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 이야기](57) 탑골공원과 '종삼'...노인들의 해방구? 은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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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서울 이야기](57) 탑골공원과 '종삼'...노인들의 해방구? 은신처?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1.28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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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종로2가 사거리는 종로의 분위기를 가르는 분기점입니다. 종로1가사거리를 기준으로 도로변 빌딩의 외양이 달라진다면 종로2가를 기준으로는 인도에 보이는 사람들의 세대층이 달라집니다. 종로2가 사거리에서 종로3가역을 지나 종묘 앞에 이르는 도로 양쪽의 인도에는 노인들이 특히 많이 보입니다. 

이 일대에 노인들이 모이는 이유는 ‘탑골공원’이 있고 인근에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업소가 모인 ‘송해길’이 조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노인들의 쉼터(?) 탑골공원

탑골공원 일대는 낙원동(樂園洞)입니다. 종로 일대의 지명은 보통 유래가 오래되었는데 낙원동이라는 이름은 1914년 조선총독부의 행정구역 개편 과정에서 붙여진 지명입니다. 지금의 낙원동은 조선시대에 교동, 탑동, 어의동, 주동, 한동, 원동 등이었던 동네가 병합된 행정구역입니다. 

낙원동이라는 지명은 시내 중앙에 낙원이라 할 만한 공원, 즉 탑골공원이 있는 데서 붙여졌다고 합니다. 그런 탑골공원은 한때 파고다공원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두 명칭 모두 공원 안에 탑이 있는 걸 의미합니다. 

탑골공원의 팔각정과 ‘원각사지 10층석탑’. 석탑은 위 사진과 달리 유리 구조물 안에 보호되어 있다. 사진=강대호

여기서 탑은 국보인 ‘원각사지 10층석탑’을 의미합니다. 원각사지라는 명칭에서 보듯 탑골공원 자리는 원래 원각사라는 불교 사찰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억불 정책에 의해 사찰 건물의 목재를 다른 건축물에 쓰기 시작하다가 석탑만 남았었는데 1897년에 공원으로 조성했고 1920년에 대중에게 개방했습니다.

도심 한가운데에 있어 시민들이 모이기 편했던 탑골공원은 3·1운동이 시작된 곳이었고, 해방 후와 한국전쟁 후에 각종 행사가 열리는 장소였습니다. 한때 서울을 대표하는 상업시설이 들어서기도 했습니다. 그곳이 바로 ‘파고다 아케이드’입니다. 

1967년 3월 13일 경향신문의 '새 모습 보일 파고다공원' 등 이즈음 나온 신문 기사들을 참고하면 서울시는 파고다아케이드를 탑골공원을 둘러싼 울타리처럼 계획했습니다. 그러니까 2층짜리 상가가 탑골공원의 외벽 역할을 하게 된 거죠. 같은 해 12월 즈음에는 아케이드가 준공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기사를 접할 수 있습니다.

탑골공원 외곽을 둘러싼 파고다아케이드. 공원 안에 원각사지 10층석탑이 보인다. 낙원빌딩이 공사 중인 모습으로 보아 1967년 무렵으로 보인다. 사진=서울역사아카이브

파고다아케이드는 1960년대 말과 70년대에 소공동의 반도조선아케이드와 더불어 서울의 쇼핑 명소였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초반에 철거됩니다. 

당시 기사들을 종합하면, 파고다아케이드는 유적지 훼손은 물론 도시 경관을 해친다는 비난이 일었고, 서울시는 1977년부터 명도 소송을 벌여 1982년에 승소해 1983년에 아케이드를 철거했습니다. 철거 후 파고다아케이드에 입주했던 악기상들이 대거 낙원상가로 이전해 지금의 악기 상가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케이드 철거 후 탑골공원은 시민 공원으로 정비되었습니다. 그런 탑골공원은 노인들의 쉼터로 변해갔습니다. 아마도 1990년대부터 그런 경향이 짙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무료 급식소가 생기며 노숙자까지 모여들어 ‘고성방가’ ‘노상 방뇨’ 등으로 상징되는 환경 문제가 생기자 2001년에 이른바 ‘탑골공원 성역화’를 빙자한 환경 정비 사업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인근의 종묘 공원으로 노인들이 많이 옮겨갔지만, 여전히 탑골공원 일대는 노인들을 위한 구역으로 보입니다. 이를 상징하는 게 바로 ‘송해길’입니다.

