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 이야기](61) 흥인지문에서 낙산까지 한양도성 성곽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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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서울 이야기](61) 흥인지문에서 낙산까지 한양도성 성곽길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2.25 09: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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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흥인지문 일대 한양도성은 복원되어 있습니다. 동대문 주변으로 도로가 지나며 도성이 잠시 잘렸지만, 낙산 자락을 따라 성곽이 이어지고 있어 과거 한양도성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양도성 낙산 구간 입구에는 ‘각자성석(刻字城石)’, 즉 글자를 새긴 성돌이 있습니다. 이곳의 각자성석에는 공사 총책임자, 구간 책임자, 그리고 목수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성돌에 새긴 각자성석은 일종의 ‘공사 실명제’입니다. 만약 부실 공사 구간이 있으면 책임을 물겠다는 의미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양도성의 각자성석(刻字城石). 흥인지문 건너편 한양도성 낙산 구간이 시작되는 지점에 있다. 사진=강대호

한양도성 낙산 구간

흥인지문 공원에서 출발하는 한양도성 낙산 구간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동대문과 청계천 일대의 모습이 잘 보입니다. 걷기 좋은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고 경관 조명도 설치되어 야경 명소로 소문났습니다. 

성곽길 안쪽과 바깥쪽으로는 주택가가 있습니다. 성곽 안쪽의 ‘낙산성곽서길’을 따라 ‘종로6가’와 ‘충신동’, 그리고 ‘이화동’의 주택가 펼쳐지고, 성곽 바깥쪽의 ‘낙산성곽길’과 ‘낙산성곽동길’을 따라 창신동 주택가가 펼쳐집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을 겁니다. 최소한 도성 안쪽 영역에서는 말이죠. 도성 바깥인 지금의 창신동 일대는 도성을 오가는 길목이라 백성들의 주거지가 자연스레 생겨났지만, 도성 안쪽의 성곽 주변에는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성벽은 방어를 위한 시설이라 조선시대에는 주변에 민가가 없는 완충지대였습니다. 한양을 둘러싼 산들의 지형을 이용해 성곽을 쌓아서 더욱 그러했을 겁니다. 동대문인 흥인지문과 동소문인 혜화문 사이에는 낙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양도성 낙산 구간의 충신동 주택가. 사진=강대호

낙산(駱山)은 산등성이 모습이 낙타의 등 같아서 낙타산(駱駝山)으로 불리기도 했고, 궁궐에 우유를 조달하던 관아인 유우소(乳牛所)가 있어서 타락산(駝酪山)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해발 125m의 낙산은 그리 높지 않고 골짜기도 깊지 않지만, 물이 맑고 상록수가 빽빽해 풍치가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낙산의 계곡을 중심으로 권문세가의 별장이 있었다고 하네요.

성곽 주변과 낙산 자락은 군 경계 지역이면서 일부 특권 계층에게만 허락된 장소라 백성들은 접근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런 낙산 일대의 성곽 주변으로 주거지가 생기기 시작한 건 일제강점기였습니다. 이 시기부터 서울의 고지대 등에 판자촌 등 서민 주거 공간이 들어서게 됩니다. 빈 땅이었던 한양도성 주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현상은 광복을 거쳐 한국전쟁 후부터 더욱 심해집니다. 특히 낙산 일대 판자촌은 도심 가까이에 사는 저소득 노동자들의 대표적 주거 공간이 되었습니다. 인근에 동대문 시장 등 대규모 상업시설이 있고 도심과 가까워 교통이 편리했기 때문에 서민주택 밀집 지역으로 번성하게 된 겁니다.

항공사진을 보면 그 변화를 잘 알 수 있습니다. 1947년 항공사진을 보면 흥인지문과 낙산으로 이어지는 성곽의 윤곽이 보입니다. 그 주변으로 주택가가 형성되었고요. 하지만 1972년 항공사진에서는 성곽의 윤곽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아마도 훼손된 성곽을 축대 삼아 집들이 들어선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시 자료 등에 따르면 한양도성 주변에 불량주택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울시는 이들 불량주택을 단계별로 정비했습니다. 1980년대 항공사진에서 그 효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성곽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오늘날의 한양도성 낙산 구간으로 정비되었습니다.

한양도성 낙산 구간 이화동의 카페들. 사진=강대호

낙산성곽서길, 즉 도성 안쪽 길로 오르다 보면 이화동이 나옵니다. 이화동 벽화마을로 유명했었는데 지금은 아기자기한 카페와 식당, 그리고 예쁜 상점들로 관광객들의 눈길을 끕니다. 

