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 이야기]㊴ 도시의 추석 풍경 어떻게 바뀌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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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서울 이야기]㊴ 도시의 추석 풍경 어떻게 바뀌었나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9.2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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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올 추석은 무척 풍성한 한가위가 될 듯합니다. 대체 휴일까지 있어서 예년보다 긴 연휴로 보내게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고속도로와 공항이 무척 바빠질 듯 보입니다. 고향을 가는 이도 많겠지만 국내외로 여행을 떠나는 이도 많을 거라는 관측입니다.

도시화는 명절을 이동의 시기로 만들었습니다. 명절이면 도시인들이 자석에 이끌리듯 그들이 떠나온 고향으로 향했으니까요. 세월이 흘러도 명절이 다가오면 이동하는 정서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세태는 달라지고 있습니다. 

전쟁터와 같은 귀성 차표 예매 현장

명절 귀성 티켓을 구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요? 오늘날에는 빠른 손놀림이 필요합니다. 기차의 경우 추석 연휴 승차권 예매는 100% 온라인으로 진행되니까요. 일부 잔여분만 현장에서 판매하고요. 그래서 ‘대국민 티케팅’이라 불릴 정도로 불꽃 튀는 경쟁이 펼쳐지곤 합니다. 

과거에는 발 빠른 사람이 유리했습니다. 몸싸움을 잘하는 사람도요. 귀성 차표를 구하려면 치열한 줄서기 경쟁을 뚫어야 했으니까요. 게다가 정해진 날짜에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에 가서 차표를 직접 예매해야 했습니다. 보통 명절을 며칠 앞두고 3일 정도만 예매 기간으로 정했기 때문에 북새통이 벌어지곤 했지요. 

1977년 추석 귀성 인파가 몰린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사진=국가기록원

과거 기사를 검색하면 명절 즈음 서울역이나 용산역 광장, 혹은 강남고속버스터미널 광장의 예매 창구를 다룬 기사들이 많습니다. 인파로 붐비는 사진은 기본이고요. 앞줄에 서기 위해 새벽에 나오거나 밤을 지새우는 귀성객도, 심지어는 표를 구하기 위해 결근하는 사람까지 있다는 기사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시민들에게 귀성 차표 구하는 건 전쟁이나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표를 구하기 어려우니 암표상이 들끓을 수밖에요. 1982년 9월 23일 ‘경향신문’의 한 기사는 2620원짜리 논산행 고속버스 차표를 5000 원에 구매한 어느 시민을 인터뷰했습니다. 그는 “암표상들의 매점 행위 때문에 차표가 일찍 매진”됐다며 분노를 표했지요.

암표상을 다룬 기사들은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꾸준히 나옵니다. 그 후 암표상은 어떻게 됐을까요? 온라인 예매가 자리 잡으면서 사그라드는 모습이었지만 오늘날에도 암표상이 변형된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합니다.

구로공단 등 산업공단 차원에서 노동자들에게 명절 귀향 버스를 제공하는 기사도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해마다 눈에 띕니다. 노동자들에게 편의 제공을 위한 것이지만 혹시 다른 공장으로 옮길까 봐 단속하는 목적도 있었지요. 만약 고향에서 친구를 데려오면 상금을 주면서 노동자 확보의 기회로 삼기도 했다네요. 

1972년 서울역 추석 귀성 차표 예매 창구. 사진=국가기록원

특권층을 위한 특별한 예매

시민들은 귀성 차표를 구하기 어려웠는지 몰라도 특권층들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1955년 9월 29일 경향신문은 추석을 앞둔 서울역 풍경을 다뤘습니다. 기사는 가족 수행원들을 이끌고 귀향하는 국회의원들을 접대하느라 서울역장이 골머리를 앓고 차표까지 요구받는 고충을 전했지요. 

전쟁 후 아직은 어수선한데다 권위적인 시기라 높으신 양반의 요구가 당연한 권리로 여길 수 있겠으나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후에도 특권이 통하는 관행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1978년 10월 11일 동아일보의 ‘선량들의 귀성 차표 성화에 골치 아픈 서울역’ 기사는 특권층의 오랜 관행을 지적합니다. 추석 연휴 즈음 서울역장실이 열차표를 청탁하는 전화와 방문객 때문에 홍역을 치렀다는 내용이지요. 

