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원 칼럼] 기업 밸류업, 정부 정책만큼이나 기업의 변화가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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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칼럼] 기업 밸류업, 정부 정책만큼이나 기업의 변화가 중요
  • 최석원 이코노미스트·SK증권 경영고문
  • 승인 2024.02.27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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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이코노미스트·SK증권 경영고문]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 방안이 26일 발표됐다. 지난 1월 대통령과 금융위원회가 프로그램의 도입을 예고한 지 한달 만에 조금 더 구체적 내용을 포함한 계획 전반이 공개된 셈이다.

다시 6월 중 최종안을 확정하기로 하며 밝혀 조금 김이 빠지긴 했지만, 하반기부터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되고 실시되기 시작하면 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본적으로 이번 밸류업 방안의 축은 주주가치 제고,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 수요기반 확충인데, 지난 1월에 예고했던 일반주주의 이익 보호와 국제적 정합성의 제고, 마지막으로 불공정 거래에 대한 대응 강화라는 큰 방향성을 조금 더 구체화한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 지배구조 개편 등 기업들이 노력할 부분에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투자자들에게는 해당 노력에 앞장서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을 구분할 수 있는 장치를 제공하는 방안들이 마련될 것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번 발표에서 정부는 기업의 자발적인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매우 중시하는 모습이다. 당연한 일인데, 정책 당국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게임의 룰을 만드는 것이고 결국 기업들이 스스로 가치 제고 노력을 하지 않으면 증시에서 적절한 시장가치를 인정받지 못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번에 정부가 이러한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은 그 동안 기업들 스스로 적절한 시장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해 왔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업의 시장 가치 제고 노력이 미흡했던 이유

그런데 이 대목에서 일반 투자자들은 궁금한 점이 있을 것이다. 왜 그 동안 기업이 스스로 적절한 시장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을까? 뉴스에서 보면 많은 대기업 집단의 총수들이 계열사 대표이사들에게 기업가치 제고를 주문해 왔고, 심지어 경영자의 핵심성과지표(KPI)에 주가 상승률 또는 시가총액 증가율 등을 포함시키는 기업들도 있지 않았던가? 

여러 이유가 영향을 미쳐 왔을 것이다. 하지만, 크게 보면 우리나라 기업들의 지배구조, 더 넓게는 거버넌스에서 중요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익히 알려진 대로 우리나라의 많은 대기업 집단에서는 작은 지분율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대주주가 경영에서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러한 대주주 겸 경영자는 충분하지 않은 지분율에도 불구하고 자의적인 이사회 구성과 운영, 가급적 일반주주를 배체하는 방식의 주주 총회 등을 통해 자신의 권한을 강화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이 과정에서 일반주주가 생각하는 시장가치 증대는 의사결정의 우선 순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사외이사의 역할을 강화한다거나, 공시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이사회 의결을 결과를 보면 거의 대부분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의 이해에 맞춰져 운영되었다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22년 5월부터 2023년 4월까지 1년간 자산규모 5조원 이상인 73개 공시 대상 기업집단의 소속 상장회사 이사회 안건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안건의 99.3%가 원안대로 가결됐다.

경영진은 효율적 진행을 위해 사전 설명과 동의를 받는 것이 관례이고 이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 주장하지만, 그 과정에서 개별 이사가 안건의 전체 방향을 바꿨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회의적일 수 밖에 없는 주장이다.

이러한 상황은 대주주 겸 경영자와 일반주주의 이해 관계가 상충되는 경우가 생겼을 때 이사회의 결정이 거의 한 방향으로 정해질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주주환원과 관련해서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보다는 이익의 사내 유보와 자사주의 활용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나, 지배구조 개편에 있어 기업의 본질적 경쟁력 강화보다는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한 방안을 선택하게 되는 것 등은 모두 이 같은 여건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금융위원회는 1월 31일 일반주주의 이익 보호를 위한  인적분할 후 분할된 기업의 대주주 지배력을 높이는 이른바 ‘자사주 마법’을 없애는 방향으로의 제도 개선 방안을 예고한 바 있다. 이는 물적분할에서 나타났던 모기업 일반주주의 소외라는 부작용에 이어, 대안으로 여겨졌던 인적분할 역시 자사주를 통한 대주주의 분할회사 지배력 강화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여전히 기업은 ‘주주’의 입장보다 ‘대주주’의 입장을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6일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1차 세미나'에서 축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주주 아닌 주주의 입장을 중시해야

결국 정부의 정책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기업의 변화다. 적어도 정부는 이제 과거와 달리 조금 더 확실하게 기업들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듯 하다. 그 배경이 우리 증시의 가치 정상화라는 교과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일지, 아니면 1400만명으로 늘어난 개인 주식투자자들의 마음을 잡기 위한 것일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바람직한 방향의 변화다.

하지만 기업이 실질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이러한 대책은 장기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지 못 할 것이다. 과거 박근혜 정부 당시 기업들의 주주환원을 강화하는 방향의 정책 도입 이후 실제 환원율은 올라갔지만 그 폭은 미미했고, 소폭이지만 높아진 주주환원율 하에서도 우리 증시의 저평가 정도는 그 당시보다 개선되지 못했다. 2월 26일 발표 이후, 기대로 올랐던 저 PBR. 업종의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진 것 역시 같은 불신이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이번 대책 마련을 전후해서 일부 기업들의 주주환원률 제고 방안이 마련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리고 이 같은 변화가 여타 거버넌스 개선 측면에서도 나타날 경우 우리 증시의 가치는 생각보다 많이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익의 30%에도 못 미치는 현재의 낮은 주주환원율과 90%에 달하는 미국 주요 기업들의 주주환원율을 감안하면 오히려 우리 시장에서 개선 가능성은 매우 높은 편이다. 정부가 도입하려는 기업 거버넌스 판단에 도움이 되는 지표들 역시 투자자들의 선택을 통해 정상적 가치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결국 핵심은 대주주와 경영진의 변화다. 기업 거버넌스의 개선이 이어지며 정부와 투자자의 바람대로 증시가 제 가치를 찾아가길 기대한다.

 

● 연세대 경제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다. 대우증권 삼성증권 한화증권 등에서 채권분석, 경제분석 파트장을 역임했으며 과거 수차례에 걸쳐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됐다. 한화증권에서 리서치센터장을 거친 후 메리츠화재에서 직접 자산운용을 맡기도 했다. 이후 SK증권에서 리서치센터장, 지식서비스 부문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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