낙후한 동네의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는 게 한때 ‘도심 재생’의 방안으로 유행한 적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거주하는 동네에 관광객이 많이 몰려들어 사생활 침범 등 이른바 ‘오버투어리즘’의 문제가 있기도 합니다. 이화동 벽화마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본부인이 살았던 창신동

한양도성 낙산 구간 정상에서 성곽 바깥의 창신동 쪽 길을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작은 사찰이 나옵니다. 지장암입니다. 이 일대는 고 이승만 전 대통령의 땅이었고 그의 본부인이 관리했던 곳입니다.

사람들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부인으로 프란체스카 여사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1891년에 결혼한 본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박승선(1876~1950?)인데 이승만이 미국으로 떠난 1912년부터 창신동에서 이승만 명의의 땅을 관리하며 살았습니다. 

창신동 지장암. 한양도성 성곽길 바로 옆에 있다. 사진=강대호

그런데 창신동 땅과 이승만 본부인과 관련된 일이 조선일보에 등장합니다. 1926년 7월 15일 자 조선일보의 ‘누항(陋巷)에서 신음하는 이승만 박사 부인’ 기사는 이승만이 미국으로 간 후 박승선이 창신동 언덕의 작은 집에서 살고 있다고 전합니다. 

제목의 ‘누항’은 ‘좁고 지저분한 장소’를 의미합니다. 기사에서 박승선은 집 없는 이들에게 창신동 땅을 내어주고는 집을 짓게 했는데 그렇게 새로운 촌락이 들어서면서 그녀의 칭송이 일대에 자자했다고 기사는 전합니다.

하지만 이튿날 같은 신문에 실린 ‘이종교(異宗敎)에 동정(同情) 가대(家垈)를 전집융통(典執融通)’ 기사에서는 한 승려가 절을 중건할 땅을 빌려달라며 박승선에게 접근했고 급기야는 등기문서까지 가로채 땅을 빼앗은 일을 고발합니다. 그 과정에서 박승선은 협박은 물론 폭행까지 당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중건한 절이 지장암이었습니다. 당시 이 절의 승려는 박승선이 항일운동을 하는 이승만의 부인이라 관계 당국의 환영을 받지 못하는 데다 그녀가 혼자 사는 노부인이라 업신여겼다고 이 기사는 전합니다.

이화장. 한양도성 낙산 구간의 이화동 벽화마을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다. 사진=강대호

한편, 이승만은 광복 후 프란체스카 여사를 부인으로 대동하고 귀국합니다. 그리고 1947년 11월부터 1948년 7월까지, 즉 대통령이 되어 경무대에 들어가 살기 전까지 낙산 아래 이화장에 기거합니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 이승만은 박승선과 이혼한 상태였을까요? 이와 관련한 조선일보 기사를 찾았습니다. 조선일보는 1965년 8월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간 '이박사의 호적 수수께끼' 기사를 상·중·하의 세 편으로 연재합니다. 

첫 기사에서는 박승선을 비롯해 호적상 장남과 손자녀 등 7명을 이승만의 호적에서 삭제한 1949년 6월 4일의 재판 결과를 소개합니다. 또한 재판 다음 해 4월에 이승만이 ‘프란체스카 여사와의 결혼심고’를 냈는데 법원 측이 극비에 다룬 일도 전합니다. 

연재 세 번째 기사에서는 27일 만에 끝난 극비 재판의 과정과 그 결과가 석연치 않다며 정확성 여부까지 의문을 품습니다. 그리고는 법조계 인사들에게 이 재판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들은 “사건 내용에 맞지 않는 소송제기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라고 못 박거나 “넌센스라기보다는 위법이요 오판이 될 것 같다”고 의견을 밝힙니다.

이렇듯 조선일보의 과거 기사들을 종합하면, 고 이승만 전 대통령은 프란체스카 여사와 결혼하기 전에 중혼 상태였던 건 사실로 보입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4·19혁명으로 하야한 1960년 4월 27일부터 하와이로 떠난 5월 28일까지 이화장에 머물렀습니다. 또한 그가 사망한 1965년 7월 이화장에 잠시 안치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이화장은 한양도성 낙산 구간의 이화동 벽화마을에서 내려다보이는 장소에 있습니다. 대학로와 가까운 동네이고, 지장암에서는 300m 정도 됩니다. 

이렇듯 한양도성 성곽길을 걷다 보면 주변의 풍치는 물론 이 일대에 담긴 역사 속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창신동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습니다.

흥인지문 공원. 동대문과 청계천 일대가 내려다보인다. 사진=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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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2024-02-25 17:57:44
https://v.daum.net/v/20220807060207949
2022. 8. 7. 글이 더 자세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