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 이야기]㊻ 만초천, 독립문에서 원효대교까지 흘렀던 숨겨진 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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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서울 이야기]㊻ 만초천, 독립문에서 원효대교까지 흘렀던 숨겨진 하천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11.12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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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만초천은 복개된 하천입니다. 지금은 물길 대신 콘크리트로 만든 박스, 하수 암거가 깔려 있습니다. 사실 지난 글 여러 편에서 만초천이 등장했었습니다. 가락동농수산물시장과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그리고 용산에 관한 글에서요. 다만 간단하게만 언급했었기 때문에 기회가 닿으면 만초천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만초천(蔓草川)은 길이 7.7km, 유역 면적 12.37㎢의 하천입니다. 독립문 인근 안산(鞍山)에서 발원해 영천시장, 적십자병원, 서소문아파트를 지나고, 서울역 뒤편 서부역에서 방향을 튼 다음 청파로를 따라 흐르다가, 용산 전자상가를 거쳐 원효대교 북단 아래에서 한강과 합류하는 하천이었습니다. 

조선 후기 인문지리서인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攷)> 등 문헌에 따르면 만초천이라는 이름은 하천에 만초(蔓草)라는 풀이 많이 자라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넝쿨내’, ‘너추내’, 혹은 ‘만천(蔓川)’으로 불렀다고도 합니다. 고려 말의 ‘목은 이색(李穡)’은 만초천에서 밤에 불을 밝히고 게 잡는 풍경을 ‘용산팔경(龍山八景)’ 중 하나로 꼽았고요. 

평화롭던 만초천의 일상은 100여 년 전부터 바뀌게 됩니다. 만초천은 한강과 연결된 하천이라 한강 수위가 올라가면 서울 도심까지 영향을 끼쳤지요. 그래서 1915년에 만초천 일대에 제방을 쌓았습니다. 그런데 1925년의 대홍수, 일명 ‘을축년 대홍수’로 숭례문 일대까지 한강 물이 밀려들자 만초천을 직강화(直江化)하고 제방도 더 높이 쌓게 됩니다. 

만초천의 직강화는 치수 사업이기도 했지만, 일제의 한반도 지배, 그리고 대륙 침탈과 연계된 것이기도 했습니다. 서울역과 용산역의 철도 주변으로 만초천이 굽이굽이 흘러서 시설 확장에 방해가 되었던 거죠. 

당시 자료를 보면 만초천의 물길이 철길 서쪽인 청파동과 철길 동쪽인 갈월동을 오가며 흘렀던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직강화 공사 후에는 지금의 청파로, 즉 철길 서쪽을 따라 흐르는 하천이 되었고요.

1966년 청파동 서계동 일대 만초천 복개 공사. 사진제공=서울역사아카이브

도시의 문제를 덮었던 복개천

해방 후 만초천 주변에는 도시 빈민이 모여 살았고 전쟁이 끝나면서는 난민까지 모여들었습니다. 만초천뿐 아니라 다른 하천 유역과 구릉지도 가난한 이들의 주거지가 되었지요. 특히 서울의 하천들은 직강화 과정에 생겨난 국가 소유의 공유지, 평소에 관리하지 않는 유휴지가 많아 무허가 주택들이 들어서기 쉬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무허가 주택이 늘어나자 만초천으로 생활오수와 폐수가 흘러들었습니다. 이는 만초천뿐 아니라 서울의 다른 하천 유역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서울시는 하천 복개, 즉 덮어버리는 것으로 그 문제를 덮었고요. 하천을 덮으면 수질 오염을 숨길 수도 있고 도로 등으로 활용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만초천도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전 구간이 단계적으로 복개되었습니다. 

안산에서 발원한 만초천은 독립문 앞 영천시장을 지나갑니다. 1961년 서울시는 영천시장 안을 관통하는 만초천 상류 500m를 복개했습니다. 그러니까 현재 영천시장 중앙 통로 아래에 만초천이 지나는 거죠. 독립문 방향의 시장 입구에 복개 흔적, 만초천과 연결되는 사각형 덮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천시장을 지나온 만초천은 통일로를 건너 ‘돈의문 뉴타운’ 방향으로 흐릅니다. 거기서 서대문사거리 인근 적십자병원을 지나 이화여고 방향으로 향합니다. 만초천은 통일로 안쪽의 이면도로가 되었는데 도로 모양이 그 흔적입니다. 직선인 통일로와 달리 구불구불 휘었습니다. 만초천이 흐르는 지형을 따라 도로를 덮은 것이지요. 

