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이야기]㊷ 동대문, 왕십리 그리고 뚝섬...기동차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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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서울이야기]㊷ 동대문, 왕십리 그리고 뚝섬...기동차의 흔적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10.1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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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동대문은 서울 강북 도심과 외곽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입니다. 과거 동대문에는 서울전차 차고가 있었고, 전차 운행이 폐지된 후에는 고속버스터미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차가 다니던 시절에는 기동차라고 불린 노면전차도 동대문에서 출발했습니다.

기동차는 동대문에서 뚝섬, 그리고 뚝섬에서 광나루까지의 노선을 운행한 노면전차입니다. 1930년부터 1966년까지 운행했지요. 경성전차 혹은 서울전차라고 불린, 1899년부터 1968년까지 운행된 노면전차와는 태생부터 다릅니다. 우선 운영 주체가 달랐습니다.

경성전차는 경성전기주식회사에서 설립했고, 서울전차로 명칭이 바뀐 해방 후에는 경성전기 등 여러 전력회사를 합병한 한국전력에서 운영했던 노면전차입니다. 반면 기동차는 경성궤도주식회사가 운영한 노면전차를 말합니다.

기동차의 역사는 경성교외궤도주식회사가 1930년 11월 왕십리-뚝섬 간 4.3km의 궤도를 부설한 게 그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경영이 어려워지자 1932년 4월 경성궤도주식회사로 사업이 이관되었습니다. 사업을 인수한 경성궤도회사는 경성전차와 궤도를 공유하던 동대문에서 왕십리까지의 구간에 기동차 전용 궤도를 부설했습니다. 

기동차는 기관차가 끌어주는 열차

이때까지만 해도 경성궤도회사가 운행하던 차량은 전차가 아닌 기동차였습니다. 기동차는 내연 기관의 힘으로 움직이는 차, 즉 연료를 동력으로 엔진을 구동하는 차를 의미하지요. 경성궤도의 기동차는 원래 기관차가 끌어주는 열차였습니다. 운행 초기에는요. 당시 신문 기사들은 기동차의 연료를 ‘까소린’, 즉 가솔린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935년 8월부터 동대문-뚝섬 구간의 기동차는 동력을 전기로 바꾸게 됩니다. 1935년 12월 8일 동아일보는 '경성궤도의 전화(電化)'라는 기사를 통해 그해 8월부터 경성궤도의 차량의 동력이 전기화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대륙 침탈을 위해 연료를 비축해야 했던 당시 일본의 의도가 엿보입니다. 

1963년에 뚝섬에서 성동교 방향을 촬영한 사진. 기동차가 지나는 아래로 궤도가, 위로는 전기 배선이 보인다. 멀리 언덕 위로는 한양대도 보인다. 사진제공=서울역사아카이브

1939년에는 뚝섬에서 광나루 구간도 전기화가 됩니다. 1939년 7월 30일 동아일보의 '서독도-광장리간 전차 운전 인가' 기사는 '까소린 대책'으로 뚝섬 광장리 간을 '까소링카' 대신에 전차가 운행된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여기서 ‘까소린 대책’은 중국과 전쟁을 벌이는 일본에 대해 미국이 석유 수출을 금지한 후 나온 대책으로 보입니다. 대륙 침탈은 물론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으로 전선을 확대해 가던 일본의 당시 상황을 읽을 수 있습니다. 

경성궤도회사의 기동차는 경성전차처럼 전차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전기화가 된 후에도 기동차는 여전히 기동차로 불렸습니다. 1963년도에 중랑천의 성동교를 지나는 기동차를 촬영한 사진을 보면 궤도와 나란히 설치된 전기 배선이 보입니다. 그 모습만 보면 기동차가 아니라 그냥 노면전차입니다.

경성궤도회사는 사업 초기에 동대문에서 뚝섬 사이를 운행했습니다. 이 노선에는 동대문, 왕십리, 상후원, 유원지 등 11개 역이 있었습니다. 

유원지는 뚝섬유원지를 말합니다. 뚝섬유원지는 1934년 7월 경성궤도회사가 동뚝섬역 인근 한강 변에 유원지를 만든 것에서 시작됐습니다. 같은 해 10월에는 유원지역도 신설했는데 교외 소풍객들을 끌어들여 기동차 승객 확대를 꾀한 것으로 보입니다. 

1934년 12월 경성궤도회사는 상후원역에서 갈라져 화양리와 구의동을 거쳐 광장리까지 가는 지선을 추가로 건설했습니다. 상후원역은 서울지하철 2호선 뚝섬역 부근에 있었는데 광장리 노선의 환승역이기도 했습니다. 

기동차는 승객도 운송했지만, 화물도 실어 날랐습니다. 물론 화물차는 별도로 운행했지요. 왕십리와 뚝섬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채소류 경작지로 유명했습니다. 그래서 1930년대 이후에 기동차는 서울 도심으로 농산물을 실어 나르는 화물차 역할을 했습니다.

