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이야기]⑯ 백사장을 고가의 아파트촌으로 만든 공유수면 매립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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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서울이야기]⑯ 백사장을 고가의 아파트촌으로 만든 공유수면 매립사업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4.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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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1960년대 말 서울시청 관계자들은 강변도로 건설을 일석이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방과 도로를 겸하게 되니까요. 그런데 새로운 땅도 생겨나 일석삼조가 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한강에 제방 공사를 하게 되면 기존의 하천부지였던 땅이 제내지(堤內地), 즉 둑 안에 있어 제방의 보호를 받는 땅이 되면서 새로운 토지가 생겨났습니다. 이렇게 생긴 땅을 매각하면 다시 제방을 쌓을 재원을 마련할 수 있었지요. 

서울시는 이런 재원을 기반으로 한강 연안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모래섬이었던 여의도는 제방도로인 윤중제 건설 덕분에 부도심으로 발전하는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여의도 개발사업은 이후 한강 변을 매립해 택지를 조성하는 이른바 공유수면 매립사업의 본격적인 출발점이기도 했지요.

여의도 개발은 공유수면 매립사업의 출발점

공유수면매립법에 따르면 ‘공유수면’은 '하천, 바다, 호소 기타 공공의 용도에 사용되는 수류 또는 수면으로서 국가의 소유에 속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법률은 공유수면의 이용과 매립에 법적 근거와 특례를 주기 위해 1962년 1월에 제정되었습니다. 

공유수면매립법은 또한 공유수면을 매립하여 효율적으로 이용하게 함으로써 공공의 이익을 증진하고 국민경제의 발전에 기여하려는 목적도 있었지요. 그래서 공유수면 매립공사로 생긴 택지를 매각한 자금은 공익이라는 취지에 맞춰 다른 개발사업의 마중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권 사업이었기에 편법 혹은 특혜가 난무했다는 의혹이 생기기도 했지요.

1973년 용산 일대. 동부이촌동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 그리고 백사장과 제방도로가 보인다. 사진 제공=서울역사아카이브

소문뿐 아니라 증언도 있습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서울시 고위 공무원으로 각종 개발사업에 관여한 손정목이 ‘정치자금 모금 창구’로 이용된 공유수면 매립사업의 구체적 사례를 저서에서 밝힌 거죠. 

손정목의 기록에 따르면 1969년 김학렬 부총리가 5대 건설 회사 대표들에게 이권 사업을 제안하며 정치자금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건설 회사 대표들은 그 제의를 받아들이고 정치자금도 헌납했고요. 그 시절 개발사업과 정치자금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일화이지요. 이들 회사가 참여한 공사가 바로 잠실섬 육속화 공사와 잠실 택지개발사업이었습니다.

공유수면 매립공사는 건설 회사로서는 참여만 할 수 있다면 큰 수익이 보장되는 사업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기록을 보면 주요 공사는 건설업 비수기인 겨울철에, 그것도 놀고 있던 중장비와 노동력을 이용해 진행했다고 하네요. 첫해 겨울에는 제방을 쌓고, 그다음 해에는 한강의 모래를 퍼부어 택지를 조성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땅장사나 분양 사업을 할 수도 있었지요.

건설 회사가 조성한 택지는 국영기업체나 정부 기관에서 일괄 매입했습니다. 혹은 건설 회사가 직접 아파트 단지를 조성해 일반에 분양했습니다. 이래저래 남는 장사였겠지요. 1960년대 말 한강 공유수면 매립사업 덕분에 대기업으로 성장한 건설 회사들이 많은 이유입니다. 그들이 공사한 대표적 지역이 이촌동, 반포동, 그리고 압구정동입니다.

한강 백사장이란 말 들어본 적 있나요? 용산의 한강 변 백사장은 1956년 5월 대통령 선거 때 30만명의 청중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고 합니다. 백사장이 지금의 동부이촌동 철길 부근에서 시작했다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지요. 

