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흑역사30년]⑮ ‘엔터주’ 인기 무너뜨린 팬텀·뉴보텍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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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흑역사30년]⑮ ‘엔터주’ 인기 무너뜨린 팬텀·뉴보텍 사건
  • 김솔이 기자
  • 승인 2019.06.09 1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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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 그해 4월 증권감독원(금융감독원의 전신)은 최초로 상장기업의 내부자거래를 적발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다. 금융감독원이 얼마 전 펴낸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조사'는 자본시장 30년의 역사를 담았다. 금융감독원의 도움과 다방면의 취재를 통해 30년간 적발된 불공정거래 주요사건을 정리한다. 이 연재 시리즈의 목적은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과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일조한다는 데 있다. [편집자 주]

[오피니언뉴스=김솔이 기자] 코스닥시장에서 엔터주(株)는 2000년대 들어 가장 주목받는 테마 중에 하나다. 특히 엔터 테마주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건 2000년대 중반 일본·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 한류 열풍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을 때다. 당시 장외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이 잇달아 우회 상장을 하면서 엔터테인먼트 테마가 형성될 수 있었다.

그러나 엔터주 역시 불공정거래에서 자유롭지는 않았다. 엔터테인먼트업종 ‘황제주’를 파헤쳐보니 최대주주가 시세조종 등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또 엔터 테마주에 영향력이 큰 연예인을 불공정거래에 이용한 사례도 있었다.

먼저 팬텀엔터테인먼트그룹 사건은 엔터테인먼트 기업 불공정거래의 상징과도 같은 사건이다. 2005년 4월 이가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였던 이모씨는 코스닥상장사였던 팬텀을 인수, 업종을 엔터테인먼트사로 변경했다. 당시 팬텀은 동성화학그룹 계열사로서 골프공·골프의류 제조업을 전개하면서 2003년 코스닥시장에 입성했다.

이씨는 우성엔터테인먼트, 플레이어엔터테인먼트 등을 잇달아 합병하면서 팬텀을 황제주로 키워나갔다. 2006년에는 사명을 변경해 팬텀엔터테인먼트그룹을 출범했고 그 이듬해에는 톱 MC군단이 소속된 DY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해 몸집을 키웠다. 이 기간 팬텀의 주가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2005년 3월부터 꿈틀대기시작한 주가는 약 7개월여만에 50배 넘게 뛰어오르는 깜짝 놀랄 기록을 세운다. 감독기관의 눈초리가 매서워지기 시작했다. 주가 상승의 재료였던 유명 연예인 영입 발표나 공시가 번번히 해당 연예인의 부인으로 투자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몸집불리기용 기업인수 후 대주주 보유 지분의 향방이 묘연해진 것도 이 즈음이다.  

◆ 공격적인 엔터사 합병…시세조종으로 100억원대 부당이득

한국거래소는 같은해 말  팬텀의 주가가 단기간에 급등하는 과정에서 시세를 조종하고 미공개정보를 활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계좌 수십개를 포착했다.

이를 통보받은 금융감독원은 이씨가 팬텀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부분을 발견했다. 당시 기존 최대주주는 지분 70% 전량을 매각했다고 공시했는데 이씨가 새 최대주주로 신고하면서 공시한 지분은 35%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 35%의 지분은 이씨가 차명으로 보유할 가능성, 즉 ‘파킹(Parking)’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금감원이 이 35%의 지분의 행방을 추적한 결과 이씨가 자신의 어머니를 비롯한 14명의 지인 명의로 파킹한 사실이 드러났다. 심지어 그는 일부 주식을 주가 부양을 위한 시세조종에 이용하고 있었다.

특히 이씨는 팬텀 인수대금 50억 원 중 지인들로부터 차입한 일부 금액을 시세조종으로 얻은 부당이득으로 상환할 계획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를 위해 엔터테인먼트 업계 종사장인 김모씨를 끌어들이면서 2005년 3월 9일부터 2005년 5월 19일까지 시세조종 주문을 수백회 제출했고 주가를 1290원에서 4250원까지 끌어올렸다.

마침 불어 닥친 엔터 테마주 열풍에 힘입어 주가가 1만원 가까이 오르자 이씨는 차명으로 보유한 주식을 매도해 100억원이 넘는 부당이득을 취득했다. 이후 자금세탁 과정을 거쳐 차입 자금을 상환하는 데 사용했다. 남은 자금으로는 서울 강남 논현동 소재 상가 건물을 매입하는 데 썼다.

