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 이야기]㉗ 가난한 외지인에게 터전을 내주었던 망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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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서울 이야기]㉗ 가난한 외지인에게 터전을 내주었던 망원동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7.0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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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망원동은 망리단길과 망원시장으로 유명합니다.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들어선 골목길과 다양한 먹거리를 구할 수 있는 전통시장은 많은 사람의 발길을 이끄는 명소이지요. 아마도 망리단길과 망원시장에는 망원동에 살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이 돌아다닐 겁니다.

그런데 이런 유명한 곳들과 조금은 떨어져 있는 망원동의 주택가를 걸어본 적 있나요? 바둑판처럼 반듯한 골목들 사이에 들어선 주택가는 무척 깊고 조용합니다. 망원동 주택가는 지은 지 오래된 단독주택이나 빌라 혹은 연립주택이 많지만, 구획이 잘 정비된 전형적 주택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망원동은 한강은 물론 홍제천과 붙어 있는 데다 이들 하천으로 향하는 크고 작은 물길이 흐르는 저지대 습지였습니다. 이런 자연환경을 가진 망원동은 농경지가 많은 부분을 차지했었지요. 과거 항공사진으로 그때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거지가 아니라 농경지였던 망원동

1947년에 촬영한 항공사진을 보면 망원동 일대는 (해상도가 낮아서) 자연부락의 모습을 확인하기 어렵지만, 넓게 들어선 농경지의 모습은 뚜렷하게 보입니다. 1969년 항공사진에 일부 주거지가 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망원동은 농경지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듯 서울 외곽의 농촌이었던 망원동은 언제부터 주택가로 바뀌었을까요? 

망원동은 지난 글에서 이야기한 ‘서교지구 택지구획정리사업’ 구역에 일부 지역이 속했었고, 나머지 일부는 ‘성산지구 택지구획정리사업’ 구역에 속했었습니다. 그러니까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중반에 주택가로 구획이 정비되며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1972년 망원동 일대 항공사진. 홍제천 변과 한강 변의 하천부지와 망원동 외곽 사이에 제방이 있다. 망원유수지도 보인다. 제방 위에는 주거 공간으로 보이는 건축물들이 들어섰다. 화살표가 제방 위 둑방동네, 노란 원이 있는 구역은 망원유수지. 사진제공=서울시항공사진서비스. 국토지리정보원

그런데 주로 농경지였던 망원동에 외지인들이 들어와 살게 된 건 해방 무렵부터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고향을 떠나 서울에 정착하려는 난민이었지요. 한국전쟁 이후에는 더욱 늘어났다고 합니다. 1959년 5월 26일 조선일보에 실린 ‘난민 괴롭히는 서울시’라는 기사에 이들의 사연이 나옵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망원동과 성산동에 걸친 홍제천 변 약 6만여 평의 하천부지에는 약 300세대가 모여 사는 천막촌인 ‘재민농원’이 있었습니다. 이곳 주민들은 해방 이후부터 당국과 교섭해 임대차 계약까지 체결한 후 하천부지를 개간해 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유지인 망원동의 기존 농경지와 국유지인 하천부지 사이에 터를 잡은 그들은 당국의 허락 혹은 묵인하에 하천부지에다 경작지를 일구었던 거죠. 

그런데 이들이 일군 생활 터전을 서울시 측에서 다른 난민들에게 나눠주라고 지시하게 됩니다. 위 기사의 제목에서 “난민 괴롭히는”이라는 표현이 나오게 된 이유입니다.

1959년 5월 31일 조선일보의 ‘장충동 바라크 철거’ 기사에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 서울시는 장충단공원에 들어선 (무허가주택인) 바라크 주택 190여 동을 철거하고는 그 철거민들을 망원동에 소재한 ‘신촌재민농장’(정황상 위 기사에서 언급한 ‘재민농원’)으로 이주시킵니다. 

기존 주민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장충동 철거민들은 망원동에 무사히 정착한 걸로 보입니다. 1960년대에 들어서 서울시가 난민들을 위해 ‘난민 주택’ 150호를 망원동의 폐천 부지에 건축했다는 기사들을 볼 수 있는데 장충동 철거민 중 일부가 난민 주택에 입주했다는 소식도 알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기사들에서 사용한 단어 ‘난민’은 철거민, 이재민, 실향민 등을 통틀어 일컫는 걸로 보입니다. 이렇듯 망원동이 대단위 주택가로 개발되기 전에는 서울 도심에서 밀려난 이들이 터 닦고 사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망원동에서 자리 잡기 시작한 난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에 관한 자세한 자료를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과거 항공사진으로 1970년대 망원동의 분위기를 엿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1972년 항공사진을 보면 망원동 외곽의 홍제천 변과 한강 변에 쌓은 제방이 보입니다. 망원유수지도 보이고요. 그런데 이 제방 위로 주거 공간처럼 보이는 건축물들도 함께 보입니다. 거의 제방 전체가 마을을 이룬 모습입니다. 일명 ‘둑방동네’이지요. 

