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아카데미 핵인싸 된 봉준호 감독과 영화 ‘기생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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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아카데미 핵인싸 된 봉준호 감독과 영화 ‘기생충’
  • 권상희 문화평론가
  • 승인 2020.02.11 0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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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뉴스=권상희 문화평론가] 손에 땀이 난다. 긴장감으로 어깨가 뻐근해져 온다.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우리 일이 되니 잘 쓰지 않았던 근육까지 제멋대로 작동하는 것 같다.

들숨 날숨을 반복하다가 드디어, 와!!! 

외마디 감탄사를 토해냈다. 그것도 네 번이나 계속해서.

언빌리버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처음 느껴보는 생경함이 이토록 감격스러울 줄이야, 그가 우리의 기대를 차고 넘치게 채워줬다. 

마침내 봉준호 감독이, 한국 영화 ‘기생충’이 해냈다. 그 어려운 걸 말이지.

◆ 오스카의 넘사벽 넘어선 ‘기생충’

이맘때면 으레 남의 집 잔칫날 구경하는 구경꾼에 불과했다. 잘 차려진 잔칫상이지만 함께 즐길 엄두가 나지 않았던 그들만의 리그. 아카데미 후보 리스트에 오르기만 해도 바랄게 없었던 우리의 욕망은 때로 그저 실현 불가능한 이상향을 향해 달려가는 느낌이었다. 

한 해의 몇 작품씩이나 하늘이 선물로 줘야 가능하다는 천만 관객을 기록하며 영화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국민이건만 '오스카(Oscar)'라는 리그는 우리에게 가능성이라는 미래와 접근 불가능한 현실 사이의 접점을 찾기 힘든 어떤 것이었다. 여전히 넘기 힘든 벽이 존재함을 깨달아야만 하는 그곳에서 희망은 희망고문으로 변하기도 했다. 

다수의 유럽 영화제에서 간간이 수상 소식이 들려왔지만 여전히 아시아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은 세계 영화계에서 수준 높은 변방, 안타깝게도 ‘아웃사이더’였다. 종종 유럽에서 작품성과 예술성은 인정받아 왔지만 현대 영화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할리우드를 매혹시킬 만한 대중성은 없었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들과 다른 인종과 언어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태생적인 한계 같은 것이었다. 

아카데미는 오랜 세월 백인 남성과 영미문화권에만 관대했던 게 사실이다. 세계인의 영화축제라는 허울 좋은 포장 안에는 인종차별, 여성차별이라는 떼어내야 할 오명까지 함께 있었다. 

그런 보수적인 곳에서 봉준호 감독은 한국인으로 ‘최초 4관왕’(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감독상, 작품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아시아 최초의 각본상 수상’과 ‘비영어권 영화 최초의 작품상 수상’은 오스카의 오랜 시간 형성된 언어와 인종의 장벽을 단번에 허물어 버린 일대 사건이라 할 만하다. 

영화 ‘기생충’은 101년 한국 영화 역사를 새롭게 쓴 동시에 닫혀있던 아카데미를 완전히 열린 아카데미로 변화시키며 92년 오스카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드디어 수준 높은 인싸, 단번에 세계 영화계에 ‘핵인싸’가 된 것이다. 

봉준호 감독.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봉준호 감독. 사진=로이터/연합뉴스

◆ 냉소적 시선으로 세계를 열광케 하다

‘기생충’은 서늘하다. 영화를 보는 동안 체온이 내려가는 듯 섬뜩함이 느껴진다. 잿빛 현실을 스크린에서 또 한 번 마주하는 건 참으로 가혹한 일이다. 그럼에도 시선을 뗄 수가 없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대결은 일시적인 전복을 불러오는 듯 보이지만 피바람이 불어도 결코 전복되지 않는다. 가난한 자들끼리의 대결은 무의미하다. 어차피 계급사회는 변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다는 반지하 삶은 더 깊은 지하 벙커로 이동되며 온전히 세상과 차단된다. 스크린에 투사된 현실에 동정이란 있을 수 없다. 영화에도, 이를 지켜보는 관객에게도 냉소적인 시선만이 가득하다. 체념해야 한다. 

웃음, 눈물, 감동의 흔한 카타르시스 대신 ‘기생충’은 불편함, 불쾌함이라는 새로운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관객은 이를 거부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칸에 이어 오스카가 공감한 ‘기생충’만의 특별한 매력이다. 결코 보편적이지 않은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으로 느껴지는 아픈 시대에 '봉테일'만의 사회비판적 메시지가 전 세계 영화계를 열광케 했다.

작은 소품에서부터 남루함의 끝판왕이라고 할 만한 한국적인 것들이 한데 버무려져 아카데미의 최고 영화라고 인정받은 날, 뭔가 아이러니한 느낌이다. 하지만 지금 희망 없는 현실은 논하지 말자. 그래도 기분 좋은 건 대한민국 영화가 오스카를 변화시키며 또 다른 ‘희망’을 쏘아 올리지 않았는가. 

우리는 그저 당분간 ‘기생충’의 현실이 아닌 영화 ‘기생충’이 가져다 준 영광을 맘껏 즐기면 된다.

 

●권상희는 영화와 트렌드, 미디어 등 문화 전반의 흐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글을 통해 특유의 통찰력을 발휘하며 세상과 소통하길 바라는 문화평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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