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이야기]⑫ 난립하던 고속버스터미널이 반포로 통합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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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서울이야기]⑫ 난립하던 고속버스터미널이 반포로 통합된 사연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3.19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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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항공사진은 강남 개발 과정을 시각적으로 이해시켜줍니다. 개발 전과 이후를 비교하면 말이죠. 특히 반포동 고속버스터미널 인근은 매우 극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농촌이 터미널과 아파트촌으로 변신했으니까요. 

한강변 저지대에 자리한 농촌 마을 반포동에 닥친 변화는 어떻게 시작된 일일까요? 그 발단은 고속도로 건설과 그로 인한 고속버스의 탄생이었습니다.

1970년대 초 서울에는 고속버스터미널이 난립했습니다. 회사마다 다른 터미널을 운영했으니까요. 그래서 정부는 통합된 고속버스터미널을 구상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곳이 터미널 후보지로 검토되었지요.

지금의 서소문역사공원 자리도 그중 한 곳입니다. 일제 강점기부터 도매시장으로 운영된 장소였지요. 도매시장 이전이 결정된 1971년 서울시는 이곳을 향후 고속버스터미널로 개발하기 위해 우선 공원용지로 묶어둡니다. 한동안 그렇게 물밑 논의만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던 1975년 서울시는 전문가들에게 통합 터미널 건설을 위한 연구용역을 의뢰합니다. 전문가들은 서울역 인근과 영등포, 그리고 영동 지구 등 세 곳에 고속버스터미널을 설치해 도심 교통량을 분산하자는 의견을 제시하고요. 이 보고서에서 당시 개발이 진행되던 영동 지구 외곽의 반포동을 후보지 중 한 곳으로 꼽았다고 합니다.

1977년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일대 항공사진. 사진 왼쪽 위에 한강 변 모래사장과 제방도로, 지금의 올림픽 도로가 보인다. 터미널 주변으로 농지와 자연 부락, 공동묘지를 여전히 볼 수 있다. 빨간 원이 고속버스터미널, 노란 원이 경부고속도로. 사진 제공=서울시항공사진서비스. 국토지리정보원

그 이유가 단순한데요. 반포동은 논과 밭이 대부분이라 주거 지역과 비교해 땅값이 저렴하니까 수만 평의 터미널 부지를 확보하기 쉬울 거라는 이유였다네요. 그런데 고속버스터미널을 여러 곳에 만들어 교통량을 분산하자는 전문가들의 의견과 박정희 대통령의 생각은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강북 인구 분산'이란 정책 목표가 컸다

서울시 고위공무원이었던 손정목의 회고록에 따르면 대통령은 서울 강북 인구의 강남 분산을 강력하게 지시했다고 합니다. 고속버스터미널 건설이 지방 인구를 서울로 유입시키는 결과가 아니라 강북 인구를 강남으로 분산시키는 효과로 나타나야 한다고요. 

그러니까 터미널을 여러 곳에 만드는 건 지방 인구의 서울 유입을 초래할 뿐이고, 개발 중인 영동 지구에 터미널과 같은 편의시설을 많이 지어 강북 인구가 강남으로 이전하는 결과를 불러와야 한다고 강조한 거죠.

결국 고속버스터미널은 반포동 한 곳에만 건설하는 걸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고속버스터미널 건설 등 강북 인구의 강남 유입 방안은 대통령 관심 사항이 되어버렸지요. 명문 고등학교의 강남 이전은 물론 강북의 유흥업 규제도 그 연장선이었습니다. 1970년대 말에 신사동 일대가 유흥가로, 강남역 일대가 모텔촌으로 뜨게 된 이유이죠.

1976년에 준공된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사진 제공=서울역사아카이브

한편, 1975년 6월 27일 서울시는 영동 지구 반포동에 고속버스터미널을 건설한다고 발표합니다. 이때 서울시는 반포동 지주들의 땅과 서울시 다른 지역의 체비지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터미널 부지 5만평을 확보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큰 비용 부담하지 않고 지가가 크게 오르게 될 땅을 얻게 된 거죠.

당시 서울시는 영동 개발을 위해 경부고속도로 주변의 영동1지구와 압구정, 신사, 논현, 역삼 등의 영동2지구로 구분해 토지구획정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터미널 이전 발표 후 서울시는 반포동의 터미널 부지 5만평을 영동1지구에 포함해 일사천리로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터미널 공사는 1976년 4월 8일에 시작했고 약 5개월 후인 9월 1일에 1차로 준공하게 됩니다. 초기 시설은 고속버스터미널이라기엔 열악했다고 합니다. 승차장 3개와 300평 크기의 정비 시설이 다였다네요. 게다가 야외시설 위주라 승객을 위한 편의시설은 없다시피 했다고 합니다. 

