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흑역사30년]⑱ “10분만에 날아간 22% 수익률”…ELS 시세조종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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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흑역사30년]⑱ “10분만에 날아간 22% 수익률”…ELS 시세조종 사건
  • 김솔이 기자
  • 승인 2019.06.30 13: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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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후반 파생상품 시장 성장...불공정거래 증가
22% 수익률 기대하던 ELS 투자자...10분 만에 25% 손실
홍콩 거주 트레이더...여전히 처벌 어려워
2009년 ‘ELS(주가연계증권·Equity Linked Securities) 시세조종 사건’이 적발됐다. 만기일 장 종료 10분 전 기초자산에 대량 매도 주문이 나오면서 투자자들은 22% 수익률 대신 25% 손실을 봐야했다. 대량 매도 주체는 RBC였다. 사진=YTN 보도화면
2009년 ‘ELS(주가연계증권·Equity Linked Securities) 시세조종 사건’이 적발됐다. 만기일 장 종료 10분 전 기초자산에 대량 매도 주문이 나오면서 투자자들은 22% 수익률 대신 25% 손실을 봐야했다. 대량 매도 주체는 RBC였다. 사진=YTN 보도화면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 그해 4월 증권감독원(금융감독원의 전신)은 최초로 상장기업의 내부자거래를 적발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다. 금융감독원이 얼마 전 펴낸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조사'는 자본시장 30년의 역사를 담았다. 금융감독원의 도움과 다방면의 취재를 통해 30년간 적발된 불공정거래 주요사건을 정리한다. 이 연재 시리즈의 목적은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과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일조한다는 데 있다. [편집자 주]

[오피니언뉴스=김솔이 기자] 국내 파생상품 시장 규모가 눈에 띄게 커진 건 2000년대 후반부터였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고도화된 금융상품을 개발,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현·선물을 연계한 불공정거래도 늘어나고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9년 적발된 ‘ELS(주가연계증권·Equity Linked Securities) 시세조종 사건’이었다. ELS는 옵션 등을 이용해 만기를 정해놓고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정해진 수익률을 제공하는 상품이다.

◆ 장 종료 10분 전 7만주 매도주문…투자자 32억원 손실

한화증권은 2008년 4월 24일 69억원 규모 ‘한화 스마트 ELS 제10호’을 일반투자자에게 판매했다. 기초자산은 포스코와 SK주식이었다.

기본 구조는 만기인 1년 후에 2개 주식 모두 평가가격이 최초 기준가격의 75% 이상이거나 2개 주식 모두 투자기간 중 최초 기준가격의 60% 이하로 하락한 적이 없을 경우 연 22%의 수익률을 지급하는 내용이었다. 반면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하지 못할 경우에는 투자자들이 손실을 떠안아야 했다. 

문제는 만기평가일인 2009년 4월 22일에 발생했다. 두 번째 조건의 경우 SK 주식이 한때 60% 이하로 떨어진 적이 있어 충족되지 못했다. 다만 이날 포스코 주식은 장중 40만2000원대로 최초 기준 가격(49만4000원)의 75%(37만500원)을 웃돌고 있었고 SK 주식 또한 12만2500원에 개장, 장 종료 10분 전인 오후 2시 50분까지 장중 최저가가 12만500원을 기록해 최초 기준가격(15만9500원)의 75%인 11만9625원을 넘을 것으로 보였다.

이날 코스피(KOSPI)200지수 또한 전날보다 1.4% 상승해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22%의 수익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었던 셈이다.

사진=YTN 보도화면 캡처

하지만 장 종료 9분을 남겨놓은 동시호가시간대(오후 2시 51분)에 총 9회에 걸쳐 총 7만주(81억원 규모)의 SK 주식 매도주문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로 인해 SK 종가는 조건성립가격보다 낮은 11만9000원에 마감했다. 투자자들은 순식간에 22%의 수익 대신 25%의 손실을 입게 됐다. 이들이 입은 손실 규모는 32억원에 달했다.

◆ RBC, 손실 회피 위해 시세조종 정황

단 10분 사이 큰 손실을 본 투자자들은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했다. 누군가 SK 주가를 인위적으로 하락시켰다는 것이었다. 한국거래소 또한 금감원 측에 SK에 대한 불공정거래 혐의를 통보해왔다. 금감원은 본격적으로 기획 조사에 착수했다.

금감원 조사에 따르면 대량 매도 주문을 낸 곳은 이 ELS의 원 발행자인 RBC(캐나다 왕립 은행·Royal Bank of Canada)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ELS 판매 구조를 다시 살펴보면 한화증권은 투자자들에게 판매만 했을 뿐 RBC와의 백투백 거래를 통해 중간에서 수수료만 수취하는 방식이었다.

다시 말해 ELS의 원 발행자인 RBC가 이 ELS에 대한 모든 손익을 떠안는 구조였다. ELS 만기 시점에 SK 주식의 종가가 11만9625원 이상이면 투자자들이 연 22%의 수익을 가져가고 이 손실은 한화증권이 아닌 RBC가 온전히 부담해야 했다. 반대로 11만9625원 이하일 경우 투자자들이 손실을 입어야 했다.

정황상 RBC가 ELS 손실을 회피하기 위해 시세조종을 했다는 의심을 가질 수 있었다. 금감원 조사원은 RBC의 거래담당자였던 홍콩 소재 영국인 트레이더 J모씨와 그의 부하직원을 대상으로 문답을 실시했다. 물론 이들은 자신들의 시세조종 혐의를 적극적으로 부인했다. 

그럼에도 금감원은 그들의 범행을 입증할 정황 증거 몇 가지를 파악해냈다. 먼저 ELS 만기 시점에 J씨가 거래하는 헤지북에서 76억원의 누적손실이 발생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ELS에서 32억원의 추가 손실이 발생한다면 누적손실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J씨는 ELS 만기일까지 투자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수익률(22%)에 해당하는 자금이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 J씨가 만기일에 매도한 SK 주식은 총 8만6577주였는데 이중 7만주를 동시호가시간대인 10분간 집중적으로 매도한 점을 고려하면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내리기 위한 행동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동시호가시간대에 제출된 매도주문 수량은 총 16만6615주였는데 이중 7만 주가 RBC가 제출한 매도수량이었다. 호가관여율이 42%에 달했다.

◆ 트레이더 J씨 재판출석 거부…여전히 처벌 어려워

ELS를 판매한 한화증권은 중간에서서 난감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물론 한화증권이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다. 사건 당일에는 장 종료 후 RBC에 부적절한 매매 태도를 들어 항의했고 거래소에는 정식으로 감리를 요청하면서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ELS를 판매한 한화증권에 몰려가 항의하는 한편 금감원에 한화증권에 대한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화투자증권의 평판도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증권선물위원회는 RBC와 J씨를 검찰에 고발했으나 검찰은 J씨만 같은 혐의로 기소했다. 그럼에도 홍콩에 거주하는 J씨는 재판에 계속 출석하지 않아 현재까지도 그를 처벌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형사처벌과는 별도로 투자자들은 법원에 RBC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위한 증권집단소송 허가를 신청했다. 이를 두고 RBC와 피해 투자자들은 장기간의 치열한 법정공방을 벌였고 끝내 2016년 4월 대법원은 투자자들의 집단소송을 허가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266명의 ELS 피해 투자자들은 2017년 2월 내려진 손해액 배상을 내용으로 하는 법원의 화해 결정을 받아들였고 손해액의 약 110%에 해당하는 화해금을 지급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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