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이야기]⑰ 홍제동 인왕산 자락의 개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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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서울이야기]⑰ 홍제동 인왕산 자락의 개미마을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4.23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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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2023년 봄은 당황스러운 소식이 많습니다. 벚꽃이 일찍 피고 진 것이 그렇고 산불이 잦은 것이 그렇습니다.

특히 지난 4월 2일 산불이 발생한 서울 인왕산은 주변에 아파트와 주택이 촘촘히 들어선 곳이 많아 만약 그곳으로 불이 번졌다면 큰 피해로 이어질 뻔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산불 진행 방향에 있던 홍제동 개미마을은 말 그대로 풍전등화 신세였습니다.

개미마을은 인왕산 자락의 한 동네 이름입니다. 홍제동을 잘 모르는 분들은 어쩌면 개미마을을 어느 아파트 단지에 붙은 친환경적인 이름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마을 이름을 개미로 붙인 데는 편견과 싸워야 했던 아픈 과거가 있습니다.

이 마을이 개미마을로 불리기 전에는 ‘인디언촌’이나 ‘인디언타운’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불렸을까요? 아마도 마을이 풍기던 분위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한때 '인디언타운'으로 불리게 된 사연

1960년대 인왕산 자락의 홍제동에는 도시빈민들의 주거 공간이 대거 들어섰습니다. 그들은 판잣집을 짓기도 했지만, 천막집을 짓기도 했지요. 사실 판잣집은 벽과 지붕 등 주택 형태를 띠고 있지만 천막은 그러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일제 강점기까지 유래가 올라가는 토막의 형태였지요.

일제시대의 도시 개발을 연구한 문헌에 따르면 ‘땅을 판 구덩이를 벽으로 삼고 지붕은 거적 등으로 가리는 원시 주택의 형태’를 토막이라 정의했습니다. 최소한의 집 구조를 가진 불량주택, 즉 판잣집과는 다르게 구분했지요. 

이렇게 천막을 치고 사는 모습에서 서부 영화에 등장하는 인디언 마을을, 그리고 수시로 벌어지던 철거에 항거하는 주민들의 모습에서 백인들에게 맞서던 인디언 전사들을 떠올렸나 봅니다. 그래서 인디언촌, 혹은 인디언타운으로 불리게 된 거겠지요.

인디언이 들어간 지명은 번듯한 자재를 사용해 건축한 주택이 아니라 판잣집과 천막집이 즐비한 이 동네를 비하한 표현이었습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1970년대와 80년대에 아파트로 개발되지 않은 강남의 전통 마을을 두고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민속촌’으로 부른 사례도 있습니다. 대치동 구마을이 대표적이지요. 민속촌 대신 쓴 구마을에도 편견이 담긴 듯하지만요.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 전경. 인왕산 둘레길 입구에 자리한다. 사진= 강대호

아무튼, 마을 주민들은 인디언타운이라는 이름을 맘에 들어 할 리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1980년대 서울시와 토지 불하 협상 과정에서 주민들이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는 주민들’이라는 의미의 ‘개미마을’로 이름 변경을 요구해 현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개미마을은 인왕산을 다녀본 이들은 한 번쯤 지났을 곳입니다. 인왕산 둘레길이 시작하는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마을버스가 닿습니다. 고지대에 사는 개미마을 주민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등산객들도 이용하지요.

오동나무 앞, 버드나무가게, 그리고 삼거리 연탄가게. 모두 개미마을로 가는 마을버스 정류장 이름입니다. 정류장 이름만 놓고 본다면 어느 지방의 마을을 떠올리게 하지 않나요? 그만큼 개미마을의 정체성, 혹은 마을 분위기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그런데 정류장 이름과 달리 도로 옆으로는 연탄 가게나 버드나무가게라고 쓰인 간판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동나무도 마찬가지이고요.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모두 오래전에 없어졌다고 하네요. 

그러고 보니 연탄 가게는 동네 어르신이 모이는 사랑방으로 변했고, 버드나무가게는 무슨 추진위원회 간판이 걸려 있었습니다. 오동나무 정류장 근처는 학교와 빌라가 들어섰고요.

고갯길을 올라간 개미마을 끝자락과 인왕산 둘레길 입구가 만나는 곳에는 마을버스 종점이 있습니다. 그곳에 공중화장실도 있습니다. 등산객을 위한 건가 했는데 마을 주민을 위한 화장실이었습니다. 개미마을의 많은 집에는 화장실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철거의 불안을 안고 살아야 했던 시절 화장실을 갖추고 살기는 힘들었을 거 같네요. 불량주택이 양성화되고 서울시 소유의 토지가 주민들에게 불하되던 1980년대와 90년대에 공중화장실을 마을 곳곳에 만들거나 개선했다고 합니다.

개미마을 주택들에 붙어 있는 주소 혹은 번호 체계도 이 마을의 정체성을 보여줍니다. 개미마을의 집들에는 건물번호와 관리번호가 붙어 있지요. 건물번호는 무허가 건물 확인원에 등재되는 번호이고, 관리번호는 개미마을 지역주택조합에서 관리하는 번호를 말합니다. 

개미마을 정상의 마을버스 종점. 마을 주민들을 위한 공중화장실이 있다. 사진= 강대호

이해 당사자가 많은 탓에 재개발도 쉽지 않아

그러니까 개미마을의 대지 중에는 서울시에서 불하받아 마을 주민 소유로 된 땅이 많지만, 그 위에 들어선 주택들은 아직 무허가인 상태로 있는 집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이해 당사자가 많은 만큼 지난 수십 년간 재개발의 바람이 불다 말다 그랬다고 하네요. 마을 곳곳에는 추진위원회 사무실 등 재개발과 관련한 여러 시도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고지대인 개미마을뿐 아니라 아파트가 들어선 홍제동의 저지대 또한 서민들이 터 닦고 살던 곳이었지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서울 도심에서 밀려 홍제동으로 온 이들은 처음에는 홍제천 주변과 인왕산 아래 계곡 주변, 즉 저지대에 터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온 이들은 빈 땅을 찾아 점차 산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니까 1960년대에는 개미마을뿐 아니라 산 아래 홍제동도 판자촌이었습니다.

하지만 1972년 남북공동성명 후 북한 대표단이 서울에 올 때 홍제동을 지나게 됐고, 도시 미관을 위해 도로 인근 저지대의 홍제동 판자촌은 철거됐지요. 도시 미관을 위해 토막민을 서울 도심 밖으로 몰아낸 조선총독부처럼 대한민국 정부에도 도시 빈민은 도시 미관을 해치는 존재였던 것 같네요. 

그때 철거된 구역은 학교 용지가 됐습니다. 오래도록 나대지로 남아있던 그 땅에 2009년 인왕중학교가 들어섰지요. 개미마을로 올라가는 입구입니다. 

저는 인왕산에 산불이 나기 바로 그 전 주에 개미마을을 통해 인왕산을 갔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산불 소식에 매우 놀랐지요. 혹시 강남의 구룡마을처럼 동네가 잿더미가 되는 건 아닐까 하고요. 다행히 인가 쪽으로는 산불이 번지지 않았으나 인왕산의 많은 수목이 불에 탔습니다. 

한편으로는 개미마을이 허름한 집들이 몰려 있는 서민 주거 공간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서울 도시 개발 역사의 한쪽을 담고 있는 동네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언젠가 사라질 수도 있는 곳이지만 주민 의지와 상관없이 산불이라는 천재지변으로 사라지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

삼거리 연탄가게가 있던 자리. 지금은 연탄 가게가 아니다. 사진=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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