사진=YTN 보도화면 캡처

증권선물위원회는 2005년 11월 이씨와 김씨를 시세조종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씨는 명의만 대표이사인 채 부장으로 활동해왔고 그의 친형이 실질적인 사주이자 불공정거래를 벌인 인물이었다. 이씨의 친형은 증권거래법 위반으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40억원을 선고받았다.

◆ 한류 드라마 인기 이용한 ‘뉴보텍 사건’

팬텀엔터테인먼트그룹 사건에 이어 적발된 ‘뉴보텍 사건’은 엔터주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연예인을 이용한 사건이었다. 당시 뉴보텍은 상하수도 등 플라스틱 배관재의 제조·판매업을 영위하던 회사였으나 2005년 12월 27일, 공시를 통해 ‘NVT엔터테인먼트(가칭)’라는 자회사 설립 계획을 밝히면서 엔터테인먼트업 진출을 알렸다.

이어 이듬해 2월 7일에는 당시 MBC 드라마 ‘대장금’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배우 이모씨를 영입해 공동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뉴보텍의 주가는 2005년 12월 초 5000원대였으나 두 달 만에 2만원까지 치솟았다.

이는 ‘국민 드라마’로 통했던 대장금 덕분이었다. 2003년 9월부터 2004년 3월까지 방영된 이 드라마는 평균 시청률이 42%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특히 한국뿐 아니라 일본 중동 등 아시아 지역으로 드라마가 수출되면서 한류 열풍을 이끌기도 했다. 주인공 이씨 역시 대장금을 통해 한류 톱스타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뉴보텍이 발표한 사업 내용에 따르면 이씨가 가족들과 ‘주식회사 이OO(가칭)’를 설립, 뉴보텍이 이 회사에 66%의 지분을 투자할 예정이었다. 뉴보텍 대표이사였던 한모씨가 공동 대표이사로 취임하는 내용도 담겨있었다. 회사가 공식 보도자료를 배포한 데다 공시까지 하면서 그 누구도 사업 내용의 진위 여부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씨는 2006년 2월 7일 뉴보텍의 공시가 나오자마자 즉각 반발했다. 게다가 뉴보텍이 허위사실을 공시해 개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 회사를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뉴보텍은 이튿날 기자회견을 열어 전일 공시 직전 이씨와의 계약이 최종 불발됐다는 해명을 내왔다. 이 사실을 전해 듣지 못한 공시 담당자가 예정대로 공시를 하면서 오류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어 이씨를 비롯해 주주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으나 회사의 해명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뉴보텍 주가는 4거래일 연속 하한가를 기록했다. 이씨는 2006년 2월 10일 뉴보텍을 검찰에 고발했다.

◆ 한류 스타 공동사업 허위 공시…49억원 부당이득

금감원·거래소 조사 결과 이 사건은 한씨의 사기극이었다. 2003년 3월 뉴보텍을 인수한 한씨는 회사 실적이 예상에 미치지 못하자 엔터 테마주를 이용해 자신이 보유한 회사 주식을 고가에 매도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NVT엔터테인먼트 직원과 사무실이 없는 유령회사였고 10억원의 출자금 대부분을 한씨가 대출받아 가장 납입 정황까지 드러났다. 또 이씨 사업 관련 허위 공시 담당자에 따르면 한씨는 계약이 성사되지 않은 사실을 인지하고서도 주가를 띄우기 위해 이를 지시한 것으로 추측됐따.

실제 뉴보텍 주식에 대한 매매분석·자금추적 결과 한씨는 주가가 오르는 사이 6개 차명계좌를 이용해 주식을 매매해 총 42억원의 부당이득을 얻었다. 더불어 대부업자들에게 신주인수권을 고가에 매도해 약 7억원의 추가 이득을 취하기도 했다.

증선위는 한씨를 사기적 부정거래금지 위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는 2006년 7월 검찰조사를 받던 중 도주하다 2010년 10월 체포되어 구속 기소됐다. 법원은 한씨의 증권거래법 위반 및 횡령·배임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2000년대 중반 엔터 테마주로 구분된 종목으로는 팬텀뿐 아니라 서울음반, 스펙트럼DVD, 예당 등이 있었다. 이들 종목은 한때 시가총액 상위그룹을 형성할 만큼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팬텀, 뉴보텍 등 엔터주에서 불공정거래 사건이 터진 데 이어 올리브나인 등 부실 엔터 기업들은 줄줄이 상장폐지 수순을 밟아야 했다. 결국 엔터테인먼트업종의 불확실성이 부각됐고 관련 테마는 점차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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