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 이야기]㊳ 남산자락 '힙한 동네' 해방촌과 경리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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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서울 이야기]㊳ 남산자락 '힙한 동네' 해방촌과 경리단길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9.17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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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남산자락에는 일본인들이 계획해 들어선 주거 공간이 여럿 있지만 한국인들이 모여들어 자연스럽게 마을이 된 곳도 있습니다. 해방촌이 그중 한 곳입니다.

해방촌의 정확한 행정구역은 용산구 용산2가동 대부분과 용산1가동 일부입니다. 외부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동명이 낯설고 해방촌이라는 명칭이 더 익숙할지 모릅니다. 

해방촌은 이름처럼 해방 후 해방을 맞은 이들이 모여 산 마을입니다. 일제강점기에 경성호국신사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동네이지요. 경성호국신사는 태평양전쟁에서 전사한 군인들이 늘어나자 그 영혼을 기린다는 명목으로 일제가 남산에 세운 일본식 종교 시설입니다. 

해방 후 경성호국신사가 폐쇄되자 그 자리에 집 없는 사람들이 터 닦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주변으로 주거 공간이 늘어나며 지금의 해방촌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양한 배경을 지닌 이들이 모인 해방촌

해방촌에는 다양한 배경을 지닌 이들이 모여들었습니다. 해방 후에는 해외에서 돌아온 이들과 월남민들이, 한국전쟁 후에는 피난민들이, 그리고 1970년대 이후에는 농촌을 떠난 이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다양한 사연을 지닌 해방촌 주민들은 도시 서민의 정체성을 이뤄가며 살아왔지요.

후암동 쪽 해방촌으로 올라가는 신흥로 초입. 이 지점부터 경사지고 굽은 길이 시작된다. 사진=강대호

해방촌으로 올라가는 주요 진입로는 두 군데입니다. 용산중학교 인근의 후암동 종점에서 시작하는 언덕길, 즉 신흥로 초입과 그 길 반대편 끝자락에 있는 옹기 가게 앞길입니다. 그리고 남산 기슭을 달리는 소월길의 용산2가동 주민센터 입구에서도 해방촌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전에 해방촌 주민들은 후암동 종점에서 내려 신흥로나 그 주변의 경사진 골목길을 이용해 집으로 갔다고 합니다. 지금은 신흥로 언덕길을 마을버스가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해방촌의 언덕길은 커다란 시내버스가 다니기에는 좁은데다 구불구불한 경사길의 연속이네요.

그런데 만약 고지대인 해방촌에 마을버스가 다니지 않았더라면 주민들은 언덕길을 걸어 내려와 시내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가야 했을 겁니다. 일을 마치면 다시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야 했을 것이고요.

지난주에 이야기한 ‘후암동 108계단’도 신흥로 초입에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경성호국신사와 연결하는 계단으로 만들었지요. 지금은 계단 길 중앙에 승강기가 있어 걸어서 오르내리지 않아도 됩니다. 

2018년에 설치된 승강기는 마을 사람들만 이용하지는 않습니다. 후암동과 해방촌을 찾은 관광객들도 이용하고 있습니다.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면 후암동 등 용산 일대를 내려다 볼 수 있으니까요. 수십 년간 해방촌에서 살았다는 한 주민은 계단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 풍경이 계속 달라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해방촌의 모습도요. 

해방촌의 연립주택. 상업시설로 리모델링 중이다. 사진= 강대호

해방촌은 힙한 장소가 많다고 소문난 동네입니다. 해방촌의 중심 도로인 신흥로 곳곳에 관광객들이 찾는 가게들이 있습니다. 특히 해방촌오거리 주변에 몰려 있습니다. 오거리에는 전통시장도 있어 해방촌의 중심가라 할 수 있지요. 

해방촌의 가게들은 주택을 개조해 개성 넘치는 분위기를 자랑하는 곳이 많습니다. 지금도 해방촌 골목 곳곳에는 주택의 기본 골격을 그대로 두고 가게로 개조하는 곳이 꽤 보였습니다.

