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 이야기](67) 서울의 중심이었던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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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서울 이야기](67) 서울의 중심이었던 중구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4.0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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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서울특별시 ‘중구’는 서울의 중심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행정구역입니다. 여기서 중심은 지리적 위치를 의미하기도 했지만, 정치경제는 물론 사회문화적 중심을 의미했습니다. 

서울에 중구라는 행정구역이 처음 도입된 건 1943년입니다. 조선총독부는 이 해에 경성에 구(區)제도를 실시했는데 종로구, 서대문구, 동대문구, 용산구, 성동구, 영등포구와 함께 중구를 설치했습니다. 광복 후 서울이 확장되며 기존 구에서 분리되거나 새로운 구가 생기거나 해서 지금은 모두 25개의 자치구가 있습니다.

1943년에 처음 중구가 생겼을 때는 사대문 안쪽 지역만 속했었는데 1975년에 인근 자치구의 일부 동을 편입해 지금의 영역이 되었습니다. 이때 중구로 편입된 지역 중에 서대문구에 속했던 정동과 서소문, 그리고 성동구에 속했던 신당동과 황학동 등이 있습니다.

지형지물로 특징 짓자면 중구는 청계천 남쪽에 위치합니다. 궁궐 주변에 자리한 북촌이나 서촌과는 분위기가 다른 주거지가 형성되었습니다.

고지대라 풍광이 좋고 배수가 잘되는 북촌에 고위 관리 등 권문세가가 살았다면 남산 기슭인 남촌에는 권문세가가 아닌 양반들이나 하위 관리들이 살았습니다. 남촌은 북향이라 음지이지만 배수가 잘되고 지하수도 풍부했다고 하는데 오늘날 남산동에서 필동을 거쳐 묵정동에 이르는 지역을 말합니다.

다산동 성곽마을에서 바라본 중구 일대. 사진=강대호

남산에서 청계천에 가까워질수록 저지대라 배수가 잘 안되고 악취가 많아 거주지로서는 열악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이를 감수하고 거주한 이들은 주로 서민들과 가난한 선비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충무로인 진고개라는 지명도 진창길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흥인지문 인근의 청계천 남쪽에는 훈련원, 하도감, 염초청 등 군영 관련 공공시설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군인들과 군속, 그리고 이들의 가족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특히 광희문 쪽에 이들의 거주지가 대거 들어섰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동대문 일대 전통시장의 시작이 이들 군인과 그 가족들의 부업에서부터 유래되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이렇듯 옛 중구 지역, 즉 청계천 남쪽 지역은 청계천 북쪽과 사뭇 다른 분위기로 발전해왔습니다. 궁궐과 관청이 있는 청계천 북쪽에는 상대적으로 고위층과 부유층이 살았고 상업도 발달했으니까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평범한 이들이 살았던 남촌 인근에 이방인이 자리 잡기 쉬웠나 봅니다. 

명동거리. 사진=강대호

근대 서울의 발전을 이끈 중구 지역

조선이 개항한 19세기 후반에 조선에서 상업활동을 펼치려는 일본인들이 남산 기슭에 들어와 살기 시작합니다. 남산동과 회현동이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총감부와 조선총독부가 한때 남산 자락에 있었습니다. 

일본인들이 자리 잡은 청계천 남쪽 지역은 일제강점기에 크게 발전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곳이 명동입니다.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가 되며 개화의 상징인 지역으로 발전했습니다. 

일본인 거류민들이 초기에 정착한 동네인 회현동 일대는 남대문시장 등과 거래하는 중국 무역상들이 자리 잡았습니다. 이렇듯 중구에는 외지인들이 정착한 곳이 여럿 있는데 오늘날 광희동 일대도 그렇습니다. 초기에는 러시아 상인들이 주로 보이더니 요즘에는 중앙아시아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조선총독부가 이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을 중구라고 지은 데에는 경성의 중심지라는 성격을 반영했을 겁니다. 특히 경성부 청사, 지금의 서울시청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서울시청. 사진=강대호

혹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남산 방향을 바라본 적이 있나요? 그 앞에 커다란 호텔 건물이 딱 버티고 있는 걸 보셨을 겁니다. 이 호텔이 왜 시청 앞 광장의 시야를 막는 구조일까요? 

호텔이 들어서기 전 소공동 일대에는 차이나타운이 형성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없습니다. 여기에는 서울 도심이 개발되는 과정에서 권력자와 관료가 중요시했던 가치가 담겼습니다. 눈에 거슬리면 치워버리는. 

프로야구가 개막한 지금 서울에서 경기가 열리면 ‘잠실벌’이 떠들썩하다는 표현을 씁니다. 그런데 1982년 프로야구가 처음 도입됐을 때 개막 경기가 열린 곳은 동대문 근처 서울운동장입니다. ‘성동원두’라 불렸던 곳이지요. 지금은 운동장은 헐리고 DDP가 들어선 그곳입니다. 이 자리는 한양도성 성곽의 운명과 관련 깊습니다. 

DDP 인근에는 ‘메디컬센터’라 불렸던 국립중앙의료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의료 역사에 중요한 의미가 담긴 병원입니다. 그 옆에는 미군 공병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개발 중입니다. 이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군부대가 있었던 자리로 역사적으로 의미와 유래가 깊습니다. 

이처럼 중구 지역과 관련된 것들을 짚어보니 이야기할 소재가 무척 많습니다. 관련 자료와 탐사를 기반으로 연재를 이어가겠습니다. 그런데, 주요 시설이 있는 중구는 예로부터 평범한 이들이 모여 사는 동리가 많았고 이 동네들에도 담긴 이야기가 많습니다.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들어선 DDP. 설치 작품은 김영원의 ‘꽃이 피다’. 사진=강대호

중구의 여러 동네에 담긴 이야기들

중구를 이야기할 때 ‘도심공동화’ 현상을 이야기합니다. 각급 학교가 사라지고 심지어 선거구조차 다른 자치구와 합쳐진 현상을 우려합니다. 이렇듯 떠나간 사람만 아쉬워하지 아직 관내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에 관한 관심은 우선순위에서 많이 밀린 듯 보이는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아직 중구를 지키는 시민이 많은 데도요.

그래서 중구의 여러 동네를 찾아갈 예정입니다. 지난 수십 년간 많은 변화를 맞이한 곳도 그 변화의 바람을 피해 간 곳도 있습니다. 

풍물시장으로 알려진 황학동이 변화의 바람을 세게 맞았습니다. 청계천에 변화가 생길 때마다 정리의 바람이 일던 동네입니다. 과거 황학동 풍물시장에 자리 잡았던 상인들이 정책의 바람이 일 때마다 어디로 어떻게 부유하고 다녔는지 따라가 보겠습니다.

황학동의 중고 가전제품 점포들. 사진=강대호

중구에는 서울의 옛 모습을 보여주는 주거지가 많습니다. 특히 구불구불한 골목길과 높은 경사지에 들어선 동네들이 많습니다. 저는 중구 일대를 지날 때면 그 동네 안에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찾아가 보았습니다. 덕분에 신당동이 왜 신당동인지 그런데 왜 한자가 왜 바뀌었는지, 경사진 언덕에 들어선 약수동과 중림동의 주택가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그리고 다산동 성곽 마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중구에서 가장 먼저 다룰 소재를 무엇으로 할지 무척 고심했습니다. 그러다 우리나라 의료 서비스 역사에서 큰 의미를 간직한 곳인데다 지금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은 곳으로 정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서울 중구 을지로6가에 있는 ‘국립의료원’에 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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