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원 칼럼] 되살아나는 일본 경제와 증시, 비결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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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칼럼] 되살아나는 일본 경제와 증시, 비결이 무엇인가
  • 최석원 이코노미스트·SK증권 경영고문
  • 승인 2024.02.20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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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이코노미스트·SK증권 경영고문] 지난 1년 이상 이어오고 있는 글로벌 증시의 큰 흐름 중 하나는 일본 증시의 도약과 중국 증시의 하락이다. 특히 일본 증시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불과 두 달 사이 15% 가량 오르며 뜨거운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데, 이제는 35년 만에 1989년 버블 시기의 고점을 돌파하기 직전까지 와 있다.

여기에 국내에서는 일본의 작년 실질성장률이 25년 만에 우리나라를 넘어설 수 있다는 뉴스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올해 성장률은 다시 역전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지만, 일본 경제와 증시에서 뭔가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만한 상황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에 대해 긍정적인 얘기를 하기 쉽지 않다. 그 보다는 일본의 각종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훨씬 더 편하게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지난 정부 당시에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와 우리나라의 노재팬 운동이라는 이슈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면서, 한일 무역 전쟁이 한국의 완벽한 승리고, 일본 경제는 이미 몰락했으며, 앞으로도 이 과정에서 벗어나지 못 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각종 매체를 통해 각광받기도 했다.

달라지는 일본 경제에 대한 평가

이런 전망이나 주장이 무색하게 주가가 오르고 경제의 활력이 조금씩 피어나자 과거 일본을 부정적으로 보던 전문가들도 속속 의견을 수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난 1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일본의 경제와 증시의 회생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일단 정책 측면에서 보면 일본 정부가 장기간에 걸쳐 시행한 정책들의 결과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디플레이션을 타개하기 위한 초저금리와 재정정책, 저환율의 조합이 기업에 유리하게 작동하면서 실적이 호전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만큼이나 문제가 많았던 기업 거버넌스 문제, 특히 주주환원 정책에 대한 압박이 증시 저평가 해소에 기여하는 모습이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인구 문제와 관련해 취해 온 각종 정책이 합계 출산율 하락 속도를 늦추고 있다. 전년동기비 신생아 수와 전체 인구는 여전히 줄고 있지만, 적어도 감소 속도는 느려지는 모습이다. 여기에 적극적인 외국인 유입 정책 역시 효과를 보고 있다. 

정책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재화와 서비스 경쟁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질(quality)와 생산비용(cost)의 조합이 경쟁국들보다 앞서기 시작한 것’이 일본 경제와 증시 회복의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각종 지표를 통해 도시별 삶의 비용을 측정하는 글로벌 국가·도시 비교 통계 사이트 넘베오(NUMBEO)에 따르면, 서울의 소득 대비 부동산 가격은 일본의 2배를 넘고, 1인당 국민소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2022년 중 일본 직장인의 달러 기준 평균연봉은 우리나라를 하회했다. 상품과 서비스의 중요 생산 요소인 인건비와 지대 측면에서 일본은 이제 우리보다 더 절대적 경쟁력을 가진 상황이 된 것이다. 여기에 저금리로 금융비용도 낮다.

당연히 또 하나의 경쟁 포인트는 ‘질’이다. 싸게 만들어도 질이 나쁘면 선택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분명 우리나라 제품과 서비스 중에도 일본이 만든 것보다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만큼 ‘질’이 높은 것들이 있다. 그러나 최근 일본의 관광산업과 글로벌 기업들의 일본 내 공장 설립 추진 소식을 보면, 특정 분야에서는 일본 경제와 일본 기업들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많은 경쟁국 기업들보다 더 높은 ‘질’과 ‘비용’ 측면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 경제가 살아나면서 일본 증시의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가 34년만에 역대 최고치 경신을 눈앞에 두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품질과 비용 측면에서 경쟁력 확보

한편, 이렇게 상대적으로 낮은 인건비와 지대는 역시 상대가격인 환율 정책의 부담도 줄이고 있다. 어찌 보면 저환율 정책이 그 동안 나라 전체를 압박하던 디플레이션 기대를 완화하는 효과를 나타낼 법한 상황이다. 결국 핵심은 국민이 소득과 자산 측면의 고통을 감내한 결과가 지금의 경제와 증시 호전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일본 경제는 여러가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고는 해도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은 현재 진행 중이고, 선진국 중에서도 가장 높은 정부부채는 여전히 경제의 뇌관으로 자리잡고 있다. 또한 고령층에 쏠려 있는 자산과 오랜 기간 유지되고 있는 청년층의 낮은 실질소득은 내부 소비를 억압하고 있다.

여러 면에서 경제 내에 디플레이션 압력이 강한 상황인 것이다. 즉, 지금과 달리 경기 수축기에 돌입할 경우 실제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며 경제 전반의 위험이 다시 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부자 나라와 가난한 개인이 과연 바람직한 경제의 모습인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은 수 밖에 없다.

또한 작년 달러화 기준 명목 GDP는 인구가 2/3에 불과한 독일에 따라 잡힌 상황이다. 1968년 일본이 서독을 앞서 세계 2위가 된 이후 55년만의 일인데, 단기적으로는 엔화 절하와 독일의 높은 물가상승률 때문이지만, 장기적으로는 2000년 이후 독일에 비해 연평균 0.5%포인트 정도 낮은 성장률이 누적되며 나타난 결과다. 이러한 잠재성장률 하락 추세는 하루 이틀에 되돌리기 어렵다. 게다가 최근 나타나고 있는 부동산 가격의 급등과 주식투자 열풍은 당연히 그 이면에 거품의 위험을 내포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구조적인 문제 중 일부에서 변화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고, 이에 따라 글로벌 투자자들의 일본 경제와 증시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비용대비 질’을 개선시키는 경제 정책과 장기적 인구 정책, 증시 시스템의 공정성 강화 측면에서, 우리나라 기업의 경우 거버넌스와 주주 가치 제고 측면에서, 우리 투자자의 경우 글로벌 포트폴리오 구축 측면에서 일본 경제와 증시의 경험을 다시 한번 면밀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 연세대 경제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다. 대우증권 삼성증권 한화증권 등에서 채권분석, 경제분석 파트장을 역임했으며 과거 수차례에 걸쳐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됐다. 한화증권에서 리서치센터장을 거친 후 메리츠화재에서 직접 자산운용을 맡기도 했다. 이후 SK증권에서 리서치센터장, 지식서비스 부문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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