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 그해 4월 증권감독원(금융감독원의 전신)은 최초로 상장기업의 내부자거래를 적발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다. 금융감독원이 얼마 전 펴낸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조사'는 자본시장 30년의 역사를 담았다. 금융감독원의 도움과 다방면의 취재를 통해 30년간 적발된 불공정거래 주요사건을 정리한다. 이 연재 시리즈의 목적은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과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일조한다는 데 있다. [편집자 주]
[오피니언뉴스=김솔이 기자] 지난 10년간 불공정거래사(史)에서 빠질 수 없는 사례가 ‘대선 테마주’다. 5년 마다 돌아오는 대통령 선거를 전후로 대선 테마주가 기승을 부린다.
대부분의 테마주는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불확실한 정보를 토대로 형성된다. 대선 테마주 역시 특정 정치인과의 인맥 또는 정책에 대한 막연한 기대로 형성되는 ‘정치 테마주’의 한 종류다. 소위 ‘인맥 테마주’는 대선 종료를 기점으로 급락한다. ‘정책 테마주’의 경우 대선 이후에도 정책 기대감에 하락폭이 크진 않지만 점차 정책 시행 가능성이 낮아지며 소멸하곤 한다.
2011·2012년은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부터 18대 대통령 선거까지 몰려 있던 시기로 정치테마주 열풍이 절정에 달했다. 2007년 대선 당시 관련 테마주의 급등을 경험했던 투자자들이 발빠르게 움직인 결과다.
◆ 대선 후보와 기업 관계자 간 ‘가짜 친분’ 만들어
문제는 이러한 대선 테마주의 특징을 이용, 부정 거래를 비롯해 시세 조종 등 다양한 불공정거래가 벌어진다는 점이다.
먼저 인맥 테마주를 이용한 불공정거래 사례다. 2011년 6월 일반투자자 정모씨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대현 주식을 1만8000주 가량 매수한 상황이었다.
그는 포털사이트 다음 내 커뮤니티인 '문재인 변호사를 사랑하는 모임' 카페에서 한 회원이 등산복 차림으로 문재인 대통령(당시 대선 후보)과 찍은 사진을 찾아낸 뒤 회원을 알아볼 수 없도록 적절하게 편집했다. 이후 온라인 증권 커뮤니티에 ‘문재인 이사장과 대현 신모 대표가 등산친구’라는 제목으로 글을 세 번이나 게재했다.
이 사진이 퍼지면서부터 대현의 주가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정씨는 이 틈을 타 대현 주식을 매도했고 200만 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
또 다른 일반투자자 이모씨는 2011년 11월 솔고바이오메디칼 주식 8만3000주를 사들인 후 솔고바이오메디칼 사외이사와 안철수 당시 대선 후보가 함께 찍은 사진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재했다. 그는 '솔고바이오메디칼 사외이사가 안철수 교수의 최측근이며 각종 강의 및 행사에도 함께 하는 친분이 두터운 관계'라고 쓰기도 했다. 솔고바이오메디컬 주가는 열흘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50% 이상 상승했다.
그러나 솔고바이오메디컬 사외이사는 안 후보와 개인적인 친분이 전혀 없었다. 이씨는 다수의 투자자가 풍문을 믿는 것처럼 보이도록 네 명의 개인정보를 불법 도용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이들의 정보를 이용, 증권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 9개의 필명을 만들어 매매를 유인하는 글을 179회나 작성한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뿐 아니라 증권 방송에서도 대선 테마주를 이용한 불공정거래가 벌어지기도 했다.
대선 테마주에 ‘상한가 굳히기’ 수법으로 시세를 조종해 부당이득을 얻은 사례도 있다. 상한가 굳히기 수법은 상한가에 근접하거나 상한가 매매공방이 일어나고 있는 시점에 막대한 자금력으로 일반투자자들의 매수주문 수량을 압도하는 상한가 매수주문을 제출해 상한가를 고착시키는 등 투자자들을 유인하는 방식을 뜻한다.
전업투자자 정모씨는 1회 매수금액이 최대 110억원에 달하는 일명 ‘슈퍼개미였다. 그는 2011년 8월부터 2012년 1월까지 안철수연구소 등 30개 대선 테마주를 대상으로 상한가 굳히기 수법을 이용해 54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
그는 일단 상한가가 형성되면 추가로 상당한 수량의 상한가 매수주문을 제출하여 상한가 잔량을 두텁게 쌓았다. 일반투자자들로서는 매수세가 몰린 것으로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추가 상승 기대감 속에 이튿날 시초가가 높게 형성되면 정씨는 자신이 미리 매수한 주식을 매도했다. 정씨가 노린 종목 대부분 이 공식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 ‘한 탕’ 노리는 투자자들…대선 테마주 투자 과열 현상
특히 2011‧2012년 대선 테마주에 투자 과열 현상이 나타나면서 관련 종목을 둘러싼 사건‧사고가 많았던 유난히 많았다. 당시 투자자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불황, 부동산 경기 침체, 저금리 기조에 따른 풍부한 유동성 등으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시중자금이 단기간에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대선 테마주에 집중된 것이다.
게다가 대선 테마주에 대한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중요 정보’로 유통되면서 투자자들을 자극하기도 했다. 유사투자자문업자들, 특히 소수 불공정거래 혐의자들은 대선 테마주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생성·유포시키며 불법적인 시세조종 등 행위를 벌였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하면 대선 테마주에 신중하게 접근해야한다는 게 금융당국 측의 설명이다. 테마주는 주가에 기업 실적이 제대로 반영되기보다 투기성 수요에 의해 부풀려진 거품일 가능성이 높다. 해당 테마가 소멸될 경우 주가 폭락에 따른 투자자 피해가 발생한다. 금감원 조사국이 2011년 6월 1일부터 2012년 12월 21일까지 테마주로 분류된 150개 종목의 주가흐름을 분석한 결과 2012년 9월 각 당의 경선완료와 출마선언 등의 영향으로 상승한 주가는 대선이 종료된 12월까지 급격히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반투자자들 입장에선 가격 변동성이 심해 매매 시점을 선정하기가 매우 어렵고 손실을 보는 경우가 많다. 나아가 대선 시기를 이용해 시세 조종 등 불공정거래를 벌이는 세력들이 유입되면서 피해를 보는 이들은 모두 일반투자자였다.
더불어 대선 테마주 외에도 테마주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주가가 정상적인 수요 공급의 원리로 형성되지 않아 주식시장의 공정한 거래질서를 해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다양한 투자수단을 제공하고 효율적으로 자원을 배분한다는 주식시장의 순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아무리 우량기업이더라도 테마에 편승하지 못하면 자금조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기업 발전이 저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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