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 이야기](65) 복개된 대학천을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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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서울 이야기](65) 복개된 대학천을 따라서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3.24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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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과거 대학로 사이로 하천이 흘렀습니다. 대학로에 서울대학교 문리대가 있었을 때 학생들은 이 하천을 ‘세느강’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학교로 연결되는 다리를 ‘미라보다리’라 불렀고요. 

이 하천의 이름은 ‘대학천’이었습니다. 대학가 인근으로 흐른다고 해서 붙여졌는데 원래 이름은 ‘흥덕동천’이었습니다. 흥덕동천은 혜화동 쪽에서 내려온 물길과 성균관대 쪽에서 흘러온 물길이 혜화역 인근에서 만나 대학로를 거쳐 효제동과 충신동 사이를 지나 종로6가 부근 청계천으로 흘렀습니다.

혜화동과 명륜동을 흐르던 두 물길의 흔적

조선시대에 흥덕동은 지금의 종로구 명륜1가 일대를 말합니다. 흥덕동천은 북묘 부근, 지금의 서울과학고등학교 부근에서 발원했습니다. 하천의 흔적은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 앞 삼거리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혜화로를 따라 혜화동로터리까지 보도 곳곳에 네모 덮개가 있습니다. 흥덕동천이 그리로 흘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 초등학교 입구의 덮개. 대학천은 이 부근에서 덮개 방향, 즉 효제동 방향으로 꺾어진다. 사진=강대호

만약 네모 모양의 덮개가 도로나 보도를 덮고 있다면 그 아래에는 하천이 지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 덮개는 하천과 연결되는 통로인데 하천 관리를 위한 장치입니다. 

각종 문헌에 따르면, 성균관 쪽의 물길은 두 갈래였습니다. 성균관 서쪽을 흐르는 서반수와 동쪽을 흐르는 동반수가 성균관을 지나며 하나로 합쳐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성균관대학교 정문 근처에 있는 성균관에서 두 물길이 지나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정문 인근의 하마비와 탕평비를 보호하는 비각 옆에서 네모 덮개였을 것으로 보이는 흔적을 찾기는 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탕평비’ 옆에 다리가 있었다고 하니 비각 옆으로 물길이 흘렀을 겁니다. 아마도 성균관대 담장 너머로 물길이 흘렀나 봅니다. 

명륜동 성균관대 정문 앞 도로, 즉 성균관로의 안쪽 먹자골목에 네모 덮개가 있었습니다. 이 골목길은 원래 더 넓었을 텐데 목조 건물들이 들어선 좁은 사다리꼴 모양의 필지가 골목 가운데를 가른 듯한 모습입니다. 하천을 복개한 곳에서 간혹 볼 수 있는 형태입니다. 

성균관에서 흘러나온 물길의 흔적을 확실하게 보려면 창경궁로를 건너 대학로 쪽으로 가야 합니다. 창경궁로에서 성균관대 사거리를 건너자마자 혜화역 방향으로 꺾어지는 이면도로가 나옵니다. 젊은 세대가 즐겨 찾는 가게들이 모여 있는 ‘대명길’인데요 네모 덮개를 계속해서 만날 수 있습니다. 지적도를 보면 대명길 곳곳의 지목이 하천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균관 쪽에서 흘러온 물길이 지나던 대명길. 이 물길과 혜화동 쪽에서 흘러온 물길이 혜화역 4번 출구 근처에서 만나 대학로로 흘렀다. 사진=강대호

성균관에서 흘러온 물길은 대명길 아래를 지나 혜화역 4번 출구 부근에서 혜화동 쪽에서 내려온 물길과 만나 동숭동 쪽 대학로 옆으로 흘렀습니다. 이 구간의 지적도를 보면 지목이 도로와 하천이 함께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60~70년대 하천구간 복개

대학천은 일제강점기에 하수도 공사가 진행되면서 일부 구간이 덮였는데 하천 구간 대부분은 19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복개되었습니다. 

과거 기사들을 종합하면, 1965년에 최초 계획을 세워 1966년과 67년 사이에 혜화로 구간과 효제동에서 종로까지 구간을 복개했습니다. 그리고 1977년과 78년에 혜화동로터리에서 이화사거리까지 구간을 복개했습니다. 

대학로의 동숭동 쪽 보도에는 인공 개천이 있다. 지자체에서 흥덕동천의 맥을 잇는다며 설치한 실개천이다. 사진=강대호

혜화동로터리부터 이화사거리까지 대학로의 동숭동 쪽 보도 옆에는 인공 물길이 있습니다. 지자체에서 흥덕동천 혹은 대학천의 전통을 잇는다며 설치한 실개천입니다. 실개천을 따라 서울대 사범대 부설 초등학교 앞까지 가면 보도 위에 있는 네모 덮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학로를 따라 흐르던 대학천은 이화사거리 부근에서 효제동 쪽으로 방향을 꺾습니다. 길 이름은 ‘율곡로14길’인데 지적도를 보면 하천으로 되어 있습니다. 길은 직선이 아니라 완만하게 휘어집니다. 아마도 대학천이 흘러가는 모습이겠지요.

과거 대학천 옆 효제동, 지금의 효제초등학교 북쪽에는 대형 물류창고와 양조장이 있었고, 국정교과서를 인쇄하는 대한교과서의 인쇄소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필지는 재개발이 예정되어 현재 차단막이 처져 있습니다. 

