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피프티피프티의 빌보드 입성, '중소돌의 기적'
상태바
[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피프티피프티의 빌보드 입성, '중소돌의 기적'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4.29 09: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대호 칼럼니스트] 차트인. 음원 차트에 진입하는 걸 의미하는 용어다. 신인의 경우 주요 차트의 순위권에만 들어가도, 즉 차트인만 해도 큰 성과로 치부되는 지표다.

그런데 신인이 멜론, 지니, 벅스 등 우리나라의 차트가 아닌 빌보드 차트에 올랐다면 놀라운 뉴스가 아닐 수 없다. 그 일을 ‘피프티 피프티’가 해내고 있다.

피프티 피프티의 빌보드 차트 ‘Hot 100’ 진입

피프티 피프티(Fifty Fifty)는 2022년 11월에 데뷔한 여자 아이돌 그룹이다. 활동한 지 6개월 정도 된 이 걸그룹은 국내 팬들에게 노래보다 뉴스로 먼저 알려졌다. 피프티 피프티의 노래 ‘큐피드(CUPID)’가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Hot 100’에 올랐다는 소식 덕분이다.

지난 25일 공개된 최신 차트에 따르면 '큐피드'는 'Hot 100' 50위에 올랐다. 처음에 100위로 'Hot 100'에 진입한 이래 94위, 85위, 60위, 50위 등 매주 순위 상승을 보이며 5주 연속 진입했다. 

사실 한국 아이돌 그룹이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Hot 100’과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 진입한 사례는 여러 번 있었다. 다만 BTS와 블랙핑크, NCT, 스트레이키즈, 트와이스 등 글로벌 팬덤이 형성된 일부 아이돌 그룹에만 한정됐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갓 데뷔해 대중에 인지도가 쌓이기도 전에 해외에서 유명세를 치르며 빌보드까지 오른 사례는 처음이다. 그것도 노래의 인기를 보여주는 ‘Hot 100’ 차트에 오른 것. 

이는 미국을 제외한 순위인 빌보드 ‘글로벌’ 차트에 진입했다고 홍보하는 여느 아이돌 그룹과는 차원이 다른 성적이라 할 수 있다. 메인 차트에 입성해 미국 주류 음악 팬들의 귀를 사로잡았다는 걸 의미한다.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피프티 피프티의 ‘큐피드’가 어떻게 해외 팬들의 주목을 받으며 빌보드 차트까지 오르게 되었을까? 

전문가들은 ‘큐피드’의 인기는 틱톡 등 숏폼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틱톡(TikTok)은 15초~10분 길이의 짧은 비디오 영상을 제작·공유할 수 있는 숏폼(Short-form) 동영상 플랫폼이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아이돌 댄스를 따라 추는 챌린지도 주로 틱톡을 이용한다.

그런데 ‘큐피드’의 영어 버전이 틱톡 배경으로 쓰이면서 피프티 피프티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소속사에 따르면 피프티 피프티의 퍼포먼스를 따라 하는 동영상 챌린지가 미국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했다고 한다.

또한, ‘큐피드’의 음악 자체를 인기 요인으로 보기도 한다. K-Pop의 특징인 강렬하고 화려한 비트보다는 2000년대 팝을 떠올리게 하는 세련된 멜로디와 편곡이 이 노래의 특징이다. 음악성과 예술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팝 음악 팬들의 취향을 완벽히 저격한 것으로 보인다. 

유명 아이돌 그룹과 비교해 앨범 판매량은 적지만 스트리밍 수치, 라디오 에어플레이, 유튜브 조회수 등 음악 자체로 승부를 보고 있는 것.

4월 28일 오전 기준 피프티 피프티의 ‘큐피드’ 공식 뮤직비디오 유튜브 조회 수는 3500만 회를 훌쩍 넘었다. 그런데 이 영상에 남겨진 댓글들을 보면 이 노래의 국제적 인기를 엿볼 수 있다. 한글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영어는 물론 다양한 언어로 쓰인 댓글들을 볼 수 있다.

