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 이야기]㊵터널 덕에 다시 이어진 창덕궁과 종묘, 서순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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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서울 이야기]㊵터널 덕에 다시 이어진 창덕궁과 종묘, 서순라길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10.01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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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명절 뉴스에는 서울의 고궁 풍경이 자주 나옵니다. 한복을 차려입은 어린이들이 궁궐에서 민속놀이를 즐기는 모습은 명절을 상징하는 정경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올 추석 연휴 만약 서울이나 근교에 머문다면 궁궐을 걸어보는 건 어떨까요. 

마침 문화재청은 추석을 맞이해 궁궐과 종묘, 그리고 왕릉을 무료로 개방한다고 합니다. 이달 3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행사는 평소 예약제로 운영되는 종묘를 예약 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오늘은 종묘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종묘는 조선 왕조 역대 왕과 왕후, 그리고 사후에 추존된 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신 사당입니다. 조선시대의 가장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 중 하나라는 평가를 얻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종묘, 정제되고 장엄한 조선의 건축물 

서울 강북 도심을 자주 다니시는 분들은 안국동과 창덕궁 앞을 지나는 도로인 율곡로를 아실 겁니다. 창덕궁을 지나자마자 터널이 나오는 것도요. 그 지점은 원래 하늘이 열린 도로였지만 지금은 율곡터널이 자리하고 있지요. 

그런데 약 90년 전만 하더라도 율곡터널 자리는 그냥 막혀 있던 곳이었습니다. 조선시대부터 종묘와 창덕궁은 한데 이어져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1932년 조선총독부는 종묘와 창덕궁 사이를 허물고 길을 내 버렸습니다. 그리고 창경원으로 격하시킨 창경궁까지 전차 궤도를 연결했습니다. 경성 도심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지요.

사실 조선총독부가 종묘와 창덕궁 사이를 허물고 길을 내려는 계획은 일제강점기 초기부터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로와 전차 궤도를 놓기 위해 종묘를 훼손하는 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왕가와 양반 후손들은 종묘가 신성한 곳이라며 크게 반대했는데요, 조선총독부도 처음에는 이들의 의견에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다수 식민지 백성들은 교통의 편리함을 들어 찬성했고요. 당시 분위기를 과거 기사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1922년 9월 21일 동아일보 ‘종묘 존엄을 훼손할가 하야 리왕뎐하께옵서 크게 진념’ 기사와 1928년 6월 17일 동아일보 ‘여러 해를 두고 결말이 안나, 북간선신작로문제’ 같은 기사 제목들만 봐도 종묘를 허무는 도로 공사 때문에 오랜 갈등을 겪었던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기사 제목에서 ‘리왕뎐하’는 이왕 전하, 즉 순종을, ‘북간선신작로’는 종묘를 관통하는 도로를 의미합니다.

원남동 사거리에서 바라본 율곡터널. 율곡터널은 2022년 4월에 개통됐다. 터널 덕분에 종묘와 창덕궁이 이어졌다. 사진= 강대호

이러한 종묘 관통선 부설 과정에서 생겨난 갈등은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 염복규 교수의 저서 '서울의 기원 경성의 탄생'에 자세히 설명돼 있습니다. 염 교수가 인용한 당시 총독부 기록을 보면 식민지를 지배하면서도 도시개발로 인한 갈등이 벌어지자 전전긍긍하는 조선총독부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도시개발의 어려움을 잘 느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창경궁 옆 동네인 지금의 동숭동과 명륜동은 종묘와 창덕궁 사이를 뚫는 공사를 하기 전에는 외진 동네였습니다. 광화문 앞에서 이곳으로 가려면 종로의 대로를 거쳐 지금의 원남동으로 멀리 돌아서 가야만 했지요. 

종묘와 창덕궁 사이를 허물고 들어선 율곡로는 몇 년 전 도로를 지붕으로 덮어 터널을 만드는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2022년 4월에 개통된 율곡터널은 90년간 단절됐던 종묘와 창덕궁을 다시 이어지게 했습니다. 한편 율곡터널은 종묘 옆으로 난 순라길과 연결됩니다.

