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종로구의 동쪽에는 동대문구가 있고 서쪽에는 서대문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동대문은 동대문구에 없고 서대문 또한 서대문구에 없습니다. 모두 종로구에 속해 있습니다. 그런데 동대문은 실제 건축물이 있지만 서대문은 실제 건축물이 없습니다. 일제강점기에 헐렸기 때문입니다.
일제의 식민지 도시가 된 경성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옛 건축물이 훼손되는 모습이었을 겁니다. 그중에서도 조선의 수도를 보호하던 한양도성과 성문들이 허물리고 왕실 관련 건축물까지 훼손되는 모습 아니었을까요.
도로망 건설을 위해 훼철된 한양도성과 성문
한양도성이 헐리게 된 계기는 일본 황태자의 한성 방문이었습니다. 일본식 의전을 그대로 적용하면 황태자 행렬이 숭례문을 지나가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 총리대신이었던 이완용은 내각령 1호로 ‘성벽처리위원회’를 만들어 1908년에 숭례문 북쪽 성벽 일부를 철거해버렸습니다.
조선총독부는 또한 1910~1920년대 ‘경성시구개수계획’을 통해 경성을 격자형 도시로 만들면서 도로와 교통을 정비했습니다. 경성에서 도시구조의 변화는 한양도성의 성곽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습니다. 특히 경성 도심과 외곽을 연결하는 도로망 건설과 전차 노선 부설을 위해 성문과 성곽이 헐린 곳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돈의문이었습니다.
돈의문 일대는 갑오개혁 이후 근대문물이 유입되면서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특히 1899년 서대문과 청량리를 오가는 노면전차 부설은 이 지역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차 종점이 있었던 독립문 부근에 시장이 생겨나고 전차 선로 주변인 의주로에 상가가 들어서면서 상업이 활발한 곳으로 번성했습니다.
도시 개발 관점이나 도시 발전 관점에서는 한양도성과 돈의문이 그 외곽의 발전을 막고 있는 형국이었을 겁니다. 결국 1915년 광화문과 의주로 간 노면전차 복선화를 추진하면서 돈의문은 철거되었습니다.
돈의문은 어디에?
사람들에게 ‘돈의문이 어디에 있었을까?’를 물어보면 대개 지하철 서대문역 부근을 꼽습니다. 하지만 돈의문은 ‘정동사거리’에 있었습니다.
정동사거리는 ‘새문안로’에서 강북삼성병원 방향의 송월길과 덕수궁 방향의 정동길이 만나는 교차로입니다. 이곳에 돈의문이 있었던 흔적은 사거리의 건널목 앞 표지판에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새문안로의 ‘새문’은 돈의문을 일컫습니다. 돈의문은 원래 있던 문을 허물고 새로 지은 문이라 ‘새문’이라 불렀습니다. ‘새문안’은 새문 안쪽에 생긴 동네를 뜻했고 지금도 ‘새문안교회’나 ‘신문로(新門路)’ 등 옛 지명이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과거 돈의문은 경희궁에 접해 있었습니다. 옛 서울 지도를 보면 한양 중심을 동서로 가르는 큰길이 보입니다. 운종가, 즉 종로입니다. 그 동쪽 끝에 동대문이 있고 서쪽 끝자락에 경희궁과 서대문이 있습니다.
경희궁은 서쪽 대궐로 지금의 서울역사박물관과 구세군회관 일대까지가 궁궐 영역이었습니다. 그리고 돈의문 북쪽의 성벽 일부도 궁궐과 접해 있었습니다. 경희궁은 규모가 큰 궁궐이었는데 고종 시절 경복궁을 중건하기 위해 경희궁의 전각들을 해체해 썼습니다.
그나마 남은 건축물이 궁궐의 정문인 흥화문이었지만 해체돼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사찰인 장충동 ‘박문사’의 정문으로 쓰였습니다. 나중에는 그 자리에 들어선 신라호텔의 정문으로도 쓰였고요. 흥화문은 우여곡절 끝에 1988년에 경희궁으로 돌아왔습니다.
경희궁 바로 옆에는 ‘돈의문박물관마을’이 있습니다. 서대문 일대가 뉴타운으로 재개발되자 2015년에 서울시가 재개발 지역의 건물 일부를 보수해 박물관 마을을 조성한 겁니다.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새문안 동네에는 가정집을 개조해 소수의 학생을 가르치는 과외방이 성행했습니다. 주변에 서울고, 경기고, 경기중, 경기여고 등 명문 학교가 있었고 광화문과 종로2가 일대에는 유명 입시학원이 많아 사교육의 적지였습니다.
1970년대 이후 명문고들이 강남으로 옮겨가고, 과외 금지령이 내려지면서 신문로 일대 과외방 열풍은 서서히 사그라졌습니다. 대신 교육청이 마을 뒤편으로 이전해오고 길 건너에 고층빌딩이 들어서면서 송월길 가로변을 중심으로 인근 회사원 등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 많아졌습니다. 1990년대 초부터 새문안 동네는 먹자골목으로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그런 서대문 일대는 돈의문 뉴타운 지역으로 재개발되었고 대신 박물관 마을이 들어섰습니다. 한양도성 서쪽 성문 안 첫 동네로서 새문안 동네의 역사적 가치와 근현대 서울의 삶과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곳에 가면 과거 새문안 동네의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돈의문을 복원한다는데
지난 1월 돈의문 복원 계획이 발표되었습니다. 1월 17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일부 언론이 공개한 돈의문 복원 계획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서울시는 종로구 정동사거리 일대 새문안로를 지하화하고 그 위에 돈의문을 복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돈의문 복원 사업은 과거 오세훈 시장이 재임했던 2009년에도 추진됐으나 새문안로 한복판에 자리한 위치와 예산 문제 등이 지적돼 무산됐었습니다.
서울시는 돈의문 복원 계획과 더불어 돈의문박물관마을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공원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1월 17일의 기자간담회에서 오세훈 시장은 “돈의문박물관마을을 녹지공간으로 바꾸고 서울역사박물관부터 강북삼성병원까지 그 주변을 정리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오 시장은 서울의 녹지공간을 늘려야 한다고 그 이유를 밝혔지만, 한편으로는 ‘전임 시장 지우기’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합니다. 오시장은 돈의문박물관마을이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걸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박물관 마을에 남은 역사·문화 자산까지 사라질 것에 대한 대책은 없는 거 같습니다.
사라진 유적을 복원하기 위해 근대 문화자산이 헐리게 생겼습니다. 랜드마크 조성을 위해, 혹은 지자체장의 업적으로 기록하기 위해 그나마 남아 있는 옛 흔적을 지워버리는 일이 또 벌어질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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