사진제공=어트랙트
사진제공=어트랙트

중소돌의 기적과 한계

피프티 피프티의 성공이 이슈가 되는 건 이 걸그룹이 대기업 소속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소돌의 기적’이라 불리기도 한다. 자본력으로 인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요계에서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어쩌면 BTS가 원조 중소돌의 기적일지도 모른다. 이들이 소속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BTS 데뷔 당시에는 대기업이 아니었다. 하지만 방시혁을 중심으로 BTS라는 대박 콘텐츠를 생산해 글로벌 팬덤을 얻자 자본이 몰려드는 한편 인수 합병을 통해 대기업이 되었다. 

그래서 많은 엔터테인먼트 스타트업들이 빅히트와 BTS를 롤모델로 삼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트랙트(Attrakt)’도 어쩌면 그런 꿈을 꾸며 피프티 피프티를 제작했을지도. 

2021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피프티 피프티가 유일한 소속 아티스트다. 그만큼 작은 규모의 회사로 보인다. 어트랙트는 다수의 뮤지션을 배출한 경영진이 설립했지만, 거대 자본으로 음반을 제작할 수 있는 대기업 계열 기획사가 아니기에 지금의 성공이 더욱 놀랍게 비친다. 

지난 13일에는 피프티 피프티가 국내 언론사들과 공식 기자회견을 했다. 이 걸그룹이 처음으로 언론에 선보이는 날이었다. 피프티 피프티는 데뷔 쇼케이스는 물론 첫 싱글앨범 쇼케이스도 치르지 않았다. 쇼케이스는 국내 아이돌 그룹의 통과의례와도 같은 행사다.

기자회견은 어트랙트 측에서 언론사들에 요청한 것이 아니라 언론 측에서 먼저 요구가 있어 마련됐다고 한다. 그동안 이슈는 커질 대로 커졌고, 대중의 궁금증 또한 커진 것을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미디어에 재빨리 대응하지 못한 중소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현실, 혹은 한계를 보여준 건 아니었을까.

그래서인지 해외에서 터진 피프티 피프티의 인기가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잠잠한 모습이다. 국내의 인기 정도, 혹은 화제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브랜드 평판’이 이를 보여주는 지표다.

2023년 4월 ‘아이돌그룹 브랜드평판’ 빅데이터 분석 결과에서 피프티 피프티는 9위를 차지했다. 상위 10팀은 차례대로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뉴진스, 아이브, 세븐틴, 틴탑, 트와이스, 몬스타엑스, 피프티피프티, (여자)아이들 순이다.

아이돌그룹 카테고리와 분석 기준이 다른 ‘가수 브랜드평판’ 빅데이터 분석 결과에서 2023년 4월 피프티 피프티는 6위를 차지했다. 상위 10팀은 뉴진스, 방탄소년단, 임영웅, 블랙핑크, 아이브, 피프티피프티, 아이유, 이찬원, 김호중, 세븐틴 순이다.

두 브랜드 평판 지수는 주로 음반과 음원 성적, 그리고 방송활동과 SNS 활동 지수 등을 종합해 분석한다. 그런데 이 수치는 팬덤의 크기와 회사의 역량이 크게 작용하는 면이 있다. 10위 안에 든 것도 대단한 성과이지만 글로벌 유명세로 보면 아쉬운 점이 없잖아 있다. 그런 면에서 브랜드 평판 지수는 피프티 피프티의 현재와 한계를 잘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갑작스러운 인기는 구설수를 낳기 마련이다. 어느 튀르키예 뮤지션이 피프티 피프티의 ‘큐피드’가 자기 노래의 표절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의혹이 가십으로 머물지 아니면 위기로 작용할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이런 유명세 속에 피프티 피프티와 소속사 어트랙트는 깊은 고민에 빠져있을지도 모른다. 글로벌 인기에 못지않은 국내 인기를 올리기 위해서. 국내 팬덤을 발판으로 글로벌 팬덤을 구축하고자 고민하는 다른 회사와 타 아이돌 그룹과는 차원이 아예 다른 즐거운 고민일 테지만.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