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이야기]⑬ 한강다리 건설 이전에 운송을 맡았던 나루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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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서울이야기]⑬ 한강다리 건설 이전에 운송을 맡았던 나루터들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3.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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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강남대로에서 ‘나루터로’ 표지판을 본 적 있나요?

언젠가 저는 신사동 사거리에서 ‘나루터로’라고 쓰인 표지판을 보고는 멈칫한 적이 있습니다. 표지판은 잠원동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지요. 그러다 문득 신사동과 잠원동에 나루터가 있었던 게 떠올랐습니다. 한남대교가 연결되기 전까지는요. 

한남대교뿐 아니라 한강에 교량이 놓인 곳은 예전에 나루터였습니다. 영동대교가 뚝섬 나루터, 광진교와 천호대교가 광진 나루터, 양화대교가 양화나루 즉 양화진이었지요. 한국 최초의 인도교인 한강대교도 용산과 노량진을 연결하는 노들나루가 있던 곳입니다. 

그런데 한국전쟁 때 한강 인도교가 폭파되자 한강대교 인근에 나루터가 다시 열린 걸로 보입니다. 전쟁 후 일부만 복구된 인도교의 도강 기능을 나눠야 했으니까요. 

신사동 사거리. 잠원동 방향의 도로 이름이 ‘나루터로’다. 사진=강대호

나루터, 강남북을 오가는 교통의 요지

조선일보 1957년 10월의 ‘한강이 교통지옥을 이루고 있다’는 기사에 그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이 기사는 임시방편으로 복구한 한강 인도교를 철근과 콘크리트로 제대로 수리하기 위해 차량과 사람의 통행을 막고 공사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한강 입구까지만 버스를 운행했기 때문에 강을 건너려는 사람들은 철도를 이용하거나 배를 타야 했지요. 

한강 인도교 재건 소식을 다룬 이 기사는 나룻배 50여 척이 모여든 상황과 평소보다 비싼 운임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교통지옥을 이룰 정도로 한강 연안이 복잡했던 건 인도교 근처에서 영업하던 놀이 배와 한강의 다른 나루터의 배들이 대목을 쫓아 모여든 때문으로 보이네요.

조선일보 1957년 10월 3일자 기사. 한강 인도교 보수 공사 때문에 사람들은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하는 소식을 다뤘다. 출처= 조선일보.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예나 지금이나 봄이 오면 교외로 소풍을 나갔나 봅니다. 1960년대의 신문들도 오늘날의 언론 매체처럼 그 계절에 맞는 소풍지를 추천하곤 했지요. 경향신문 1964년 3월의 한 기사는 서울 시민에게 강 건너 봉은사 소풍을 권하며 뚝섬 나루터 이용 방법을 자세히 소개합니다.

기사에 따르면 뚝섬 나루터는 서울 강북 도심과 한강 남쪽 서울을 연결하는 '길목'이었습니다. 강 건너 청담동, 삼성동, 대치동 등의 농촌 마을에서 재배한 채소들이 서울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곳이었지요. 

뚝섬 나루터는 한강을 건너는 두 노선이 있었습니다. '청담동 백사장' 코스와 삼성동 봉은사 코스. 청담동 백사장은 청수골 나루터를 말하는 걸로 보이는데요 한때 지하철 압구정로데오역의 이름을 청수나루역으로 정할 뻔한 적 있습니다. 기사에서 '서울 근교의 소풍지'라 소개한 봉은사는 따로 노선이 있을 정도로 승객이 많았었나 보네요. 

이 기사를 통해 당시 나룻배의 형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폭 5미터 길이 12미터의 뗏목을 뒤에서 모터보트가 미는 방식이었지요. 사람은 물론 차량도 탑승했고 때로는 가축도 태웠다고 하네요. 하지만 제대로 된 난간이 없어 승객들은 스스로 안전에 유의해야 했을 겁니다.

나룻배는 강 위를 오가는 운송 수단이라 사고가 나면 인명 피해가 컸습니다. ‘한강’과 ‘나룻배’를 키워드로 검색하면 가장 많이 보이는 기사가 바로 사고 소식이지요. 무사히 구조되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사고 기사들은 대부분 익사로 이어지는 안타까운 소식이었습니다. 

끊이지 않았던 안전사고

특히 1962년 9월 7일경 신문들을 보면 한남동 나루터에서 120여 명을 태우고 시흥군 잠실리, 지금의 잠원동으로 출발한 탄 배가 침몰해 일부 승객만 구조된 소식을 알립니다. 그런데 당시 기사들을 참고하면 목격자들은 100명 넘게 승선했다 증언하지만, 경찰은 50명 정도로 추산합니다. 

