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흑역사30년]⑥ '주가조작' 첫 중형 선고…부광약품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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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흑역사30년]⑥ '주가조작' 첫 중형 선고…부광약품 사건
  • 김솔이 기자
  • 승인 2019.04.0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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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중반부터 증권사가 다른 증권사가 기관투자자의 펀드매니저들과 연계하는 등 이른바 ‘작전’을 펼치는 행태가 나타났다. ‘동양섬유산업·부광약품 사건’ 가담자들의 모습. 사진=MBC 보도화면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 그해 4월 증권감독원(금융감독원의 전신)은 최초로 상장기업의 내부자거래를 적발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다. 금융감독원이 얼마 전 펴낸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조사'는 자본시장 30년의 역사를 담았다. 금융감독원의 도움과 다방면의 취재를 통해 30년간 적발된 불공정거래 주요사건을 정리한다. 이 연재 시리즈의 목적은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과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일조한다는 데 있다. [편집자 주]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조사 30년사'에선 ‘광덕물산’ 사건이 적발된 1988년부터 1996년까지를 ‘불공정거래 조사업무의 도입·정착기’로 봤다. 실제 1990년대 중반 증권관리위원회·증권감독원은 불공정거래 조사를 강화하기 위한 여러 장치를 마련했다.

1994년 9월 증권감독원이 발표한 ‘불공정거래에 대한 조사강화방안’은 증권사 정기 검사 시 불공정거래가 의심되는 기관투자자의 펀드매니저를 대상으로 자기계좌 개설여부를 점검하는 것이 골자다. 즉 자기매매를 병행하거나 사전 담합으로 시세를 조종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예방하겠다는 뜻이었다.

이 방안에는 또 ▲근거 없는 소문 단속 ▲기관투자자의 특정종목 매매주문·체결 자료를 증감원 전산시스템에 활용 ▲상장사 내부정보관리제도 도입 ▲불공겅거래 조사결과 언론 홍보 등의 내용이 담겼다. 

증권감독원은 1994년 12월 검사4국 내에 조사총괄실을 설치한 데 이어 1996년 5월 조사총괄실을 조사총괄국으로 승격했다. ‘검사4국’, ‘검사5국’의 명칭도 이때 각각 ‘조사1국’, ‘조사2국’으로 바뀌었다. 불공정거래 조사업무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조사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 증권사 직원이 개인의 시세조종 지원

시세조종 세력들이 전문성을 띈 시점도 1990년대 중반이었다. 증권사가 다른 증권사가 기관투자자의 펀드매니저들과 연계해 이른바 ‘작전’을 펼친 것이다. 1995년 적발된 ‘동양섬유산업·부광약품 사건’ 초기 작전의 형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1994년 서울 서초의 한 연합주택 조합장이었던 박모씨는 개인투자금과 주택조합 공금 20억원을 횡령해 작전을 계획한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현대증권 영업부 김모씨와 동방페레그린증권 김모씨와 역할을 분담해 동양섬유산업에 대한 시세를 조종하기로 했다.

박씨는 먼저 개인투자금으로 동방페레그린증권 등 8개 증권사에 개설된 본인 명의계좌 두 개와 36개 차명계좌를 만들었다. 이후 그해 7월 7일부터 9월 13일까지 직전 대비 100원~200원을 올려 고가매수 주문을 내면서 시세조종 주문을 반복적으로 제출했다. 

현대증권 직원 김씨는 부천지점 고객 명의계좌 등 17개 계좌를 통해 7월 11일부터 9월 13일사이 10만6120주를 매수, 8만2970주를 매도하면서 박씨의 시세조종을 지원했다. 동방페레그린증권 직원 김씨 역시 자신이 소속된 시장부 업무에서 얻은 동양섬유산업 시황정보를 박씨와 현대증권 직원 김씨에게 지속적으로 제공했다. 이들은 동양섬유산업 주가를 1만2000원에서 2만5800원까지 올렸고 그 과정에서 막대한 부당이득을 취했다.

