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원 칼럼] 가계부채 부담 줄었지만 고정금리 대출 비중 더 높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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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칼럼] 가계부채 부담 줄었지만 고정금리 대출 비중 더 높아져야
  • 최석원 이코노미스트·SK증권 경영고문
  • 승인 2024.03.1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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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이코노미스트·SK증권 경영고문] 오랜 기간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평가되던 가계 부채 문제가 조금씩 완화되는 모습이다.

언론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의 작년 가계부채 증가율은 연간 0.7%에 그쳤는데, 이는 실질성장률보다도 낮은 수치고, 3%에 달하는 소비자물가를 감안할 경우 실질 가계부채 부담은 오히려 떨어졌음을 의미한다.

또한 2금융권을 포함해서 보면 전체 금융권 가계대출은 잔액 자체가 감소했는데, 이는 높아진 금리와 부동산 시장의 불안에 더해 이미 커진 자산 부실화 위험 하에서 2금융권 회사들이 자체적으로 신규 대출을 억제한 결과로 보인다. 즉, 대출에 대한 수요 자체도 둔화되고, 대출을 해주는 금융기관의 위험 관리 기준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 가계부채 부담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주요국 중 가계부채 부담이 가장 큰 우리나라 입장에서 매우 반가운 일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는 국제금융협회에서 발간하는 글로벌부채 모니터의 GDP 대비 가계부채비율 부문에서 오랜 기간 조사 대상국 중 1위를 차지해 왔다. 특히 작년말 우리나라 가계 부채비율은 조사 대상 33개국 중 유일하게 100%를 넘었다. GDP보다 가계부채 규모가 큰 유일한 나라라는 얘기다.

조금씩 낮아지는 가계부채 비율

그런데 이 통계에서조차 우리나라 가계부채 비율은 2021년을 고점으로 조금씩 낮아지는 추세다. 부채가 늘어나는 속도보다 GDP 증가 속도가 빨랐기 때문이다. 부채 부담을 충격 없이 질서정연하게 줄이는 누구나 원하는 방법은 결국 부채 증가 속도보다 소득 증가 속도를 높이는 일이란 점에서, 적어도 가계 부채와 관련된 환경과 이를 감안한 정책 결정은 적어도 지금까지 경제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하지만 1위라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 우리나라의 가계 부채는 여전히 우리 경제를 압박하는 요인이며, 잠재적인 위험이라고 볼 수 있다. 높은 가계 부채 비중은 그 자체가 소비를 압박하는 요인인 동시에, 때에 따라 자산 가격 변동에 따른 경제의 충격을 가중하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규모와 함께 반드시 지적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단기금리 연동형 대출의 비중이 여전히 높다는 구조 상의 특징이다.

지난 10여년간 문제 의식을 가진 당국의 적극적인 정책적 유도로 고정금리 대출 비중이 많이 높아졌지만, 우리나라 1금융권 주택담보대출 잔액 기준 고정금리대출 비중은 여전히 41% 정도이고, 전체 가계대출 잔액 기준으로는 31% 수준이다.

과거보다는 높아졌지만, 60% 가까운 주택담보대출 차주들은 통화정책에 민감한 이자 부담 구조인 것이다. 게다가 최근 들어서는 금리 인하 기대감이 늘며, 금리 인상 과정에서 70%대까지 올랐던 신규 주택담보대출 중 고정금리 대출 비중이 다시 50~60%대로 내려오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결국 한국은행이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의 범위를 줄여서 정책의 성공 가능성을 낮춘다는 점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금리 인상이 가계부채 부실화를 가속할까봐 장기간 저금리를 유지하는 바람에 부동산 거품이 형성될 때 다른 나라보다 더 크게 나타나기도 했고, 때로는 경기 부진에도 불구하고 가계부채가 늘어날 수 있다는 이유로 적극적인 정책금리 인하에 나서지 못해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나타난 데에는 가계부채의 양적 부담 자체 뿐 아니라 금리 연동형 대출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의 대출 구조가 한국은행의 결정에 큰 제약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반면, 미국이나 영국, 독일 등 선진국의 경우에는 모기지 대출 중 장기 고정금리 대출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통화정책 의사결정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다.

낮은 금리에 고정금리 대출을 받은 차주의 경우 정책금리가 인상되거나 그 여파로 장기 모기지금리가 상승해도 이자 부담이 늘지 않고, 높아진 금리에 영향을 받는 것은 신규 대출자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단기금리를 움직이는 행위가 긴 시간에 걸쳐, 그리고 단기금리 변화에 따른 경제적 영향을 시장이 소화하는 형태로 경제와 자산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라는 얘기다. 

사진=연합뉴스

당연히 질문이 있을 수 있다. 미국과 같은 모기지 대출시장 구조에서는 정책금리를 올릴 때 기존 대출자들의 이자부담이 늘지 않는 대신, 내릴 때도 바로바로 이자 부담이 줄지 않아 소비를 자극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있지 않냐는 의문이다.

이러한 점에 대응하기 위해 선진국에서는 높은 금리 시기에 고정금리 대출을 받았던 차주가 금리가 떨어졌을 때 기존 대출을 상환하고 다시 받을 수 있는 리파이낸싱이 상대적으로 활발하게 나타난다. 리파이낸싱 비용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금리가 오를 때와 내릴 때 가계가 탄력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리파이낸싱은 막혀 있지 않다. 하지만 예금금리 인상과 대출금리 인하에 보수적인 은행의 행태와 비용 등을 감안할 때 일반 가계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은행 입장에서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차주 입장에서 장기 고정금리에 비해 변동금리 대출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구조일 수 밖에 없는 구조, 특히 은행이 차주들에게 유리한 장기 고정금리를 제공할 수 있는 장치가 별로 없는 금융시장 구조를 반영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 고정금리 대출을 낮은 금리에 유동화하여 다시 자금을 조달하는 선진국 금융시장과 우리나라 금융시장을 같은 선상에 놓기 어렵다는 얘기다.

대출의 고정금리화 구조 만들어야

그렇다면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는 장기채 수요가 크게 늘어 있고, 특히 퇴직연금 시장은 빠른 성장은 이러한 수요를 가속화할 것이다.

높은 가계부채 부담이 조금씩 줄고 있다는 점, 그리고 한국은행 좁은 범위의 선택지를 나름 효과적으로 잘 선택해 오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까지 가계부채와 관련된 정책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왔다고 판단된다. 고정금리 비중이 과거보다 조금은 높아졌다는 점도 높게 인정할 만한 부분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보면 우리 가계부채는 규모 면에서나 구조 면에서 여전히 취약한 부분이 많다. 규모도 규모지만, 특히 대출의 고정금리화를 위한 더 다양한, 그리고 구조적인 유인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 연세대 경제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다. 대우증권 삼성증권 한화증권 등에서 채권분석, 경제분석 파트장을 역임했으며 과거 수차례에 걸쳐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됐다. 한화증권에서 리서치센터장을 거친 후 메리츠화재에서 직접 자산운용을 맡기도 했다. 이후 SK증권에서 리서치센터장, 지식서비스 부문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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