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동묘 일대를 지나다 보면 독특한 풍경이 눈길을 잡아끕니다. 전통 건축물이 있는 동묘라는 시설이 그렇고 동묘 주변의 골동품과 구제 의류를 파는 벼룩시장이 그렇습니다. 내외국인 할 거 없이 이 거리에 모여든 사람들도 구경거리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동묘는 어떤 시설일까요? 아주 오래전에 저는 동묘가 종묘의 동쪽에 있는 또 다른 종묘인 줄 알았었습니다. 제 오류를 알게 된 후 주변에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동묘가 어떤 시설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이는 드물었습니다. 동묘 일대가 유명해진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요.
동관왕묘, 삼국지의 관우 장군을 모시는 사당
동묘는 종로구 숭인동에 있습니다. 지난주에 이야기한 창신동의 바로 옆 동네입니다. 이웃한 두 동은 조선시대 이 지역의 행정구역인 숭신방과 인창방에서 지명을 따왔습니다.
동묘는 삼국지의 영웅인 관우 장군을 모시는 사당입니다. 정식명칭은 동관왕묘(東關王廟)이고, 임진왜란 후인 1601년(선조 34년)에 세워졌습니다.
조선 땅에 세운 관우 사당의 유래는 자료에 따라 다릅니다. 다만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명나라의 요청으로 지은 건 확실합니다. 명나라에서는 공자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문묘(文廟)처럼 관우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을 무묘(武廟)라 하여 크게 숭배했습니다. 조선도 이를 따랐습니다.
관왕묘는 서울의 동서남북에 있었는데 그 중 동관왕묘가 제일 규모가 크고 화려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건 동대문 근처의 동묘가 유일합니다. 이러한 동묘는 중국풍 건축의 모습을 보여주는 제사 시설로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곳이기도 합니다.
동묘 안에 들어가면 ‘하마비’가 눈에 들어옵니다.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말에서 내려야 하는 데서 이 장소를 신성시했던 과거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정전에 들어가면 황금빛 관우 동상을 볼 수 있습니다. 동관왕묘 금동관우좌상(東關王廟 金銅關羽坐像)입니다.
기록을 종합하면, 금동관우좌상은 구리 4천여 근을 들여 주조했고, 조선과 명나라의 장인들이 동원돼 1601년에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동관왕묘는 보물로 지정되었는데 금동관우좌상 등 동묘 내 유물 일괄은 서울시에서 유형문화재로 지정했습니다.
이런 동묘 일대를 사람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이들은 동묘에 들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동묘 주변에 펼쳐진 벼룩시장 혹은 빈티지 매장을 찾아온 것으로 보입니다.
다양한 중고 물건이 펼쳐진 벼룩시장
동묘는 노점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지하철 동묘앞역 대로변만 빼놓고 3면의 동묘 담장에는 각종 물건을 파는 벼룩시장이 펼쳐져 있습니다. 동묘 담장을 둘러싼 노점상들은 길바닥에다 온갖 물건들을 펼쳐 놓았는데 만물상이 따로 없는 듯합니다.
구제로 불리는 헌 옷가지가 많았지만, 때론 새것으로 보이는 아웃도어 의류나 신발, 트로트 노래가 수백 곡이 자동으로 재생되는 기계, 그리고 몸에 좋다는 식품과 온갖 주전부리 등 그 품목들이 다양합니다.
이 거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면면도 다양합니다. 노인, 중장년, 청년 등 모든 세대가 찾아오고 요즘에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도 찾아옵니다. 그래도 노년층을 가장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노인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매장이 특히 눈에 띕니다. 국고 지원금을 적용받는 전기 휠체어나 보청기 등 노인들에게 필요한 용품매장이 이 거리 곳곳에 있습니다.
동묘 인근 여러 골목에는 빈티지 의류매장을 표방하는 가게가 많이 들어섰습니다. 이들은 좌판에서 파는 헌 옷들과는 달리 진열도 체계적이고 가게마다 개성이 있어 보입니다. 동묘 담장을 둘러싼 노점들과 인근 골목의 빈티지 의류매장들은 서로의 이질감을 극복하며 공존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동묘에는 벼룩시장과 빈티지샵만 있는 건 아닙니다. 헌책방도 있습니다. 지금은 전문적으로 영업하는 곳이 세 곳이지만 코로나19 전만 해도 헌책방이 몇 곳 더 있었습니다. 모두 빈티지샵 등으로 바뀌었지만요.
이 거리에는 중고 LP를 파는 가게도 있습니다. 다만 여러 경고 문구가 쓰여 있어 둘러보기에는 다소 불편한 면도 있습니다. 혹시 중고 LP를 차분하게 구경하고 싶다면 청계천 건너 황학동으로, 전문적으로 고르고 싶다면 명동 신세계백화점 앞 회현지하쇼핑센터에 가보시길 권합니다. 거기에 가면 역사가 오래되고 전문적인 중고 LP 매장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한편 황학동은 동묘 벼룩시장의 원류가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다음에 중구를 다룰 때 자세히 이야기하겠습니다.
동묘로 노점상이 몰리는 이유
자료를 종합하면, 조선시대 동묘 인근에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고 가축시장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장들이 지금 동묘 인근에 자리한 상권의 원류는 아닙니다. 다만 동묘 인근 노점상 관련 연구 논문들을 보면 지금의 상권은 청계천 일대 도시개발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합니다.
특히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진행된 청계천 복원사업으로 철거된 노점상 중 일부가 동대문운동장 내 벼룩시장으로 이전했는데 이때 동대문운동장에 들어가지 못한 일부 노점상이 동묘 인근으로 옮겨 온 걸 그 시작으로 봅니다.
그런데 2006년에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사업이 진행되자 동대문운동장 안에 있던 노점들은 다시 해체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가 해결책으로 신설동에 마련한 ‘서울풍물시장’으로 일부 노점상이 들어갔고, 거기에 속하지 못한 일부 노점이 동묘로 흘러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동묘와 비교해 외진 곳에 자리한 신설동 서울풍물시장의 입지 때문에 동묘로 들어오는 노점상이 많았습니다. 당시 동묘 주변에는 어르신들이 많이 모였는데 이들을 상대로 골동품이나 중고품, 혹은 헌 옷가지 등을 파는 벼룩시장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2010년대 중반에 접어들며 분위기가 싹 바뀌었습니다. 몇몇 연예인이 동묘에서 구한 헌 옷을 트렌디하게 코디해 입고 다녔는데 방송에서 이런 모습을 여러 차례 다루자 구제 옷을 파는 동묘 일대는 빈티지 의류를 파는 그야말로 힙한 거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거리는 또한 저렴한 먹거리로도 유명합니다. 시원한 미숫가루와 식혜가 갈증 느낀 이들의 발길을 붙잡고 마가린으로 토스트를 굽는 구수한 냄새는 시장기가 돈 이들의 코를 자극합니다. 이들 먹거리가 단돈 천 원입니다. 하지만 워낙 저렴해서인지 토스트만 주문하면 어묵 국물을 먹을 수 없습니다. 국물만 따로 마시면 500원이라고 합니다.
동묘 일대를 찾아오는 이들이 많아지고 그 면면까지 다양해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지는 모습을 갈 때마다 느끼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인심도 달라지는 거 같고요.
다음 주에는 대학로 일대와 서울대학병원을 다루는 한편 우리나라 근대 고등교육의 시작, 특히 서양 의학 교육의 시작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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