농산물은 물론 인분을 운반하기도 

기동차는 인분을 운반하기도 했습니다. 청계천 변 기동차 역 인근에는 서울의 인분이 모이는 저장소가 있었습니다. 기동차는 이곳에 모인 인분을 왕십리와 뚝섬 일대로 실어 날랐습니다. 서울의 인분은 왕십리와 뚝섬 일대의 농경지에 거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해방 후 경성궤도회사의 모든 자산은 미군정에 의해 적산으로 몰수되었습니다. 이후 한국인이 운영했지만, 기동차는 6·25전쟁으로 큰 피해를 봤습니다. 차량의 손실은 물론 청계천 교량 등 시설의 80% 정도가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전쟁 후 정상 운영이 어려워지자 기동차는 1953년 서울시에 인수되어 시영 체제로 운영되었습니다. 참고로 서울전차는 1966년에 서울시에 인수됐습니다.

하지만 차량과 시설의 노후가 문제 되었습니다. 고장과 수리 불능 등으로 운행할 수 있는 기동차가 계속 줄어만 갔습니다. 반면 서울은 인구가 늘어나며 교통난이 심해져 갔지요. 버스 등 새로운 대중교통이 시민들의 선택을 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서울시는 1961년에 경성궤도 기동차의 폐지를 결정합니다. 과거 신문 기사를 종합하면, 기동차가 운행을 완전히 멈춘 건 1966년 중순쯤이었습니다.

동대문관광호텔 앞 ‘경성궤도회사 터’ 표지석. 사진=강대호

현재 서울에 기동차의 흔적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곳을 찾아가 봤습니다. 서울 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 7번 출구 앞에 ‘경성궤도회사 터’ 표지석이 있습니다. 동대문관광호텔 1층의 패스트푸드 가게 유리창 바로 앞에 있습니다. 

이 건물이 들어선 자리가 기동차 시발지였습니다. 호텔 바로 옆에서 연결되는 ‘종로44길’에는 기동차 궤도가 지났습니다. 그 길 중간의 재개발추진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동네 주민이 기동차가 다닌 길을 알려주었습니다. 종로44길에서 종로50가길과 종로50나길로 갈라졌다고요. 무척 좁아 보였는데 궤도 걷어낸 자리에 건물이 들어서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청계천 변 건물 뒤쪽 골목길을 따라 기동차가 다녔습니다. 그 윤곽이 남은 골목도 있고 다른 시설이 들어선 곳도 있습니다. 그곳 주민들에게 기동차를 아냐고 물어봤지만 다들 낯설어했습니다. 용두동에서 청계천 너머 마장동 방향으로 건너가니 기동차 궤도 흔적을 알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왕십리역 부근에서 확실한 기동차 길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왕십리역 인근의 ‘행당지하보차도’. 과거에 기동차가 다녔던 길이다. 위로는 경의·중앙선과 수인·분당선이 지난다. 사진=강대호

기동차가 다녔던 흔적들

왕십리역으로 진입하는 철로 아래를 지나는 굴다리인 ‘행당지하보차도’가 그 흔적입니다. 예전에 기동차가 다니던 길이었다고 합니다. 그 위로 수인·분당선 전철이 지나게 되자 2008년에 옛 굴다리를 철거하고 확장 공사를 했다고 하네요.

1963년에 촬영한 기동차 사진에 나오는 성동교도 확장되었습니다. 성동교 남단에서 중랑천 건너를 바라보니 1963년 사진에 찍힌 것처럼 멀리 언덕 위에 한양대가 보입니다. 성동교 위 고가철도로는 지하철 2호선이 지나고요. 

2호선 뚝섬역 인근에는 상후원역이 있었습니다. 뚝섬역 인근 왕십리로에서 갈라지는 왕십리로14길 부근이었습니다. 이 길에는 지목이 철도용지로 된 땅이 있습니다. 화양동의 한 도로에도 여전히 지목이 철도용지인 땅이 있습니다. 기동차가 다녔던 길의 흔적입니다. 

뚝섬역 인근 SK테크노빌딩 뒤편, 상원길에 있는 ‘성수동 기동차길’ 안내판. 사진=강대호

그리고, 뚝섬역 인근 SK테크노빌딩 뒤 ‘상원길’에는 그곳이 예전에 기동차가 다녔던 길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기동차 궤도가 지났던 왕십리로14길과 상원길 일대를 지도로 보면 직선이 아닌 사선으로 휘어지는 도로의 윤곽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은 화양리를 지나 광나루까지 가던 기동차 길의 흔적입니다. 

왕십리와 성수동 일대의 변화를 기록한 서울시 문헌에는 기동차를 기억하는 주민들의 증언이 많이 수록되었습니다. 기동차는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표지석과 표지판, 그리고 희미해진 길의 흔적으로도 남았습니다.

뚝섬역 인근 SK테크노빌딩 뒤편에 있는 ‘성수동 기동차길’ 안내판. 사진=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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