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펭수, 유산슬, 카피추...‘멀티 페르소나’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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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펭수, 유산슬, 카피추...‘멀티 페르소나’ 전성시대
  • 권상희 문화평론가
  • 승인 2020.01.24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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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뉴스=권상희 문화평론가] 바야흐로 속는(?) 재미가 트렌드를 형성하는 시대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본캐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부캐가 더욱 부각되기 시작했다.

알아도 모르는 척, 아니 부캐는 어느새 잘 포장 된 ‘진실’이 돼 버렸다. 대중은 그것에 몰입하고 환호한다. 애써 그 포장을 벗겨내려 하지 않는다. 보이는 것이 진실이라고 믿으면 그 뿐이다.  

안 그래도 복잡한 세상, 살아가기도 힘든데 뭣 하러 탐정역할을 자처하는가. 때론 단순함이 삶을 즐겁게 해준다. 지속가능하다면 그저 그 가면이 벗겨지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웃음과 눈물, 거기다 이따금씩 덤으로 얻는 감동까지 계속해서 이어져야 한다. 그러고 보니 그 맛에 꽤 중독된 모양이다.

◆ 대중 사로잡는 매력적인 페르소나들

210cm, 11살, 우주 대스타를 꿈꾸며 남극에서 온 EBS 연습생 펭수. 랩과 비트박스, 요들송에 능하고 탁월한 댄스실력과 입담을 갖춰 일약 슈스(슈퍼스타)로 발돋움했다. 또래 아이다운 귀여움과 2030세대의 동년배 감성을 장착하고 어디서든 할 말 다하는 사이다 펭귄의 매력에 대중은 푹 빠져있다.

신기한 것은 펭수 탈 안에 누가 펭수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지 않다는 거다. 아니, 알게 되는 순간 엔돌핀 상승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는 펭수 중독증상이 끝나버릴 것 같아 왠지 불안하기만 하다. 펭수는 펭수다!

“합치면 정이 되는 합정인데~ 왜 우리는 갈라서야 하나” 습관처럼 흥얼거리는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의 인기곡 ‘합정역 5번 출구’다. 본캐인 개그맨 유재석도 받지 못한 예능 신인상을 받은 주인공이 바로 부캐 ‘유산슬’이다.

트레이닝 과정을 통해 신인 특유의 어설픔 벗어내고 반짝이 의상이 어울리는 트롯맨으로 환골탈태한 그의 모습에서 30년차 방송인 유재석은 오버랩 되지 않는다. “싹 다 갈아엎어 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유산슬의 또 다른 히트곡 ‘사랑의 재개발’ 가사다. 어쩌면 유재석을 싹 갈아엎고 나왔다는 중의적인 뜻이 담긴 노랫말 아닐까. ㅎㅎ

산골에서 노래하며 사는 50대, 욕심 없는 남자 ‘카피추’. 유병재의 유튜브 채널에 게스트로 초대돼 부른 곡들이 표절과 창작을 넘나들며 초대박을 터트린 자연인이다. 웃다가 눈물 날 지경이다. 

카피추가 뜨다보니 그의 과거 모습까지도 덩달아 재평가 되는 요즘이다. 그야말로 신나는 역주행이 이뤄지고 있다. ‘노래개그’로 주목받지 못하고 퇴출된 개그무대, 그는 보란 듯이 ‘노래개그’로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만약에 본캐 개그맨 ‘추대엽’으로 이를 계속해서 밀었다면 현재와 같은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까. 노래개그는 ‘카피추’라는 새롭게 창조된 캐릭터(가면)를 만나면서 업그레이드 돼 최상의 시너지를 내고 있다. 세월을 거슬러 인내의 쓴 열매 먹고 탄생한 카피추의 찐내공이 느껴진다. 

사진= '카피추' 유투브 채널 캡처
사진= '카피추' 유투브 채널 캡처

◆ 내가 원하는 ‘멀티 페르소나’는 어떤 모습

우리는 한결같을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5G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세상은 변하고 있고 ‘변화’를 강요하고 있다. 트렌드에 발맞춰야 하기에 이따금씩 꾸역꾸역 SNS를 하기도 하고, 남들보다 더 나은 나를 보란 듯이 전시하기도 한다.

예쁜 드레스 입고 화려한 무대에 서있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순간, 머리 질끈 묶어 올리고 트레이닝복 입은 쌩얼의 내가 거울에 비친다. 본능적으로 미간이 찌푸려진다. 둘 다 현실의 모습이거늘 유난히 SNS의 사진은 가면 같다. 

과거에 이중인격이니, 다중인격이니 하는 단어들은 곧잘 부정의 의미와 맞닿아 있었다. ‘지킬앤 하이드’나 영화 ‘싸이코’의 ‘노먼베이츠’같은 캐릭터가 연상되곤 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 삶은 매우 자연스럽게 ‘멀티 페르소나(Multi-persona)’를 향해 가고 있다. 회사 내에서의 나와 회사 밖에서의 내가 다르고, SNS상에서의 모습이 또 다르다. 그것을 인정하고 즐긴다.

어쩌면 펭수와 유산슬, 카피추에 대중이 열광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소망하는 다중적인 정체성이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유쾌하게 발현되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일종의 대리만족인 셈이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어쩔 수 없이 쓰게 되는 가면들 말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멀티 페르소나’를 창조해 보는 건 어떨까. 저들을 통한 대리만족으로도 기분 좋은데, 스스로가 원하는 또 다른 정체성을 만난다면 행복 만렙, 진정 세상 살맛나지 않을까. 

 

●권상희는 영화와 트렌드, 미디어 등 문화 전반의 흐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글을 통해 특유의 통찰력을 발휘하며 세상과 소통하길 바라는 문화평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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