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예능이 '국뽕'에 빠져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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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예능이 '국뽕'에 빠져선 안된다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4.15 09:3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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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K-푸드를 소재로 한 예능이 요즘 대세다. 다른 나라에 가서 한국 음식을, 혹은 현지화한 한국 음식을 선보이는 콘셉트다. 셰프 등 출연진들의 케미가 주요 재미 포인트이지만 한국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깔려 있다. 그 밑바닥에는 한국에 대한 지나친 자긍심, 혹은 국뽕이 자리 잡고 있다. 

‘장사천재 백사장’이 불러온 논란

2회까지 방영된 tvN의 '장사천재 백사장'은 주목하게 되는 지점이 몇 있었다. 우선 제목에도 나오듯 장사 천재 백종원의 진가를 볼 수 있었다.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은 타국에서 음식점을 개업하는 콘셉트인 만큼 음식 사업 전문가인 그의 임기응변 자체가 볼거리였다. 

백종원은 말이 통하지 않는 현지 시장에서 다양한 음식 재료의 질과 가격을 파악하고는 메뉴를 정했다.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하며 좋은 고기를 확보할 수 있는 정육점도 확보했다. 현지 가게들을 뒤져 각종 요리 도구까지 마련했다. 그렇게 준비한 음식은 모로코 야시장의 명물이 될 뻔했다. 긍정적인 지점은 여기까지다.

하지만 '장사천재 백사장' 출연진들은 현지인들과 소통의 혼란, 즉 불통을 보여주며 보기 불편한 장면을 연출했다. 다른 나라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현지인과 소통 가능한 출연진을 배치하는 건 기본일 것이다. 제작진은 이를 모로코에서 고용한 알바에게 그 역할을 맡겼으나 돌발상황이 발생한 2회 차에서 알바는 매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출연진들은 손님과 소통에 진땀을 흘렸다. 아랍어나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손님들에게 한국어나 영어로 응대했다. 인사나 가격 등 기본적인 아랍어를 익히는 대신 한국어를 알려야 한다며 한국어 인사를 날리기까지 했다. 제작진에게는 출연진들의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재미 포인트일 수 있겠지만 제작진 측 통역이 관여해서라도 혼란을 잠시 잠재울 필요가 있어 보였다.

마지막으로 '장사천재 백사장'과 백종원 측에 날아든 악플은 제작진이 이 프로그램에 임하는 자세, 혹은 준비 부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른바 국뽕 예능에 보내는 외국인들의 경고일 수도 있어서 생각거리를 주기도 했다.

현지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한 해외 촬영

아마도 모로코인들이 남긴 걸로 보이는 그 악플들에는 '장사천재 백사장'에 모로코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몰이해가 담겼다는 내용이 많았다. 이슬람교도인 그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할 수도 있는 기도 시간을 웃음 소재로 다뤘고, 모로코의 좋지 않은 점을 부각했다는 비판이었다.

그중에서도 모로코를 소개한 지도에 관한 내용이 흥미로웠다. 서부 사하라 지역을 애매하게 표시했다는 것이다. 서사하라 지역은 모로코와 미승인 국가인 ‘아랍 민주공화국’ 사이에 영토 분쟁이 있는 지역이다. 모로코 관점에서는 이 지역을 실효 지배하고 있는데 해외 방송에서 중립지대라고 나오니 분노가 일어날 수밖에.

이를 비유하면 이렇다. 한국을 소개하는 어느 해외 프로그램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독도를 완충지대나 중립지대로 표시했다면? 아마 한국인들도 분노하지 않았을까. 분기탱천한 한국인들이 방송국과 제작진에게 오류를 지적하며 악플 세례를 남기는 건 자연스러운 모습일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문제도 지적됐다. 기본적인 아랍어를 배울 열의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이를 또 비유하면 이렇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유럽 국가, 프랑스나 스페인, 혹은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방송국에서 자기 나라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한국에서 제작했다면? 그런데 출연진들이 한국인들과 자국어로만 소통하려 했다면 어땠을까.

게다가 한국인과 한국 문화를 얕보는 서양인들의 우월적 시각이 느껴졌다면?

tvN '장사천재 백사장'의 한 장면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

외국인들의 악플에 한국인들 또한 악플로 맞받아치는 형국이다. 그중에는 모로코에서, 혹은 아랍 국가나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좋지 않았던 경험을 일반화한 내용이 많이 보인다. 악플은 제작진에게도 향한다. 왜 하필 ‘여행 자제 국가’인 모로코에 갔냐면서.

그런데 영화 '모가디슈' 또한 여행 자제 국가인 모로코에서 촬영했다. 그것도 4개월간 모로코의 도시를 영화 세트화하고 현지인 단역 배우와 엑스트라를 대거 출연시키며 영화를 완성했다. 영화 제작진들은 그만큼 준비 작업을 철저히 하며 모로코에 녹아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장사천재 백사장' 제작진들은 현지에 녹아들기보다는 준비 부족으로 발생한 돌발상황을 오히려 흥미로운 영상을 담을 기회로 생각한 건 아니었을까? 하지만 한국인에게 재미있는 장면이 모로코인에게는 불편한 광경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제작진들은 한국이 모로코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획과 촬영과 편집 등 모든 제작 과정에 제작진의 편견이 은근하게 담긴 걸지도. 국뽕에 취한 한국인 시청자들이 호응해줄 걸 기대하면서. 동시에 모로코인들의 분노를 사게 됐지만.

유튜브에서 중국과 일본의 문화를 과도하게 찬양하는 이른바 ‘중뽕’과 ‘일뽕’ 콘텐츠를 비판하는 채널이 인기가 있다. 다른 나라와의 관계나 외부 시각에는 상관하지 않고 오직 자기네가 우월하다는 시각이 우스꽝스럽게 보인다는 게 비판의 요지이다. 

그런데 어쩌면, 한국에서 만드는 K-콘텐츠 또한 외국인들에게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한뽕, 즉 국뽕이라고.

K-오리엔탈리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은 서구 중심의 시각으로 동양을 바라보는 인식, 혹은 동양에 대한 서구의 왜곡과 편견을 의미한다. 이 관점에서 동양은 아시아와 아랍 문화권은 물론 비서구권 나라들까지 포함된다. 서구 영화에서 아랍인을 부정적 모습으로 묘사하는 장면 등을 오리엔탈리즘의 사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에 대한 서양의 시각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타자(他者)를 이해하는 분석과 담론에도 쓰인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설명할 때도 오리엔탈리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동남아인이나 아프리카인을 서양인과 다르게 보는 한국인의 차별적 시각이 그것이다. 이슬람교도를 대하는 자세도 마찬가지다.

아무튼 우리 사회에 출신 국가나 인종, 혹은 종교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는 건 분명하다. 그런 면에서 국뽕을 자극하는 예능은 차별적 메시지를 담고 있을 확률이 높다.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등 한국보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한국이 우월하다는 인식을 담게 되고, 유럽이나 미국 등 서구에서는 한국 문화가 인정받아서 자랑스럽다는 그림을 담게 되는 것.

외부인의 시각을 통해 우월함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우리는 어쩌면 서구 문화 콤플렉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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