심지어는 열차 출발 30분 전에 전화를 걸어 이미 매진된 차표를 구해내라는 어느 국회의원 때문에 이미 다른 시민에게 판매된 예매표를 취소해 자리를 마련해 준 사례도 있었다고 하네요.

정부는 이런 관행을 지켜보기만 했을까요? 1980년 9월, 추석을 앞두고 교통부는 ‘특별예매행위’를 부조리로 단속하겠다고 발표합니다. 

이 소식을 다룬 기사들을 보면 ‘예매 전 예매’, 즉 특별 예매행위가 가능했던 악습을 지적합니다. 청와대와 각 부처, 국회의원, 검찰, 경찰, 그리고 언론기관까지 귀성 차표를 부탁했었다고 합니다. 

특히 1980년 9월 14일 조선일보의 ‘귀성열차 부탁 사라져’ 기사에는 철도청의 준비성 있는 비서진들이 미리 차표를 확보해 권력층의 부탁에 대비하는 일이 공공연하게 벌어졌었다는 관행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 이후에 ‘특별예매행위’가 근절됐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1970년 가두에서 진행된 콜레라 접종. 사진=국가기록원

예방접종을 해야 차표를 구할 수 있다?

1970년 추석에는 콜레라 예방접종을 해야 차표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1970년 9월 14일 보건사회부는 추석 귀성객들이 콜레라 예방접종 카드가 없으면 차표를 판매하지 말거나 예방접종을 실시한 후 판매하라고 관계 기관에 지시했습니다.

1960년대에 우리나라는 콜레라가 만연했습니다. 오염된 물 때문에 발생하고 퍼지기 때문에 생활 여건이 열악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취약했지요. 특히 1969년에 콜레라가 전국적으로 창궐해 1500여 명이 감염됐고 137명이 사망했습니다. 1970년에도 아직 그 여파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몰리는 역과 터미널을 통제하려 한 것이지요.

그런데 1980년 추석 즈음에도 콜레라가 유행했습니다. 주로 영남과 호남에 퍼졌었는데 두 지역 모두 귀성 인파가 많은 곳이었지요. 그래서 귀성객들에게 예방접종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강구되었고 전국의 모든 역과 터미널에는 검역소가 설치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콜레라 소식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1991년과 1995년에도 추석 즈음 콜레라가 발생해 추석 경기가 영향받았다는 기사를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코로나19 시국과 겹쳐 보이지 않나요? 감염병 확산을 위해 이동을 자제해야 했고 접종 이력이 있어야 공공시설에 입장할 수 있었던 모습에서 코로나19가 창궐했던 당시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로 미루어 보면 우리나라 정부는 감염병 대처에 관한 경험을 오래전부터 쌓아온 듯합니다. 시민들도 그런 경험치가 몸에 배어있었던 것 같고요.

올해도 추석연휴를 이용해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이들이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연합뉴스

갈수록 연휴의 의미 더 커져

귀성 풍경 중 가장 많이 달라진 건 아마도 차표 예매일 겁니다. 온라인과 모바일로 가능해진 지 오래라 역이나 터미널에 가서 줄을 서야 하는 불편은 사라졌으니까요. 대신 신속한 클릭이 필요해 디지털 기기 작동을 잘하는 사람에게 유리해진 면이 있습니다. 기차표의 경우 온라인 판매 잔여분을 현장에서 판매하는 날이면 노인 등 디지털 약자들로 역이 붐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종 암표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온라인 중고 판매 플랫폼에 기차표를 넘긴다는 광고가 올라오곤 하니까요. 웃돈을 받거나 아니면 구매자에게 가격을 제시하라고 하지만 이는 엄연히 암표이고 불법입니다. 관계 당국에서 실시간으로 모니터 중이라고 하네요. 

오늘날 명절은 명절이라기보다는 연휴의 의미가 더 큰듯합니다. 특히 올해는 더욱 길어진 연휴로 휴가처럼 느껴진다는 분위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국내외로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많을 것으로 보이는데 코로나19 시국으로 갇혀 있었던 것에 대한 보상심리는 아닐까요. 

어떤 모습으로 명절과 연휴를 보내든 한가위는 가족의 존재에 감사하고 사랑을 나누는 명절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 가치일 겁니다. 모두 풍성한 한가위 보내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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