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원 칼럼] 주식 저평가 해소하려면 주주가치 높이는 실질적 변화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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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칼럼] 주식 저평가 해소하려면 주주가치 높이는 실질적 변화 있어야
  • 최석원 이코노미스트·SK증권 경영고문
  • 승인 2024.02.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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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이코노미스트·SK증권 경영고문]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92~94년까지 우리 증시는 강하고 추세적인 상승세를 이어간 바 있다. 92년 8월 456포인트에서 시작한 코스피는 2년간 상승을 거듭하며 95년 11월 1145포인트까지 올랐다.

이후 이 시기의 주가 상승은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되어 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로는 증시 부양 및 금융 완화 정책이 지목되어 왔다. 

89년 고점 이후 92년까지 주가 하락이 지속되자 정부는 92년 8월 기관투자자의 주식 매수와 금리 안정을 축으로 하는 정책을 발표했고, 이 과정에서 91년말 18%에 달했던 1년만기 통화안정증권 금리가 94년에는 11%까지 급락하며 금융 장세가 나타났다는 해석이다.

90년대 증시가 질적·양적 성장한 이유

94년 중반 이후 주가가 이미 높아진 상황에서 금리가 다시 오르고 기관투자자들의 매수 여력이 줄자 주가가 하락세를 보였던 점, 이 때 뿌려진 금융완화가 결국 경상수지 적자 장기화로 이어져 IMF 외환위기를 촉발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해석은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증시 내부적으로 보면 그만큼 중요한 이유가 또 있었다. 92년 단행된 외국인에 대한 주식시장 개방과 그 당시에는 PER 혁명이라고 불렀던 새로운 투자 개념의 소개다.

물론 그 이전 국내 증시에서도 주가의 저평가·고평가 여부를 판단할 때 해당 개념은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글로벌 투자자들이 전세계 기업들의 주요 밸류에이션 지표를 비교하며 국내 저평가된 우량주를 매수하기 시작하고, 외국계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이 개념을 소개하면서 국내에서 일부 저 PER 종목들이 2년간 10배 이상 오르는 현상이 나타났다.

뒤 이어 적대적 M&A 라는 개념과 함께 이른바 ‘자산주’ 라고 불린 저 PBR 종목이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당연히 이러한 새로운 투자 개념의 소개는 우리 증시의 질적, 양적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렸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 하다. 투자자들은 뉴스와 공식·비공식 정보에 의한 단기 모멘텀에 의존해 주식을 사고파는 방식에서 벗어나 ‘가치투자’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특히 비중이 높았던 금융기관의 주식 펀드매니저들은 외국인들의 투자 방법과 국내의 고유한 상황을 세밀히 분석해 이른바 ‘계량적’ 분석을 주식 운용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그 이후 증시가 수 많은 굴곡을 거쳐 왔음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초 외국인에 대한 시장 개방과 새로운 투자 방식의 도입은 우리 증시가 지난 30년 간 꾸준하게 발전하고 도약해 온 계기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우리 증시는 기업 가치를 본격적으로 살피는 것이 투자의 기본이 된 후에도, 수 십년째 대부분 선진국 증시, 그리고 다수의 이머징 증시에 비해 낮은 밸류에이션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PER 기준으로 보나 PBR 기준으로 보나 마찬가지인데, 이러한 현상은 이미 30년 이상 발전해 온 투자 방식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그러한 저평가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 소극적이었거나, 이러한 기업들의 행태가 유지될 수 있었던 환경, 그리고 정책들이 유지되어 왔기 때문으로 판단할 수 있다.

투자자들은 이미 저평가라는 무기를 통해 경고를 해 오고 있지만(사실 이것 밖에 무기가 없기도 하다), 기업이나 정부 입장에서 그러한 저평가를 ‘진정한’ 경고로 여기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다른 이유도 영향을 미치고 있겠지만, 지수 전체의 PBR이 1배에 못 미치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일부 업종은 PBR이 0.3~0.4배에 머무르고 있는 현상이 자연스러운 상황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

이제 현재로 돌아와 보면 올해 들어 저 PBR 종목의 주가 상승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달 정부가 기업 밸류업을 위한 프로그램을 도입할 것이라 예고한 후, 일단 순자산가치보다 크게 낮은 시가총액에 머물고 있는 몇몇 업종에서 큰 폭의 주가 상승이 나타난 것이다.

반면 해당 지표에서 상대적으로 고평가인(그래 봐야 글로벌 관점으로 볼 때는 저평가라고 볼 수 있는) 업종의 주식 수익률은 저조했다. 다른 요인들도 작용했겠지만, 분명 정부 입장 발표 이후 주식의 제 가치 찾기가 진행되었거나, 또는 제 가치 찾기가 진행될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한국 증시의 저평가 문제를 해소하려면 주주의 가치가 높아질 수 있도록 거번넌스의 확립이 필요하다. 사진은 설 연휴가 끝난 13일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사진=연합뉴스

저평가 해소하려면 주주가치 증대가 필수적

당연한 얘기지만, 여러 이유로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온 금융기관부터 주주가치 환원 측면에서 계획을 발표하는 등 기업들의 사전 대응도 시작됐다. 긍정적인 변화다.

문제는 실질적인 결과다. 재무적 실적 이외에 기업 저평가의 해소 방안은 결국 주주의 가치가 증대될 수 있도록 하는 거버넌스의 확립인데, 이를 위해서는 지금까지 관행으로 여겨져 왔던 다양한 거버넌스 이슈에서 큰 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대주주를 위하는 것과 일반 주주, 기업을 위하는 것이 일치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잘 구분해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러한 실질적인 결과들이 나타나지 않으면 투자자들은 또 다시 실망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대주주가 곧 경영자며, 또한 기업 그 자체라는 인식이 강한 상황에서는 더욱 세심한 정책 프로그램의 마련이 필요하다. 

 

● 연세대 경제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다. 대우증권 삼성증권 한화증권 등에서 채권분석, 경제분석 파트장을 역임했으며 과거 수차례에 걸쳐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됐다. 한화증권에서 리서치센터장을 거친 후 메리츠화재에서 직접 자산운용을 맡기도 했다. 이후 SK증권에서 리서치센터장, 지식서비스 부문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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