 상장된 신사복, 모피 등 섬유류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생산품 전량을 해외로 수출하고 있었다. 1987년 7월 한일증권 영업부에 대한 특별검사를 수행하던 증감원 검사원은 이 영업부에 박OO 이라는 가명계좌를 개설한 누군가가 광덕물산 총 발행주식의 8%가 넘는 주식 50만주를 입고하고 매도한 사실을 포착했다.     

증감원이 주식의 출처를 추적한 결과 광덕물산 이사로 추정되는 한 인사가 회사의 무상증자 계획 발표(1986년 10월 11일)전 3개월 간 여러 증권사 점포에 차명계좌를 개설하고 회사 주식을 대량 매수 후 매도 또는 출고 하는 방식으로 거래해왔다. 또 무상증자발표 후인 10월 중순에는 배정받은 신주와 보유중인 주식을 출고해 다른 증권사로 옮겨 매도하기도 했다. 이 즈음 증시에서는 광덕물산내에 내부자거래가 횡행하고 있다는 루머가 심심찮게 돌고 있었다.

증감원은 내부자거래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그 다음해 4월 검사 3국의 검사원 4명을 전격 투입, 전면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조사에 착수한 지 불과 18일만에 사건의 전모를 밝혀냈다. 

조사 결과 광덕물산 대표이사였던 김성기씨가 연루된 내부자거래, 시세조종, 대주주 주식소유상황 보고 불이행, 주식매매자금 마련을 위한 회사자금 유용 등의 실체가 드러났다. 특히 김씨는 1986년부터 1987년까지 2년간 광덕물산의 유·무상 증자 정보를 이용해 대량의 주식을 사고 팔며 2억여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서울 서초구 삼풍아파트 34평형의 시세가 2억원대 후반~3억원대 초반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씨가 얻은 부당이득은 상당한 금액이었다.

◆내부자거래행위, 80년대 후반까진 형사처벌 규정없어

증권관리위원회는 1988년 5월 김씨에 내부자거래에서 발생한 부당이득을 회사에 반환하도록 하는 한편 시세조종, 대주주 주식소유상황 보고 부적정 및 회사자금의 주식매매이용 혐의로 김씨를 검찰에 고발하기에 이른다.

김씨는 특정경제가중처벌법과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최종 선고 받았다. 당시 내부자거래에 대해서는 형사처벌 규정이 없어 김씨는 업무상 횡령 및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 혐의로만 처벌받았다.  

▲1980년대 후반부터 증권감독원이 불공정거래 행위 조사를 본격화하면서 적발 건수가 크게 늘어났다. 자료=금융감독원

우리나라 증시 개장이래 처음으로 적발된 광덕물산 사건은 발표 당시 경제지 1면을 장식할 정도로 자본시장에서 엄청난 파장과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금융감독원은 "특히 첫 불공정거래 적발사건임에도 피의자가 검찰에서 모든 혐의를 인정할 정도로 조사의 완성도가 높았던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증감원 검사4국 탄생...불공정거래 '저승사자'로 본격화 

증감원의 불공정거래 조사 이전에는 광덕물산 사건처럼 대표이사 등 회사 관계자가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하는 내부자거래 사건이 허다했다.

이에 불공정거래에 대한 조사기반·단속활동 강화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점차 조사 체계의 여건도 갖춰지기 시작했다. 광덕물산 사건 때까지만해도 증감원에는 불공정거래 조사를 전담하는 부서가 존재하지 않았다. 1988년 5월 「증권관리위원회의 조사에 관한 규칙」이 제정되면서 검사4국이 설치됐다. 검사4국은 1996년 조사국으로 확대 개편된다. 이를 계기로 증권감독원의 불공정거래 행위 조사업무가 본궤도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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