송해길. 예전에 파고다극장이 있던 건물 입구에 송해 선생의 조형물이 있다. 사진=강대호

노인 대상 상권이 펼쳐진 송해길

‘송해길’은 탑골공원에서 종로3가역 방향으로 50미터 정도 가면 나오는 ‘수표로’를 의미합니다. 정확히는 수표로에서 낙원동 방향의 도로 약 220미터를 말합니다. 이 길 입구에는 ‘송해길’이라는 간판이 붙은 정자가 있습니다.

이 거리에 송해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생전의 송해 선생 사무실이 있던 곳인데다 선생이 즐겨 찾는 식당이 여럿이라 그렇다고 합니다. 예전에 ‘파고다 극장’이었던 건물 입구에는 송해 선생의 조형물이 있습니다. 

송해길의 식당은 대부분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걸로 보입니다. 물론 점심시간에 가보면 인근의 직장인들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도 많지만요. 그래도 주 고객층은 노인 세대로 보입니다. 송해길의 식당들은 저렴하다고 알려졌지만 모든 노인이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찾아보면 아주 저렴한 식당이 있습니다. 송해 선생도 생전에 즐겨 찾았다는 국밥집이 바로 그곳입니다. 낙원동 쪽 송해길 입구로 가면 낙원빌딩이 보이는데 바로 그 앞에 있는 식당입니다. 60년 전통의 이 식당의 국밥 한 그릇은 삼천 원입니다. 

송해길 인근의 국밥집. 한 그릇에 3000원이다. 사진=강대호

제가 이 국밥집에 처음 갔을 때가 1990년대 말인데 당시 국밥 한 그릇에 단돈 1000원이었습니다. 그 후 2000원 받던 시절도 있었고 지금은 3000원이라 옛날과 비교하면 세 배가 올랐습니다. 가격이 저렴해서 그런지 지갑 가벼워 보이는 노인들이 주 고객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단돈 몇천 원이 아쉬운 노인들이 모이는 곳이 탑골공원 일대이기도 합니다. 인근의 종로3가역으로 전철 3개 노선이 지나는 데다 탑골공원 주변으로 노인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65세 이상은 도시철도가 무료라 서울 전역은 물론 전철이 닿는 경기도에서도 찾아오는 노인들이 많습니다.

북극 한파가 휩쓴 지난주에도 탑골공원에는 무료 급식을 이용하려는 노인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탑골공원 서쪽 담장 옆 도로에서는 허경영 측 단체가 무료 도시락을 나눠주고 북쪽과 동쪽 담장 옆에는 종교 단체에서 운영하는 무료 급식소가 있습니다. 그래서 도시락을 받은 노인들이 가방에 도시락을 넣고는 다른 급식소에 줄을 서는 모습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탑골공원 담장 옆으로 특히 많이 보이는 업종이 있습니다. 바로 이발소입니다. 송해길 영역까지 포함하면 10개쯤 됩니다. 만약 종로3가 일대까지 범위를 확대하면 이발소를 더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일대에 이발소가 몰려 있는 이유는 경제적 이유와 함께 ‘사회적 배제’ 현상을 엿볼 수도 있습니다. 기회 닿으면 이에 대해서 따로 이야기하겠습니다.

탑골공원 인근의 이발 가격이 3000원 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6000원입니다. 2022년만 하더라도 5000원이 대세였지만 작년부터 6000원으로 오르는 추세를 보였습니다. 

이발 가격의 변천을 알 수 있는 흔적. 회전등의 숫자 5자를 6으로 덧대 수정했다. 안내판은 과거의 가격을 미처 수정하지 못했다. 사진=강대호

이발비 변천 과정은 간판이나 회전 전등을 수정한 모습으로 알 수 있습니다. 5자를 붓으로 덧써 6으로 바꾸거나 예전 숫자 위에 종이에 새로 쓴 숫자를 붙인 모습이 그렇습니다.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어서 미처 수정하지 못한 간판이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 즉 옛 간판 글씨를 지우고 새로 덧대 쓰는 것을 도시 문헌학자 ‘김시덕’은 과거 유럽에서 용도 폐기된 양피지의 글을 지우고 그 위에 새 글을 덧쓰는 ‘양피지성(palimpsest)’에 빗대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전 글씨 위에 덧대 쓴 간판은 탑골공원으로 상징되는 노인들의 모습을 은유하는 거 같기도 합니다. 옛 흔적을 말끔히 지워내지 못하는 모습은 어쩌면 과거를 추억하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 같거든요. 

그래서일까요. 탑골공원과 종로3가 일대는 노인들의 해방구로 알려졌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세대를 피해 모여든 노인들의 은신처 같기도 합니다. 

지난 22일 탑골공원 서쪽 담장 옆에서 무료 급식을 기다리는 노인들. 이날 북극 한파가 시작되었다. 사진=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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