◆ 금품 받고 시세조종 동참한 기관투자자

세 사람의 작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동양섬유산업으로 큰 시세차익을 얻자 1994년 하반기부터는 부광약품에 대한 시세조종을 모의하기 시작했다. 작전의 방식은 동양섬유산업 때와 비슷했다. 박씨는 10월 14일부터 11월 25일까지 부광약품 주식 16만6300주를 주당 1만7600원~2만3000원의 가격으로 6개 증권사의 8개 지점, 31개 계좌를 통해 매수했다. 또 한편으로는 이 주식을 매도하면서 거래가 성황을 이루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 가운데 동방페레그린증권 직원 김씨는 박씨에게 수시로 부광약품 주식의 시황정보를 제공했다. 또 럭키증권 포항지점의 3개 계좌에서 1994년 10월 12일부터 1995년 2월 17일까지 직접 부광약품 주식을 3260주 매수하고 2380주를 매도하는 등 시세조종에 나섰다.

현대증권 직원 김씨는 박씨와 판을 키우는 데 동참했다. 그는 ▲고려CM생명보험 ▲중소기업은행 ▲한국장기신용은행 ▲대한지방행정공제회 등 4개 기관투자자의 자산운용 담당 펀드매니저에게 금품을 제공하면서 부광약품 주식을 고가에 매도하도록 했다. 이 펀드매니저들은 1994년 11월 8일부터 1995년 1월 10일까지 부광약품 주식 6만9750주를 매수했고 일반투자자들의 매수세에 불을 붙였다. 부광약품 주가는 급격히 상승했다.

▲ 김진태 당시 서울지검 특수부 검사(가운데)가 ‘동양섬유산업·부광약품 사건’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MBC 보도화면

◆ 시세조종으로 벌어들인 5억7000만원 모두 추징

당시 증권거래소는 동양섬유산업·부광약품 주식 매매와 관련해 특정 위탁자의 시세조종 혐의를 포착하고 증감원에 통보했다. 증감원 검사5국이 1995년 1월부터 2월까지 두 종목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결과 박씨 등 세 명의 경우 시세조종뿐 아니라 주식의 대량보유상황을 보고하지 않거나 주식의 대량소유 제한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됐다. 또 한때 동양섬유산업의 지분 10% 넘게 취득해 주요주주로서 단기시세차익을 취득하기도 했다.

현대증권 직원 김씨 등 증권사 직원 5명은 시세조종에 사용된 계좌와 관련해 실명확인 없이 수표를 교환한 혐의를 받았다. 이외에도 ▲차명계좌 개설·입출금 실행 ▲입출금 거래용 타인 명의 계좌 제공 등 1993년 8월부터 시행된 금융실명거래 의무를 위반한 내용도 드러났다.

증관위는 1995년 4월 현대증권 직원 김씨와 동방페레그린 직원 김씨를 면직 조치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박씨와 펀드매니저 4명 역시 검찰 고발을 당했다. 또 펀드매니저들이 소속된 기관투자자은 ‘경고’ 조치를, 시세조종에 연루된 증권사 직원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한 증권사 지점 소속 임직원 28명의 경우 문책 등의 조치를 받았다. 박씨에게 신용공여 한도를 초과해 자금을 융자해준 4개 증권사의 5개 지점에 대해서는 다수 계좌의 폐쇄 요구 등 시정 조치가 내려졌다. 

이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시세조종 가담자 6명을 모두 구속 수사, 증권거래법 및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법원은 1995년 7월 1심에서 6명 전원에게 최고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하고 총 5억7000만원의 추징금을 부과했다.

▲ ‘동양섬유산업·부광약품 사건’은 불공정거래 가담자뿐 아니라 금융투자업계 관계자, 국민들에게 불공정거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사진=MBC 보도화면

◆ 불공정거래 경각심 일깨운 사건

1990년대 초반까지는 증감원이 불공정거래 행위를 적발해 검찰에 고발하더라도 혐의자 대부분 수백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징역형이 내려질 경우 관행처럼 집행유예가 따라붙었다. ‘광덕물산 사건’의 주범 김씨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1993년 ‘바로크가구 사건’과 이듬해 ‘삼부토건 사건’ 등의 주범들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법조계에서 불공정거래를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는 풍토가 널리 퍼져있지 않았던 셈이다.

이 가운데 ‘동양섬유산업·부광약품 사건’은 불공정거래 세력들은 물론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에게 경종을 울린 사건이라고 평가된다. 당시만 해도 주가조작 가담자에게 실형을 선고하면서 시세조종으로 벌어들인 돈을 모두 추징한 건 이례적이었다. 이를 통해 국민들까지 불공정거래의 위법성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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