열악한 시설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나 봅니다. 터미널 준공 후 1년 6개월여가 지난 1978년 4월경에 '콩나물 대기' '고달픈 승하차'와 같은 논조로 불편한 터미널 이용 현실을 지적하는 기사가 나올 정도니까요.

그런데 강남에 고속버스터미널이 생긴 이후에도 고속버스회사들은 강북에 있던 기존 터미널을 계속 사용했습니다. 강북의 터미널에서 승객을 먼저 태우고 강남의 터미널은 고속도로에 들어가기 전에 들르는 중간 정류장 정도로 활용한 지요.

그래서 반포동 터미널이 준공된 후인 1976년 12월에 강남으로 이사한 저도 동대문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탄 기억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으로 올라가던 겨울방학인 1977년 1월에 대구에서 열린 친척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역삼동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동대문으로 가서 고속버스를 탔던 거지요. 

과거 신문을 검색하면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준공 초기에 벌어진 혼란을 다룬 기사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강남에서 표를 구매한 승객이 있었지만 강북에서 출발한 버스가 강남에 정차하지 않았다거나, 강남 출발 버스에 승객이 적다며 고속도로 입구에서 하차시키고는 강북에서 출발한 자사의 다른 고속버스에 태우는 일도 벌어졌다고 하네요. 

1977년 4월 8일 경향신문 기사. 고속버스 회사들의 횡포를 다루고 있다. 사진 제공=경향신문.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이 모든 소동은 강남의 고속버스터미널을 이용하는 승객이 적어서 생긴 일이었지요. 그래서 고속버스회사들은 불만을 표출하게 됩니다. 1976년 11월경 전국버스사업조합 명의로 고속버스터미널의 강남 이전 계획을 보류해달라고 관계 당국에 건의한 겁니다.

그 사유로 강남 쪽 승객이 적고, 편의시설이 열악해 암표상이 들끓고, 강남의 고속버스터미널 연결도로에 교통 체증이 많다는 것 등을 내세우지요.

'고속버스 면허 취소'까지 경고하기도

하지만 담당 부처인 교통부는 1977년 4월에 특단의 조처를 내립니다. 1977년 6월까지 강북 터미널을 폐쇄하고 강남의 고속버스터미널에서만 출발과 도착할 것을 강제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거지요. 이행하지 않으면 고속버스 면허를 취소하겠다고 경고까지 했습니다.

결국, 고속버스회사들은 단거리 노선만 제외하고 강남터미널에서 출발과 도착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반포동 터미널의 편의시설을 보완하기 위해 고속버스회사들이 출자해 정식 터미널 건물을 짓게 되었지요. 그렇게 들어선 건물이 1981년 10월에 준공된 지하 1층과 지상 11층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입니다.

한편, 고속버스회사들에 도심 터미널 폐쇄를 명령한 교통부는 아예 쐐기를 박습니다. 1977년 4월 강북 도심에 산재한 6개의 고속버스터미널 자리를 주차 전용 지역으로 묶는다고 발표한 거죠. 그러니까 강북의 기존 터미널 부지를 빌딩 건축 등 다른 용도로 개발하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겁니다. 

만약 옛 터미널 부지에 건물이 들어서거나 다른 시설로 만들어지면 또다시 인구 집중의 요인이 돼 터미널을 강남으로 옮기는 목적에 어긋난다고 봤던 거죠. 도심 터미널들은 원래 도시계획법상 자동차 정류장으로 인가받았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도심 터미널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주차장 전용 지역이 되었을까요? 후속 조치에 관한 자료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다만 옛 도심 터미널 자리 중 현재 여러 곳에 건물이 들어선 건 확인할 수 있네요. 동대문의 JW메리어트호텔이 그렇고, 서울역 건너편 한진빌딩, 벽산빌딩, 세브란스빌딩이 그렇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터미널 후보지였던 서소문역사공원을 공원용지로 묶어두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그곳에도 건물이 들어섰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요.

지난 두 번의 글에서 육지의 운송 수단을 다뤘으니 다음 글에서는 한때 서울에서 육상 운송 못지않게 중요했던 수상 운송 관련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전경. 사진=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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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3-03-20 09:48:46
재밌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