해방촌이 뜬 이유는 이태원이나 경리단길과 가까우면서 독자적 문화를 보여주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더불어 남산을 올려다보거나 도심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가게들 덕분이기도 합니다. 

해방촌오거리에서 신흥로 끝자락까지 내려가면 옹기 가게가 나옵니다. 담장을 따라 옹기가 줄지어 늘어서 있지요. 많은 미디어가 소개해 유명해진 곳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관광지로서 해방촌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지 한 장소가 아닐까요.

녹사평대로 쪽 해방촌 입구의 옹기 가게. 사진= 강대호

옹기 가게에서 녹사평대로를 건너면 국군재정관리단이 나옵니다. 그 앞길인 ‘회나무로’는 ‘경리단길’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리단길은 서울 용산의 ‘국군재정관리단’ 앞을 지나는 도로를 말합니다. 경리단은 국군재정관리단의 옛 이름이지요. 회나무로, 즉 경리단길은 녹사평대로의 국군재정관리단 초입부터 그랜드하얏트서울호텔 입구까지 약 900m의 언덕길을 말합니다. 

미군 기지 이전 후 명소된 경리단길

경리단길 인근 주택가는 이태원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으로 외국인들이 모여 살게 되었고, 2000년대부터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권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후 미군 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하고 경리단 특유의 독특한 개성을 자랑하는 문화가 피어났습니다. 그렇게 2010년대부터는 한국인들도 즐겨 찾는 명소가 되기 시작했지요.

사실 경리단길에 가려면 조금은 불편합니다. 지하철을 타면 녹사평역에서 내려 제법 걸어야 하고 시내버스를 타면 큰길 초입에서 내려 언덕길을 올라가야 합니다. 승용차를 이용하더라도 좁은 언덕길을 달려야 하는 데다 주차 공간도 제한적이지요. 

경리단길의 카페와 레스토랑. 사진= 강대호

그런 면에서 경리단길은 상권으로서는 좋은 입지가 아니었습니다. 이태원 상권의 임대료가 비싸지면서 옮겨간 위성 상권이었지요. 그런데도 경리단길에 찾아가는 손님들이 많았던 이유는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과 콘텐츠를 가진 가게들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게 경리단길은 핫한 곳, 혹은 힙한 곳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과거 기사들을 찾아보면 2012년경부터 뜨기 시작해 2015년과 2016년경에 절정을 이룬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경리단길은 다른 지역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ㅇ리단길’이라는 거리 명칭의 원조가 되었으니까요. 서울만 하더라도, 마포구 망원동 ‘망리단길’, 송파구 석촌호수 인근 ‘송리단길’, 용산구 신용산역 인근 ‘용리단길’이 유명합니다. 

범위를 전국으로 확대하면 검색으로 확인되는 지역만 수십 곳이 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만큼 경리단길이 우리나라 골목 상권에 끼친 영향이 큽니다. 그런데 정작 경리단길은 예전 같지 않은 분위기입니다. 

경리단길은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표적 사례가 되었습니다. 2018년을 기점으로 쇠락하기 시작한 거죠. 경리단길의 정체성을 만든 이국적이고 독특한 가게들은 폭등한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다른 지역으로 떠났는데 특히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시대가 경리단길 상권에 강한 타격을 입혔다고 합니다.

경리단길은 원래 이태원의 배후 상권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런 경리단길에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자 그 풍선 효과로 해방촌 상권이 뜨게 되었습니다. 이들 지역이 뜬 이유를 다양하게 분석하기도 하지만 도시의 공간이 원래의 목적에서 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인 건 사실입니다. 주거 공간이었던 해방촌과 경리단길 일대가 문화 공간으로 변신했으니까요. 

다음 글에서는 우리나라가 도시 중심 사회로 변화하며 달라진 추석 풍경에 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녹사평대로 쪽 경리단길 입구. 사진=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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