그래서인지 신문마다 구조자, 사망자, 실종자 숫자가 다 다릅니다. 당시 여러 날의 기사들을 종합해도 정확한 규모를 알아내기는 어려웠지요. 한강 유역에서는 해마다 나룻배 사고가 있었지만 이렇게 큰 규모로 벌어진 사고는 처음이었습니다. 서울시는 사고 수습을 위해 한남동 나루터를 폐쇄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나루터로 영향이 미치게 되었지요.

이 소식을 조선일보가 1962년 9월 14일에 ‘대혼잡 이룬 나루터’라는 기사에서 다룹니다. 한남동 나루터가 폐쇄된 여파로 추석 당일 오전에만 5000 명이 넘는 성묘 인파가 한남동 인근의 서빙고 나루터로 몰렸다는 소식이지요. 한편, 이 기사에는 지금으로서는 흥미로운 점이 담기기도 했습니다. 

우선 강남의 개포동에 서울시립 공동묘지가 있었던 사실을 알려줍니다. 성묘객들이 만약 나룻배를 이용하지 못한다면 한강교를 건너 흑석동과 동작동을 멀리 돌아서 가야 하거나 광진교를 이용해 천호동과 경기도 광주를 거쳐 멀리 돌아갈 수밖에 없었지요. 이는 한강에 교량이 생기기 전에는 나룻배가 중요한 교통수단이었음을 알려주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사고가 벌어진 1962년에 한강 이남의 강남땅은 아직 경기도에 속했었습니다. 1963년 1월 1일부로 서울에 편입됐거든요. 하지만 그 후로도 한동안 강남은 서울의 낙도로 불렸습니다. 

경향신문은 1969년 8월 무렵 서울의 나루터를 연재로 다룹니다. ‘근대화 속의 낙도’라는 취지에서요. 특히 비만 오면 고립되는 잠원동과 주민들의 상황을 심층 취재했습니다.

이 기사는 8월 어느 날의 잠원동 나루터를 묘사합니다. 새벽 5시 무렵부터 서울로 가는 학생과 직장인들로 붐빈다고요. 긴 장마로 불어난 강물 때문에 한 달 가까이 폐쇄된 나루터가 처음으로 열린 날이었지요. 

잠원동 나루터는 잠원동은 물론 반포동과 신사동 주민들이 서울에 갈 때 주로 이용하는 곳이었습니다. 만약 나룻배를 이용하지 못한다면 동작동까지 걸어가서 한강대교를 건너는 버스를 타야 했지요. 기사에 따르면 매일 강을 건너야 하는 학생과 직장인 등은 1000 명이 넘는다는데 이들은 한강이 불어나면 고립된 섬처럼 지낼 수밖에 없다고 하네요.

1970년대 초 한남대교 일대. 한강 변 잠원동에 자연부락이 보이고, 그 주변으로는 농지가 있다. 멀리 압구정동 방면의 한강 변에 백사장이 보인다. 한남대교와 경부고속도로가 들어섰지만 강남은 아직 개발 전이었다. 사진=서울역사아카이브

이 기사에는 당시 건설 중이던 한남대교의 공사 진척 상황을 언급하기도 합니다. 그해 말에, 그러니까 1969년 말에 완공된다고요. 한남대교가 뚫리면 이들의 고생도 끝이 나겠지요? 

신사동 사거리에서 ‘나루터로’ 표지판을 본 후 저는 날을 잡아 잠원동 일대와 한강공원 곳곳을 뒤져보았습니다. 혹시 나루터 흔적이 남아있을까 해서요. 하지만 못 찾았습니다. 다만 표석 두 개만 확인했지요.

잠원동 아파트단지에서 한강공원으로 나가면 출구 바로 앞에 ‘잠원 나루터’ 표석이, 한남대교 남단 아래에 ‘새말 나루터’ 표석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강남구와 서초구가 되었지만, 예전에 신사동 쪽은 경기도 광주군에, 잠원동 쪽은 시흥군에 속했었지요. 가까운 지역이지만 나루터를 따로 운영했던 여러 이유 중 하나입니다. 

한강의 수상버스, 현실화될까

그런데 혹시, 서울 한강에 수상 버스가 도입될까요?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3일 한강에 리버버스, 즉 유람선이 아닌 수상 교통수단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거든요. 오시장이 영국 런던의 템스강에서 리버버스를 탑승해 본 후 나온 발언이지요. 

사실 그동안 한강에 수상 택시 등과 같은 수상 대중교통 수단을 도입하겠다는 발상은 여러 번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타당성 부족으로 흐지부지되었지요. 한강의 선착장과 주변의 주요 지역과의 연결성이 부족한 점 등이 꼽혔습니다. 한편으로는 정치인의 발언이 의지로 실현될는지, 그래서 타당성의 벽까지 넘게 될는지 궁금하긴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한강에 교량이 생긴 영향을 직접 몸으로 맞닥뜨린 뱃사공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

새말 나루터 표석. 새말은 신사동 지명의 어원이 되었다. 한남대교 남단 아래에 있는 표석이다. 사진=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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