‘율곡로14길’의 대학천 복개길이 효제초등학교 후문 앞길인 ‘김상옥로’를 가로지르면 ‘종로39길’을 만납니다. 이 길도 지적도에 하천으로 표시된 구간이 여럿입니다. 그리고 네모 덮개뿐 아니라 과거 대학천의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합니다. ‘방아다리 감자국’이라는 아주 오래된 식당이 바로 그곳입니다.

이 식당의 이름은 과거 효제동과 충신동을 이어주던 ‘방아다리’라는 다리 이름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관련 문헌을 종합하면, 방아다리는 대한제국기에 세웠는데 디딜방아의 다리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네요. 식당 앞 골목 갈림길에 다리가 있었던 걸로 짐작됩니다. 

종로39길의 ‘방아다리 감자국’. 방아다리는 효제동과 충신동을 잇는 대학천의 다리였다. 이 식당 부근의 골목 갈림길이 방아다리가 있던 곳이다. 네모 덮개가 있는 위치다. 사진=강대호

‘방아다리 감자국’ 식당은 간판의 글자가 바랜 데다 작고 허름해 보이지만, 맛집으로 소문난 곳입니다. 제가 대학천 일대를 탐사하다가 오후 1시 30분경에 도착했는데 이미 재료가 소진되었단 비보를 접했습니다. 메뉴도 감자국 하나라 다른 음식을 시킬 수도 없었습니다. 식사하며 주인 할머니에게 식당에 관한 역사를 캐보려 했는데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효제동에서 종로까지의 대학천 구간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게 원단 관련 창고와 이를 배달하는 물류업체입니다. 기록을 종합하면, 이 구간이 복개되며 봉제공장이 대거 들어섰고 원단 관련 업종도 많이 들어섰다고 합니다. 이들 업체의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나 술집도 많이 들어섰고요. 

또한 이 구간을 걷다 보면 한약 향을 쉬이 맡을 수 있습니다. 한의원이 눈에 띄게 많거든요. 이 지역 특성 덕분입니다.

과거 효제초등학교 후문 앞에 시외버스터미널과 정기화물 물류창고가 있었습니다. 동대문에는 고속버스터미널이 있는 등 이 지역의 교통이 편리해서 지방의 약재상들이 한약재를 공급하기 좋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일대에서 한의원과 한약방 등이 많이 들어서게 되었다네요. 

종로39길의 ‘방아다리 감자국’. 방아다리는 효제동과 충신동을 잇는 대학천의 다리였다. 이 식당 부근의 골목 갈림길이 방아다리가 있던 곳이다. 네모 덮개가 있는 위치다. 사진=강대호

대학천 위에 들어선 건물

명륜동과 혜화동에서 발원한 대학천 물길은 효제동과 충신동 사이를 흘러서 종로를 만나게 됩니다. 그 종로6가 대로변에 대학천의 흔적인 한 건물이 있습니다. 건물 외벽에 ‘대학천상가’라 쓰여 있고 건물 입구에는 ‘덕성빌딩’이라 쓰여있습니다. 두 이름을 가진 건물입니다.

지적도를 보면 대학천상가가 속한 필지의 일부 지목이 하천으로 표기돼 있습니다. 대학천상가는 대학천 위에 지은 건물이니까요. 이 상가 남쪽의 작은 건물은 아예 지목 자체가 하천입니다. 그런 대학천상가는 한때 서점과 서적 도매상이 많기로 유명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청계천 일대에는 서적상이 많이 몰려들었습니다. 교과서나 참고서 등 헌책을 거래하는 이들은 물론 새 책을 유통하는 상인도 많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헌책방들은 청계천 남쪽의 평화시장 등으로 흘러 들어갔고 새 책 유통상들은 대학천상가 일대에 모였습니다. 

1969년 8월 <매일경제>의 ‘시장 순방’ 기사에 대학천상가가 자세히 나옵니다. 대학천상가와 바로 옆 건물에 70여 서적 도매상이 있다고 소개합니다. 1990년대에도 대학천상가와 인근에 서적 도매상을 겸하는 서점이 80여 군데가 있다고 전하는 신문 기사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기사들을 종합하면, 동네 책방이 많았던 시절에 이들 서점에 책을 공급하던 서적 도매상들이 대학천상가에 많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도매상은 유통을 고민하는 출판사와 구색 갖추기를 고민하는 서점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음악이나 종교 등 분야별로 특화된 서적 도매상도 있었다고 합니다.

대학천상가 1층 외곽의 서적 도매상들. 문 닫은 곳이 많다. 사진=강대호

대학천상가 1층을 둘러보면 과거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간판들이 거의 서점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다 문을 닫고 영업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일부 문을 연 가게 앞에 어르신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노인 지하철 택배를 중개하는 업체들이 과거 서점이었던 점포에서 영업하고 있는 거였습니다. 

그래도 아직 서적 도매상을 하는 점포가 4개 정도 있습니다. 그중 한 서점 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 분은 대학천상가에 입주한 지 30년이 넘었는데 서적 도매상이 많을 때는 옆 건물까지 포함해 100여 군데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서점과 관련해 할 이야기가 많은데 다음에 기회를 잡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대학천상가 남쪽으로 가면 청계천이 나옵니다. 이 지역은 청계천을 경계로 종로구와 중구가 나뉩니다. 다음 주에 청계천에 관한 이야기를 한 후 4월부터는 중구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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