1968년부터 용산의 모래사장에 제방을 쌓고 그 안쪽 모래땅을 메워 택지로 만드는 공사가 시행되었습니다. 허가된 매립 면적은 10만 평이 조금 넘었고 1969년 6월에 공사를 마쳤습니다. 하지만 최종 매립 면적은 12만 1천여 평으로 계획보다 초과해 메웠지요.

시행사는 건설부 산하 기관인 수자원공사였고 매립 후 조성한 택지에는 공무원아파트단지, 한강맨션아파트단지, 외인아파트단지가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남는 땅마다 건설업자가 뛰어들어 아파트를 지어 일반에 분양했습니다. 그렇게 동부이촌동은 아파트촌이 되었지요. 

1977년 반포동. 일명 구반포로 불렸고 지금은 재건축이 진행 중이다. 사진 제공=서울역사아카이브

동부 이촌동·반포·압구정 아파트의 유래

한강 백사장 건너편인 지금의 반포동 일대에는 제방이 없었습니다. 1970년 2월 현대건설, 삼부토건, 대림산업 등 세 회사가 투자한 합자회사가 이 지역에 제방을 쌓고 택지를 조성하기 위한 공유수면 매립공사를 허가받았습니다. 공사는 1970년 7월에 착공했고 1972년 7월에 준공하게 됩니다. 

이때 총매립 면적 18만9천여 평 중 약 16만 평의 택지가 이들 건설 회사동에 귀속되었지요. 이 택지는 대한주택공사가 일괄 매입해 아파트를 건설했고 1974년부터 일반에 분양하게 됩니다. 약 오십 년 전에 분양된 일명 구반포아파트는 지금은 헐려 재건축이 진행 중입니다.

압구정동 한강 변 저지대는 현대건설이 제방을 쌓아 택지를 조성했습니다. 공유수면매립 면허는 1969년 2월에 취득했고 1972년 12월에 준공했지요. 총매립 면적은 4만 8천여 평이었고 이중 약 4만 평의 택지를 현대건설이 차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자료를 보면 현대건설은 면허 신청 당시에 공유수면매립 목적을 '건설공사용 각종 콘크리트 제품공장 건설을 위한 대지조성 및 강변도로 설치에 일익을 담당'하는 것으로 밝혔습니다. 그러니까 강변도로 포장용 레미콘 공장을 만들기 위해 공유수면매립 허가를 받은 거죠. 하지만 매립 목적이 어느 순간 택지 조성으로 변경되었다고 하네요. 

손정목은 박정희 대통령의 신뢰를 받는 정주영의 현대건설이 위세가 당당했음을 그의 저서에서 언급했습니다. 결국, 과수원으로 유명했던 압구정동은 현대아파트뿐 아니라 고가의 아파트촌으로 유명해지게 됩니다. 

한강 유역의 공유수면 매립공사는 서울의 주택난 해소에 어느 정도 도움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책적 배려 혹은 특혜가 작용했다는 지적도 있지요. 

압구정동 사례처럼 매립 허가 신청 명분이 원래의 목적이 아닌 예도 있었고, 이촌동 사례처럼 원래 계획보다 더 많은 부지를 매립한 예도 있었습니다. 원칙대로라면 두 사례 모두 원상 복구해야 함에도 흐지부지 넘어갔지요. 지금이라면 특혜나 공정 시비가 생겼을 중대한 사안 아니었을까요?

결과적으로 공유수면 매립공사는 건설 회사가 땅장사를 할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 혹은 특혜를 주었고, 정치자금 모금 창고로 이용되기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 후 수십 년, 한국에서 아파트는 승률 높은 재산 증식 수단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한강의 풍경을 바꿔 놓았지요.

한때 백사장이 있었고 저지대라 침수 피해가 잦았던 한강 양안의 강변에 지금은 고급 아파트 단지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그리고 재개발을 희망하는 노후 주거 공간들도 한강 유역에는 많습니다. 아마도 한강 양안의 변화는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

강 건너 흑석동에서 바라본 용산 일대. 사진=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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