종묘 서쪽의 서순라길. 돌담길이 창덕궁 앞 율곡로까지 이어진다. 사진= 강대호

덕수궁 못지 않은 돌담길, 서순라길

돌담길, 하면 어디가 떠오르나요? 시청 앞 덕수궁 돌담길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지 않을까요? 그런데 종묘 옆 서순라길도 덕수궁 못지않은 멋진 돌담길입니다. 오히려 고즈넉하고 조용해 잠시 생각에 잠겨 걷기 좋은 길입니다.

서순라길은 종묘의 서쪽 담장을 끼고 이어진 길을 말합니다. 조선시대에 종묘에는 종묘와 주변 지역을 순찰하는 ‘순라청’이 있었는데 길 이름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서순라길은 종묘 서쪽 순라길이라는 뜻이고, 동순라길은 종묘 동쪽 순라길을 일컫지요.

서순라길은 종묘 정문을 바라보고 왼쪽 담장 쪽으로 잠시만 걸으면 나옵니다. 그렇게 서순라길에 들어서면 오른편으로 종묘 담장이 창덕궁 앞 율곡로까지 쭉 이어집니다. 담장 너머로는 온갖 나무들이 솟아올라 철 따라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볼 수 있지요. 

담장 바로 옆 1차선 일방통행로에는 차량이 가끔 지나다니지만, 토요일과 일요일 서순라길에는 차가 다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걷기 좋은 길입니다. 

보행로에는 널찍한 돌이 깔렸습니다. 도돌도돌한 돌 표면에 신발 바닥이 닿는 촉감이 딱딱하지만 도심의 보도블록을 밟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각으로 다가옵니다. 담장 너머로 나무들이 보이고, 길게 이어진 돌담길도 보이고, 두 발로는 돌을 밟기 때문인지 마치 숲에서 산책한다는 착각을 하게도 만듭니다.

보행로 왼편에는 예쁜 카페와 식당들이 줄지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불법 주차한 차량과 점포들에서 내놓은 물건들이 많았었는데 서울시에서 도로를 정비해 말끔해졌습니다.

서순라길 풍경. 사진= 강대호

서순라길에는 카페와 식당뿐 아니라 주얼리 공방과 주얼리샵 등 귀금속 관련 업체들도 많이 있습니다. 서울주얼리지원센터 자료에 따르면 종로구에 약 3천여 주얼리 업체가 있고, 종사자는 7500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특히 종로3가 일대에 몰려 있다고 하네요.

서순라길 주변에는 골목이 많습니다. 그 골목들에는 한옥들이 들어섰고요. 서순라길과 가까운 익선동에는 100년 전쯤 ‘건축왕 정세권’이 지은 개량한옥이 많은데 아마도 서순라길 골목의 한옥들도 그즈음에 지어진 개량한옥으로 보입니다. 

서순라길이 지나는 종로구 권농동과 봉익동은 조선시대에 궁궐에 채소를 공급하는 관청과 밭이 있던 동네였고, 내관과 무수리처럼 궁궐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살던 동네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종묘에 인접한 동네라 1962년에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재개발은 커녕 집수리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권농동과 봉익동 일대는 낙후해졌습니다. 서울시는 도시 정비를 위해 1993년에 종묘 담장 앞 토지를 도로부지로 수용했고, 1995년에 지금의 서순라길을 만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종묘 서쪽 담장 인근의 한옥들은 대거 철거되었지요. 

혹시 창덕궁 서쪽 길인 ‘창덕궁길’을 걸어보신 적 있나요? 그렇다면 창덕궁 서쪽 담장 바로 옆으로 건축물들이 늘어선 광경을 보셨을 겁니다. 창덕궁 담장을 마치 제집 담장처럼 사용하고 있는 건축물도 있고 창덕궁을 후원처럼 누리는 건축물도 있습니다. 

부동산 정보 사이트에서 이들 건축물의 지번을 검색하면 사용승인일이 기록되지 않은 건축물을 꽤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런지 연유를 추적하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종묘 서쪽 담장에 붙은 건축물들은 철거했는데 창덕궁 서쪽 담장에 붙은 건축물들은 왜 무사한지 궁금해지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긴 추석 연휴 어쩌면 몸이 무거워질 수 있는 기간입니다. 서울이나 근교에 있다면 고궁과 그 주변을 걸어보는 것도 일상을 대비하는 방법일 듯합니다. 다음 주에는 종묘와 창덕궁을 갈라지게 만든 이유 중 하나인 노면전차에 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서순라길 인근 골목의 한옥들. 사진=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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