만약 도로에 커다란 사각형 덮개가 있거나 도로가 주변 도로와 어울리지 않게 휘어진다면 그 아래에 하천이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하천을 복개할 때 출입구를 만들고 하천 모양을 따라 도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서소문 아파트. 만초천 하천부지에 지은 아파트다. 보도에 만초천과 연결되는 덮개가 있다. 사진=강대호

이화여고 방향에서 통일로를 건너면 다소 특이한 모양의 건물이 나옵니다. 타원 모양의 이 건물은 1970년도에 건축된 서소문아파트입니다. 이 아파트 소유주들은 토지세 대신 하천 점용료를 냅니다. 이 아파트가 대지가 아닌 하천, 즉 만초천 위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소 휘어진 모양으로 지었고 아파트 앞 보도에는 만초천과 연결되는 덮개가 있습니다.

만초천은 서소문아파트에서 바로 옆 철길을 관통해 서소문공원을 지납니다. 이곳은 조선 말 천주교인들을 처형한 장소였고 일제강점기에는 중앙도매시장이 들어서기도 했습니다. 서소문공원을 지난 만초천은 서울역 뒤편 서부역 쪽으로 방향을 틉니다. 거기서 만초천은 청파로를 따라 쭉 흐릅니다. 

청파로 철로 변 굴뚝. 만초천의 가스를 배출하기 위한 굴뚝이라고 한다. 사진=강대호

오래전 청파동 근방 만초천에는 배다리가 있었습니다. 한양 도성에서 한강으로 가려면 가장 먼저 건너야 하는 다리였습니다. 당시 흔적은 지금 표지석으로만 남아있지요. ‘갈월동 지하차도’ 옆에는 굴뚝이 하나 솟아있습니다. 주민들에 따르면 복개한 만초천의 가스를 배출하기 위한 굴뚝이라고 합니다. 

갈월동 지하차도에서 남쪽으로 수십 미터를 가면 굴다리가 하나 나옵니다. 만초천이 직강화되기 전의 흔적입니다. 철길 아래로 서쪽 청파동과 동쪽 갈월동을 오가며 흘렀던 과거 물길의 흔적이었지요. 하지만 직강화 공사로 물이 더는 흐르지 않자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이용하는 길이 되었습니다. 

일제는 만초천을 욱천(旭川)으로 불렀는데 그 흔적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청파로와 용산 전자상가를 잇는 고가도로의 이름이 ‘욱천고가도로’입니다. 이 고가도로 아래에 가면 만초천이 덮이지 않은 약 100여 미터 구간을 볼 수 있습니다. 복개천 내부가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는 구간이기도 하지요. 

용산 전자상가 입구의 만초천이 복개되지 않은 구간. 만초천 위로 욱천 고가차도가 지난다. 사진=강대호

용산 전자상가도 흔적의 일부

용산 전자상가도 만초천 복개의 흔적입니다. 영천시장부터 욱천고가도로 인근까지 서울시가 복개를 맡았고 지금의 용산 전자상가 일대는 민간이 맡아 1968년부터 1972년까지 공사를 단계적으로 진행했습니다. 공사 대가로 참여한 사업자들에게 10년간 시장 운영권을 주었습니다. 그 자리에 들어선 게 나진시장 등 사설 도매시장입니다. 나중에 중림동의 중앙도매시장도 이전해 와서 용산시장이 되었습니다. 

용산의 시장 터는 1985년경 용산전자상가로 변신했습니다. 나진시장은 나진상가로 용산시장은 용산전자랜드가 되었지요. 용산시장은 1985년 가락동으로 이전해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이 되었고요.

독립문 즈음에서 흘러와 용산전자상가를 관통한 만초천은 원효대교 북단에서 한강과 만납니다. 그런데 이곳에 가면 만초천이 뿜어내는 물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서울의 복개 하천에 흐르는 물은 거의 생활하수와 합쳐져 하수처리장으로 보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개 하천 대부분은 끝나는 지점이 거의 건천화되어 있습니다. 

만초천도 마찬가지입니다. 원효대교 북단 아래에서 그 안, 시멘트로 조성한 하수 터널을 바라보면 마치 영화 속 괴물이 사는 것처럼 거대하고 깊어 보입니다. 이곳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의 배경이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서울에는 만초천처럼 복개된 하천이 많습니다. 그곳들은 대개 도로가 되어 있습니다. 대학로나 삼청로, 혹은 연남동 맛집이 몰려 있는 동교로도 원래 하천이었습니다. 혹시 도로에서 커다란 네모 덮개가 보인다면 그 아래에 하천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원효대교 북단. 만초천이 한강과 만나는 지점이다. 사진=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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