망원2동 주택가. 멀리 보이는 방벽은 홍제천 변의 제방이다. 사진=강대호

국유지인 제방 위에 들어선 둑방동네

주인이 있는 사유지에는 함부로 집을 지을 수 없으니 상대적으로 관리가 소홀한 국유지인 제방 위에 한두 채 짓기 시작하다 아예 제방 전체로 마을을 이루게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당시 신문 기사들을 보면 1972년의 망원동 수해 때 제방 위 주거 공간이 큰 피해를 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972년 수해 이후에는 서울시가 망원동 일대의 제방을 정비하면서 제방 위에 들어선 무허가주택들을 대거 철거했다는 기사도 볼 수도 있습니다. 1973년 이후의 항공사진을 보면 제방 위 주거 공간이 사라지는 걸 확인할 수 있지요.

현재 망원동의 홍제천 변 주택가에는 높은 방벽이 있습니다. 제방입니다. 홍제천 변은 물론 한강 변의 망원동에도 제방이 있지요. 그렇게 제방을 따라서 양화대교 방향으로 가다 보면 망원정지(望遠亭址)가 나옵니다. 

강변북로 옆 제방 위에 자리한 망원정지(望遠亭址). 망원동이란 지명은 망원정에서 유래했다. 사진=강대호

망원정(望遠亭)은 망원동(望遠洞) 이름의 유래입니다. 망원정은 양화나루 서쪽, 지금의 양화대교 서쪽 한강 변에 있었던 정자로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이 1424년(세종 6년)에 지은 별장이었지요. 가뭄이 든 1425년 농가의 형편을 살피던 세종이 이 정자에 들렀는데 마침 비가 내려 희우정(喜雨亭)이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합니다.

망원정이라는 이름은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으로 소유가 바뀐 후 고친 이름이지요. 망원정은 명사들이 찾아와 시를 짓는 명소였고,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25년의 을축년 대홍수로 자취가 사라졌습니다. 지금의 망원정 건축물은 1989년 10월에 복원된 것입니다. 그래서 망원정지, 즉 망원정 터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정자 바깥에 망원정이라는 현판을, 내부에 희우정이라는 현판을 달았지요.

강북 강변도로 옆에 자리한 망원정지에 오르면 한강이 보이고 합정동 주택가와 멀리 망원동 일대도 보입니다. 사실 망원정지가 있는 곳은 망원동이 아니라 합정동입니다. 

합정동(合井洞)도 유래가 오래된 동네이지요. 옛날 이 마을에 ‘조개우물’로 불리는 우물이 있어서 ‘합정동(蛤井洞)’이라 했는데, 나중에 ‘합(蛤)’이 ‘합(合)’으로 바뀐 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양화진 외국인 묘역의 아기들 묘역. 사진=강대호

양화진에 있는 아기 묘역의 사연

합정동에는 양화진 외국인 묘역이 있습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등 유명한 외국인 선교사 묘지가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작은 묘비들이 모여있는 아기 묘역도 함께 있지요. 

아기 묘역에는 1940년대부터 1970년대에 걸쳐 한 살 전에 죽은 외국인 아기들 묘소 39기가 모여 있습니다. 간혹 이름이 있는 아기 묘도 있지만 대부분 ‘Baker infant’ 등 이름을 지을 새도 없이 죽은 아기들이 묻혔습니다. 

외국인 묘역에 간혹 산책 나온다는 한 합정동 주민은 “아기들 묘역에서 발걸음을 멈추곤 한다”고 했습니다. 아기들의 사연은 알 수 없지만, 이역만리에 아기를 묻은 부모들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면서요. 

난민들에게 터전을 허락한 망원동과 외국인들에게 영면할 장소를 내준 합정동은 이방인들에게 곁을 내준 따뜻한 기운을 간직한 동네인 듯합니다.

다음 주에는 장충동 철거민들이 망원동으로 이주하기 전에 바라크 주택을 짓고 살았던 ‘장충단’에 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

망원시장 내부. 망리단길과 더불어 망원동의 명소다. 사진=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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